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마당에 텃밭을 만들 여건이 되지 않아도 찾아보면 거의 무료로 텃밭을 일굴 수 있는 커뮤니티 가든이 LA 곳곳에 드물지 않다. LA 한인타운만 해도 마리포사 길에 하나, 타운 서쪽 크렌셔 길에 상당한 크기의 또 다른 마을 텃밭 한곳이 운영되고 있다.
우선 마리포사 길, 세인트 매리스 성공회 남쪽에 붙어 있는 ‘마리포사-나비 커뮤니티 가든’(951 S. Mariposa Ave. LA)은 교회 땅이긴 하지만 신청만 하면 누구나 텃밭을 분양받을 수 있다. 여기에는 너비 4피트에 길이가 각각 6,8,10 피트 정도인 텃밭 30자리가 나뉘어져 있다. 작은 듯 보여도 땅이 내놓는 소출이 생각보다 엄청나 한 식구가 야채를 길러 먹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토요일 아침에 나온 텃밭 자원봉사자 알바로 산체스는 이웃주민들이 가져다 놓은 음식물 찌꺼기에다 나뭇잎과 떨어진 야채 등을 섞어 퇴비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잘 썩은 두엄은 밭 뒤쪽에 쌓아 둬 텃밭 주인들이 마음대로 가져다 쓴다. 가든 한구석에는 스노우 피와 딸기 모종, 브로콜리, 컬리플라워 등이 겨울을 나고 있으나 이곳은 인근 크렌셔 가든에 비하면 어딘가 허술한 느낌이 없지 않다. 겨울이라고는 해도 텃밭 군데군데 빈 곳도 많고 꽃만 심어진 곳도 있다.
개인용 텃밭을 할당받은 30가구 중 한인은 3가구 정도로 경작을 포기하면 다음 신청자에게 차례가 돌아간다. 현재 대기자는 5명, 종종 밭을 포기하는 사람이 나온다고 산체스는 전한다. 텃밭 사용료는 따로 없는 대신 물 값 명목으로 월 5달러씩을 낸다.
LA카운티에는 이같은 커뮤니티 가든이 125곳 이상 된다. 6,000여 가정이 여기서 텃밭을 가꾸고 있다. 공동텃밭 조성을 돕고, 갖가지 지원활동을 펴는 민간단체인 LA커뮤니티 가든 평의회(LACGC)가 결성돼 가든 42곳은 직접 관리도 한다.
마리포사-나비 가든과 함께 LACGC 회원인 ‘크렌셔 커뮤니티 가든’(1423 Crenshaw Bl. LA)은 면적이 7,000여 평방피트, 개인에게 분양되는 땅도 대부분 200평방피트 정도로 규모면에서 마리포사 텃밭에 비할 바가 아니다. 36가구의 밭 경작자 중에서 절반 정도는 한인. 대부분 타운 거주자들이다.
부인과 함께 겨울 상추를 거두고 있던 제임스 이(78)씨는 텃밭 농사지은 지 4년, 신청한 지 4년 만에 차례가 왔다고 한다. 40년 전 연방농무부 지원으로 조성된 이 가든은 대기자가 70여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높다. 물을 적게 줘도 되는 겨울에는 2~3일에 한번 정도 나온다는 이들 부부의 밭에는 씨를 뿌려 길러 아기 손바닥 같이 부드러운 겨울 상추가 대부분이지만, 밭 한쪽에는 무와 갓, 또 다른 구석에는 돌미나리가 싱싱하다. 바닥에 비닐을 깔아 간이 미나리꽝을 만든 집도 있다.
자라는 작물을 보면 밭주인이 누구인지 대뜸 짐작이 가능하다. 같은 호박과 고추를 심어도 라티노와 한인들의 품종이 다르다. 크렌셔 가든에는 한인들이 집 마당 텃밭에서 보통 키우는 채소 종류 외에도 비름나물, 취나물, 쑥, 도라지, 치커리, 토란, 여주 등 재배작물이 퍽 다양하다. 역시 4년 전에 밭을 분양받았다는 테레사 이(73)씨는 여기서 기른 명아주를 달여 먹고 식당 주방일을 하느라 다쳤던 허리가 다 나았다고 자랑이다.
백인 부부가 가꾼다는 밭에는 자그마한 온실도 들어서 있고, 어떤 라티노 주민들은 밭 전체에 콩이나 옥수수만 왕창 심어 추수 때는 의자와 탁자가 갖춰진 패티오에서 가든파티를 벌이기도 한다.
“나와서 일하니 건강에 좋고, 오개닉 야채를 길러 먹으니 건강식인데다, 어릴 때 고향 생각도 나서 좋다”고 텃밭을 가꾸는 한인들은 말한다. 텃밭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식생활이 점차 채식 위주로 바뀌게 되고, 식물을 허투로 버리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깻잎 한 장이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노고와, 방울토마토 하나가 영글기까지의 과정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은 밭에 거름을 줘 지력을 돋우는 때이긴 해도 사계절 농사가 가능한 남가주의 날씨 덕에 크렌셔 텃밭은 한겨울인 12월에도 성업 중이다.
뜻있는 개인이나 기관으로부터 땅을 기부 받아 더 많은 마을 텃밭을 조성하려는 주목적은 주민들의 건강한 식생활을 돕고, 노인과 저소득 주민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크렌셔 텃밭의 자원봉사 매니저 다닐라 오더는 “크렌셔 커뮤니티 가든은 단순히 식물이 자라는 곳 이상의 땅이다. 추수한 작물을 나누면서 한국음식과 문화도 배울 수 있었다”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커뮤니티 가든의 위치와 연락처 등 관련정보는 LACGC 웹사이트(lagardencouncil.org)에 들어가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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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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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