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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one in the audience understands
the Flower Sermon except Mahakasyapa,
who smiles.
대중 가운데 아무도 ‘꽃 설교’를 알아 듣지
못하였더라. 미소 지은 마하가섭 말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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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불자(佛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상식으로
아는 스토리. 다들 아는데 다들 모르는 이야기.
사실, 석가모니 사후 천 년도 더 지나 중국에서
발간된 위경(僞經) 즉 가짜(?) 경전에 나오는
허구(虛構)라는 썰(說)도 있는 얘기. 그럼에도,
많은 이들의 직관적 감성에 왠지 슬쩍 와닿는
스토리.
여러 모습으로 부풀려지고 꽃단장된 얘기의
제목은 “염화미소(拈華微笑).” 간단히 정리된
국어사전 풀이만으로도 대략 감 잡히는 스토리.
“말로 통하지 아니하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일. 석가모니가 연꽃 한 송이를 대중에게 보이자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깨닫고 미소 지으므로
그에게 불교의 진리를 주었다고 하는 데서
유래한다.”
Sakyamuni gives a wordless sermon to his
disciples by holding up a white flower. No one
in the audience understands the Flower Sermon
except Mahakasyapa, who smiles. 또 다른 요약
사전 위키백과의 설명. 우리말 사전 풀이와 거의
딱 들어맞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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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one in the audience understands
the Flower Sermon except Mahakasyapa,
who smiles.
미소 지은 마하가섭 말고, 대중 가운데 아무도
‘꽃 설교’를 알아 듣지 못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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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화시중(拈華示衆) ?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다.
염화미소(拈華微笑) ? 꽃을 드니 이에 미소로 답하다.
그래서, 염화시중의 미소요 염화미소(拈華微笑)라는
제목으로 회자되는 얘기. 영어론, ‘Flower Sermon’.
예수님의 산상수훈(山上垂訓)을 ‘Sermon on the
Mount“라 하듯이 ’염화수훈‘이라 불러 보는 것.
’수훈‘이란 가르침을 편다는 뜻이니 부처님의
’염화(拈華)‘ 가르침 또한 ’Flower Sermon‘이라
한들 어떠리.
타이틀보다 정작 긴요한 건 얘기 속에 담긴 교훈.
도대체 뭘 가르치려 하길래? “나는 49년동안 한마디도
설한 바 없노라!” 그렇게 당신 스스로 열반 순간에
토로하지 않았던가. 정작 49년 넘게 팔만(?)대장경을
설(說)했던 석가모니 붓다. 정작 끝판에 가선 모든 걸
침묵이라 선언하시는 것. 허~걱! 우째 이런 일이.
하지만 ...... 염화미소(拈華微笑) ’Flower Sermon‘이
바로 무상사(無上士) 불세존(佛世尊)의 선언을
힘차게 뒷받침 하고 있는 게 아닐런가.
마하가섭 존자는 부처님의 연꽃 한 송이에서 과연
뭘 보았던 걸까? 아니, 뭘 알아 차렸던 것일까? 아니,
뭘 느꼈던[感知] 걸까?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
’heart to heart‘라니 마음에서 마음으로 가슴에서
가슴으로 뭐가 오간 것일까? 그리고, 부처님은
마하가섭의 미소에서 뭘 보시고 불교의 진리 전체를
몽땅 그에게 전수하신 걸까? 그것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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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one in the audience understands
the Flower Sermon except Mahakasyapa,
who smiles.
대중 가운데 아무도 ’꽃 설교‘를 알아 듣지
못하였더라. 미소 지은 마하가섭 말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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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게 없다는 게 답! 알려고 하는 ’그 자리‘를
알아채는 순간, 이미 알 건 다 알고 있었다는 낌새를
확인하는 것. 아이를 등에 업고 아이를 찾아 다니는
모습을 알아채는 순간, 가도가도 ’그 자리‘ 와도와도
떠난 ’그 자리‘란 걸 퍼뜩(!) 알아채는 것. 그러니
어쩌랴, 웃을 수 밖에. 그렇게 미소짓는 것 밖엔
따로 뭐라 말 할 것도 없는 무심(無心). 그러니,
이심전심이요 염화미소라. 그게 바로 ’Flower
Sermon‘의 진수요 핵심이라.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 밭이 한참 갈이 /
괭이로 파고 / 호미론 풀을 매지요. //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요. /
갱냉이가 익걸랑 / 함께 와 자셔도 좋소. // 왜 사냐건
웃지요.“ 이런 시가 나오는 경지가 바로 “Flower
Sermon”의 핵심. 왜 사냐건, 웃지요.
Cheers!
<
최정화 커뮤니케이션 박사 / 영어서원 백운재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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