지난 달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지역담당 교육장 그리고 고등학교 교장 각 1명과 한 열흘 간 고국을 방문했다. 이 교육장은 30여 학교의 감독 책임을 지고 있으며, 교장은 올해 처음으로 한국어 과목이 도입된 학교의 교장을 맡고 있다.
내가 이렇게 한국을 방문할 때 마다 동행하는 교육자들에게 주지시키는 두 가지 철칙이 있다. 하나는 ‘한국에 자러 가지 않는다’이다. 짧은 기간 동안 좀 더 많은 것을 경험해 보려면 잠을 최소화 해야 한다고 일러 둔다. 또 다른 하나는 ‘편한 신발을 챙겨 간다’이다. 미국과 달리 걸어 다녀야 할 필요가 제법 있고, 공식 일정 후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는 많이 걷도록 하자고 한다. 걸으면서 볼 것도 많다고 알려 준다.
그런데 미국인 교육자들이 내 스케줄에 맞추다 보면 서둘러야 할 때가 종종 생긴다. 그러면서 에피소드도 일어난다. 한국에서의 첫 주말 일요일 오전에 경기도 파주의 오두산 전망대를 가 보기로 했다. 판문점 탐방을 위해 하루 종일 시간을 낼 수가 없어 부득이 일요일 오전에 전망대만이라도 택시로 다녀 오기로 했다.
전망대에서 임진강 바로 너머로 북한 땅을 볼 수 있는 게 미국인 교육자들에게는 실감나지 않는 듯 했다. 통일로 옆으로 철조망이 쭉 쳐 있는 것에도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그런데 전망대를 떠나 다시 서울로 돌아 오기 15분 정도 되었을 때 교육장이 별안간 귀고리 하나가 안 보인다고 했다. 전망대에서 화장실을 사용할 때 떨어뜨린 것 같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찾으러 다시 돌아가기에는 계획한 교회 예배 시간에 늦을 게 분명해 그럴 수도 없었다. 비싸지 않은 귀고리라서 괜찮다고 하는 교육장의 목소리에 그래도 아쉬움이 묻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또한 이틀 후 인천에서 하루 종일을 보냈을 때다. 가방과 코트 등을 차에서 가지고 나가거나 두는 등 부산스럽게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일정이 거의 끝나 갈 때 쯤 교육장이 스카프가 안 보인다고 했다. 이번엔 제법 비싼 물건이었다. 그 날 방문했던 여러 곳들과 점심 식사를 했던 식당까지 모두 연락해 보았다. 그러나 다 안 보인다고 했다. 교육장은 낙심한 듯 했다. 그러다가 혹시나 해서 차 트렁크를 한 번 살펴 보았다. 가방을 그 곳에 옮겨 실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트렁크를 열자 스카프가 그 곳에 있는 게 아닌가! 모두 실소를 금할 수 없었지만 다행이었다. 덕분에 교육장은 나머지 여행 기간 내내 귀고리와 스카프 얘기로 놀림을 받았다.
서울, 인천의 일정을 마친 후 수요일 오전에는 지방으로 옮기게 되었다. 체크 아웃을 하면서 짐의 절반은 호텔에 맡겨 놓았다. 나와 동행한 교장은 양복을 한 벌만 직접 입고 가기로 했다. 그리고 서울역에서 기차를 탄지 한 30분 쯤 되었을까? 교장이 별안간 양복 윗도리를 호텔 방 화장실에 걸어 둔 채로 왔다고 한다. 구김을 좀 펴기 위해 전날 밤 뜨거운 물을 틀어 스팀을 만들어 걸어 놓았는데 새벽에 급하게 나오면서 외투는 걸쳤지만 양복 윗도리 입는 것을 잊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돌아 갈 수는 없었다. 대신 호텔로 전화 해 확인을 부탁하니 교장 말대로 화장실에 걸려 있었단다. 돌아 올 때까지 보관을 부탁했다.
그러나 교장은 상당히 당황해 했다. 여수부터 시작해, 특히 대구와 부산 방문 때 양복을 제대로 갖추어 입어야 적절한 행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대구시 교육청 방문 때 교육청 바로 앞 백화점에서 스포츠 재킷을 하나 구할 수 있었다. 또한 사이즈가 잘 맞아 그대로 입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대구 일정을 마치고 밤 늦게 부산행 기차를 탔다. 부산에 거의 다다르자 우리는 짐을 챙겨 일어나야 했다. 교장도 가방을 챙기고 외투를 걸쳐 입었다. 그런데 창 옆 옷걸이에 벗어 걸어 둔 새로 산 양복 윗도리를 또 다시 그냥 놔 두는 게 아닌가!
두 미국인 교육자들 나의 몰아치듯 한 일정에 맞추느라 고생했지만 이번 한국 방문은 두고 두고 잊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다음에 만나면 귀고리, 스카프와 양복 윗도리를 미국에서는 제대로 챙기고 있는지 물어 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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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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