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고국의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차기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되었다는 소식이다. 여당의 6선 국회의원이며 내년 선거 재출마를 준비하던 중 지명을 받고 고심 끝에 수락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지명에 야당의 비판이 거세다고 한다.
고국의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이 지명을 두고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대변인을 통해 “의회를 시녀화 하겠다는 독재 선언” 이라고 했고, 바른미래당은 “삼권 분립에 침을 뱉었다”고 비난했다고 한다. 일부 언론은 의전 서열 2위의 국회의장 출신이 서열 5위인 국무총리로 ‘격하’ 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비판에 나섰다고 한다.
이런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데이빗 불로바 버지니아 주 하원의원이 생각났다. 그 하원의원은 내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한인 사회에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95년 봄이다. 당시 나는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광역 교육위원 후보로 출마 준비 중이었다. 민주당으로부터 정식 지지를 받기 위해 절차를 밟았다. 광역 교육위원 자리가 셋이기에 세 명의 후보만 지지를 얻을 수 있었는데 나는 아깝게도 4등을 했다. 그래서 결국 민주당의 공식 지지를 얻는데 실패했다. 그래도 출마 자체에 의미를 둔 나는 계속 준비를 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당시 브래덕 지역 수퍼바이저였던 섀론 불로바였다. 섀론 불로바는 이달 말로 은퇴하는 페어팩스 카운티 수퍼바이저위원회 위원장이다. 그는 내가 비록 광역 후보로 민주당 지지 획득을 얻는데 실패했지만 그 과정 중 좋은 인상을 주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브래덕 지역에서 민주당 지지 후보로 출마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물론 뜻밖의 제안이었는데 당시 브래덕 지역에서 민주당 지지로 출마 준비 하던 사람이 있었지만 포기했다고 했다. 그래서 대안이 될 수 있는 후보자를 찾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자신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테니 고려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광역 대신 브래덕 지역에서 출마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때 페어팩스 카운티 민주당 산하 브래덕 지구당 위원회 위원장은 다름 아닌 섀론 불로바의 아들인 데이빗 불로바였다. 데이빗 불로바는 그 이후 주 하원의원이 되었고, 올 11월 선거에서 이겨 이제 8선 주 하원의원이 된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의 다수당이 됨으로 이제 1월에 주 의회가 개원하면 일반법 (General Laws) 위원회의 위원장에 취임하지만, 1995년 그 당시에는 약관 26세의 젊은 청년이었다. 그가 민주당 브래덕 지구당 위원장으로 앞장 서서 나의 당선에 도움을 주었다.
당시 데이빗 불로바 위원장의 임기는 2년이었다. 임기가 끝난 후 그 자리에 재출마를 하지 않아 다른 사람이 위원장 자리를 넘겨 받게 되었다. 그런데 데이빗 불로바가 차기 위원장을 돕기 위해 위원장 아래 한 부서를 담당하는 부위원장 직을 맡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 한 번 위원장직을 맡았다고 해서 조직 구조상 그 아래 직책을 못 맡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한 번 단체장을 역임하면 임기 후에도 계속 ‘회장님’으로 지칭하는 게 일반화되어 있는 우리 동포사회 문화와 너무 달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던 신선한 경험이었다.
미국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에도 대통령 직을 마친 후 어쩌면 ‘격하’되었다고 볼 수 있는 직책을 맡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존 퀸시 애담스 6대 대통령은 임기 후 연방 하원의원을 9번이나 역임했다. 또한 17대 대통령이었던 앤드류 존슨도 고향으로 돌아가 연방 상원의원으로 일했다. 그리고 27대 대통령이었던 윌리암 태프트는 대통령 직을 마친 후에 연방 대법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공직 가운데 최고위직으로 간주할 수 있는 대통령직을 마친 후 그 보다 ‘아래 자리’에서 일한 데에 대해 누가 손가락질할 수 없을 것이다. 본인이 봉사할 뜻이 있어 능력에 적절한 곳에서 일하는 것은 오히려 응원과 칭찬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정세균 전 국회의장의 국무총리 후보 지명이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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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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