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수년 전 시카고에서 임상을 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오후 중년 흑인 여성 한분이 한의원 문을 열고 들어와 어두운 표정으로 잠깐 상담을 할 수 있겠는지, 혹여나 자신의 이야기를 이상하게 듣지는 말아 달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목구멍에 느껴지는 이유 없는 이물감
목구멍에 마치 딱딱한 가래가 뭉쳐 있는 듯한 이물감을 느낀지 이제 8년째인데, 아무리 뱉어내려 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고 헛기침만 계속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그 동안 여러 병원을 다니면서 가능한 모든 검사를 다 받아 보았지만 매번 목 안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진단만 받아왔단다.
결국 마지막으로 찾아간 한 전문의마저 최종적으로 그 분의 문제를 신체상의 문제가 아닌 정신적인 문제로 진단해, 최면치료를 추천해 줬는데 차마 최면치료 병원을 찾아가진 못하고 망설이던 차에 본 한의원 앞에 붙어 있는 KOREAN MEDICINE 이라는 팻말에 끌려 무작정 들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분에게 지금 겪고 있는 증상은 한의학에서 매핵이라 부르는 병으로 생각보다 흔한 병이며 침으로 충분히 치료가 가능하다는 대답을 해 주었더니, 갑자기 눈가에 눈물이 그렁거리며 매우 기뻐하였다. 이 후, 본격적인 치료를 시작한 그녀는 약 3주만에 기존의 증상이 일차적으로 소실되었고, 이후로도 가끔씩 (몇 달에 한번꼴로) 증상이 조금씩 재발할 때가 있었지만 침 몇 번만으로 쉽게 조절이 가능한 상태로 약 1년을 유지하다 마침내 완치가 되었다.
현대의학에서 바라보는 ‘매핵’의 기전과 치료
이처럼 목에 꼭 이물질이 걸린 듯해 침을 뱉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고 삼켜도 내려가지 않아 갑갑한 증상을 한의학에서는 ‘매핵기’라 부르는데, 이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증상은 목에 항상 가래가 낀 듯해 마른기침을 하게 되고, 침을 삼키면 무엇인가 걸린다는 느낌이다. 물론 이 중에는 인후나 후두에 염증이 생겼거나 위산의 역류로 인해 발생하는 위식도 역류 질환 등이 원인이 될 수도 있어 이비인후과적인 검사를 해 보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실제로 여러 검사 결과 이런 신체적 이상이 없는데도 이물감을 느끼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아 이런 질환에 대해 일반 병원에서는 ‘인두 신경증’ 또는 ‘히스테리성 인두’라는 진단을 내리고, 가짜약(Placebo)을 이용해 신경증을 해소하거나, 정신과 상담을 통해 치료한다.
이는 현대 의학적으로 이 증상에 대한 정의가 아직 정확히 내려져 있지 않고 그 기전또한 불분명하기 때문인데, 환자의 상당수가 폐경기 이후의 여성인 점을 감안하면 여성호르몬 감소에 의해 인후점막 상피세포의 변화가 중요한 원인으로 추정하고, 정신과적으로는 우울증이 있는 경우에도 흔히 생길 수 있다는 보고가 있는 정도다.
‘매핵’은 마음의 병이 몸으로 나타난 상태
반면, 한의학에서는 이 ‘매핵기(梅核氣)’에 대해 비교적 명확하게 그 기전을 서술해 놓고 있다. 동의보감은 이 매핵기를 “인후 사이를 장애하여 뱉어도 나오지 않고 삼켜도 넘어가지 않는 마치 매핵 같은 것이 걸려 있는 증이다”라고 표현했고, 그 원인으로 감정의 불균형을 지목한다.
인간의 기본 감정인 기쁨(喜), 성냄(怒), 근심(憂), 생각(思), 슬픔(悲), 놀람(驚), 두려움(恐) 등이 갑자기 치밀어 간기능이 원활하지 못해 간이 울체되고 비장에 영향을 미쳐 비장이나 위가 제 기능을 잃었을 때, 또는 화병에서 비롯된 억울함을 오랫동안 풀지 못한 때에 비장과 위장의 기가 막혀 담음이 쌓이게 된다는 것이다.
즉, ‘매핵기’는 정신적 요소가 그 주원인으로 작용하여 신체기능에 장애를 초래하는 병이므로, 우선 담음을 없애고 기를 풀어주는 한약과 침구 요법을 처방한 후, 재발 방지를 위해 감정의 균형을 잡아주고 긴장된 신경을 이완시켜주는 치료를 이어서 처방한다. 이와같이 매핵기는 아무래도 감정의 불균형 상태에 기인하는 병의 특성상 상대적으로 치료 그 자체보다는 재발 방지에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가 치료 시간이 늘어지는 경향이 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받드시 치료가 되는 간단한 질병이다.
문의 (703)942-8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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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윤 / 예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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