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라는 말이 있다. 말하자면 자기의 큰 결점은 덮어두고 다른 사람의 사소한 결점을 찾아 흉보는 것에 빗댄 말이다. 이 세상에 흠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살다 보면 누구나가 잘못 생각하고 행동하여 실수를 범하는 수가 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참모습이다. 내 결함은 나 자신과 같이 몸과 마음에 붙어 다니기 때문에 스스로 알기가 어렵고 남의 흠은 제삼자의 입장에 보는 관계로 눈에 띄기가 아주 쉽다. 밥을 먹다가 밥알이 얼굴에 붙어 있다면 남이 알려주거나 거울을 보지 않으면 알기가 힘들다. 운동경기에서 최선의 수비는 공격에 있는 것과 같이 남의 흠집을 찾아내어 자기 자신의 흠을 덮어버리려고 행동한다. 이게 인간의 본성이다.
2년 전 여름에 정강이에 콩알 크기의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정강이는 피가 잘 흐르지 않아 상처가 아무는 데 시간이 걸리고 감염에 약하다는 의사의 말을 건성으로 들었던 게 탈이었다. 상처가 다 아문 줄 알고 무리하게 정원 일을 하다가 박테리아에 감염돼 두 달이나 무척 고생했다. 그 바람에 1달러 동전 정도의 큰 상처가 검게 남았다.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야 할 흠집이다. 과거는 흠집과 같아 첨삭할 수 없다. 사실 있는 대로가 과거다. 역사와는 전혀 다르다. 과거를 거울에 나타난 모습에 비유한다면, 역사는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서 촬영된 사진과 같다. 또한, 과거가 민낯이라고 치면 역사는 곱게 화장한 얼굴에 비유할 수 있다. 과거는 내 몸에 남은 흠집이나 다름이 없다. 역사는 내 상처를 보는 관점이다.
요즈음은 정보교환이 무척 빠르게 이루어져 모든 게 속히 이루어지는 세상이다. 지구 저편에 일어나는 일도 일 초가 멀다 않고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뉴스가 모두 진실만을 전달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흠집이 너무 많아 어지러운 세상이 됐다. 특히 정치가의 난장판에는 상대방의 흠집만을 찾아내는 데 혈안이 돼 있다. 그들은 국민의 안녕과 복지, 국가의 안전을 위해서 선출됐지만 그런 것은 아예 접어두고 자신의 권력과 이익만을 위해 혈안이 돼 날뛰고 다닌다. 업무수행을 잘못하여 흠집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의 멀쩡한 곳에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어 내는 게 문제다. 온통 상대방의 흠집만 있을 뿐이다. 흡사 흠집의 전쟁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내년이면 6·25전쟁이 난 지가 70년이 된다. 아주 긴 세월이다. 이 전쟁이 남긴 흠집은 한반도 방방곡곡에 남아있지 않은 곳이 없다. 그 후유증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전쟁이 나던 해, 육군에 징집돼 논산훈련소에 가려고 고향의 역전 광장에서 기다리던 예비군인을 환송하려고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의 학생들이 동원돼 갔었다. 행사가 끝나고 우리가 손수 그린 태극기를 들고 개찰구를 빠져나가는 그들을 환송했다. 그때 머리에 필승(必勝)이라고 빨간 띠를 머리에 질끈 두른 한 장정의 말과 행동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너희들은 걱정하지 마라! 우리는 너희 세대가 군대에 가는 일이 없도록 열심히 싸워서 승리하고 돌아오겠다.”
국방의무란 명분 아래 이미 네 세대나 총을 멨고, 조금 있으면 다섯 세대에게 흠집이 많은 유산을 대물림해 줘야 할 판이다. 우리 한반도 역사상 가장 처참한 전쟁의 상흔도 세월이 가면서 기억의 저편에 머무를지 모르지만, 남북은 아직도 총부리를 겨눈 채 서로 흠집을 내고 피를 보려고 모든 것을 걸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이미 핵무기까지 개발해 남한에 아주 큰 흠집을 내려고 벼르고 있다. 얼마나 더 많은 피를 흘려야 되는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빛바랜 정전이 있고 난 뒤 오랫동안 상대방에게 더 많은 흠집을 내려고 지속한 노력과 비용을 남북한 국민의 진정한 행복을 위하여 쏟아부었더라면 한반도는 세계에서도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되지 않았을까 하고 헛된 생각을 가끔 해본다.
흠집을 내는 전쟁 무기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자유와 행복을 위한 방법은 전혀 없는 것일까? 위정자들은 그까짓 알량한 자존심과 고집을 잠시 내려놓고 허심탄회하게 화해해서 손을 잡고 평화로운 금수강산을 만들어 볼 진정한 용의는 없는지 궁금하다. 우리 모두 힘을 합하여 반만년 만에 가장 멋진 역사를 쓸 용기는 없는지. 이념과 사상이 다르다고 서로 등을 돌리고 적으로 살아온 지가 너무 오래됐다. 몸에 난 상처가 날씨가 궂으면 에누리 없이 쑤시는 것과 같이 우리나라도 어려울 때가 닥치면 흠집에서 오는 아픔이 잊지 않고 되찾아온다. 과거나 흠집은 저주나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간직하고 보듬어가는 게 제일 현명한 방법이다. 남을 탓하기 전에 곰보의 흠집을 보조개로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진다면 흠집은 너와 나에 상관없이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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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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