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람이든지 그 자체로써/ 온전한 섬은 아닐지니/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륙의 일부이어라… 어느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해서 종이 울리는지 묻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해서 울리고 있기에. -영국 17세기 시인 존 던(성공회 사제)
매년 12월 초 백악관 앞 광장에 크리스마스 정신을 기리는 내셔널 크리스마스 트리(National Christmas Tree)가 세워진다. 1923년 이후 계속되어온 미국의 크리스마스 전통이다. 올해는 펜실베이니아 주의 한 농부가 기증한 키가 30피트쯤 되는 트리로 퍼스트 레이디 멜라니아가 'Spirit of America'를 상징하는 흰색 불빛으로 장식했다고 한다. 작년에 말썽이 되었던 붉은색과 초록색 조화보다 훨씬 더 내 맘에 들었다.
나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년 크리스마스 철이면 혼자 워싱턴 DC에 나가 내셔널 크리스마스를 즐긴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근교에 살고 있는 특권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평소에도 내셔널 몰을 자주 산책하는 편이다. 포토맥 강변을 따라 펼쳐진 링컨 기념관, 제퍼스 기념관, 루스벨트 기념관, 마틴 루터 기념관, 2차 대전 기념 공원 등을 둘러보면서 미국의 역사와 미국인들의 정신을 피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실로 아름답고 풍요한 나라다. 미국이라는 단어의 한자어 '미' 자를 한국인들은 '아름다울 美 자'를 사용하고, 일본인들은 '쌀 米 자'를 사용한다. 나는 감성이 풍부한 한국인의 피를 받고 태어나서 그런지 '미국' 하면 아름다운 나라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실제로 내가40년 넘게 보고 느끼며 살아온 미 대륙은 아름다운 대륙이었다. 가끔 아기자기한 금수강산 내 조국 대한민국이 그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난 미국의 그 넓고 광활함을 그 누구보다 더 즐기고 사랑한다. 어려서 내가 존 웨인이 나오는 서부활극 영화를 좋아했던 이유도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제 날씨는 겨울답지 않게 화창하고 포근했다. 오후 4시 경에 차를 몰고 DC를 향해 무작정 차를 몰았다. 나에게 여행이라는 것은 늘 그렇다. 즉흥적이다. 공자가 말했던 '종심' 의 나이라는 것이, 공자가 어려운 문자를 써서 그렇지 별거가 아니다. 어린애들 마음으로 즉흥적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내가 이해하고 있는 '종심의 삶'의 의미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며, 바람이 불면 바람을 즐기고, 햇빛이 나면 햇빛을 즐기며, 매 순간을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줄기며 사는 삶.
내년에 내가 내셔널 크리스마스트리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을 누가 감히 보장할 수 있단 말인가? 나도 모르고, 케롤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를 일이다.
나는 버스가 떠나고 나서 눈물을 흘리며 하얀 손수건을 흔드는 영화 속 주인공으로 더 이상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또,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드리지 않았습니다.”고 노래했던 한국의 한용운 같은 자위의 시인이 되고 싶은 생각도 없고,“그러나 날 저물어/바랑 속의 것 모두 바닥에 쏟아/거기 초라한 시주 물건들 속에서/ 아주 작은 금 구슬 한 알 발견했을 때 /나의 놀라움은 얼마나 컸는지/ 나는 끝내 내 가진 것 남김없이/님에게 드리지 못했음이/ 내게는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라는 인도의 타고르처럼 뒷북을 치며 후회하는 시인이 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나는, “사랑이 그대를 손짓하며 부르거든 그를 따르라./비록 그 길이 어렵고 험할지라도/ 사랑의 날개가 그대를 품을 맨몸을 맡겨라./ 비록 사랑의 날개 속에 숨은 칼이 그대를 상처 받게 할지라도…”라고 삶을 노래했던 레바논 출신의 칼릴 지브란 같은 시인이 되고 싶다.
내셔널 크리스마스트리를 둥그렇게 한 바퀴 도는 길을 ‘Pathway to Peace(평화의 길)’라고 부른다. 그 좁은 길을 따라 미국 51개 주에서 온 56개의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들이 평화의 빛을 번쩍거리고 있다. 평화에 이르는 길은 이토록 좁고 험난하다. 사랑에 이르는 길도 이토록 좁고 험난하다. 그러나 그 평화와 사랑의 종은 지금, 바로 나를 위해서 울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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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평일 / 클립턴,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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