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10월28일 옥스포드 팔레스 호텔에서 열린 한용숙 씨의 상수연에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였다. 앞줄 왼쪽 두 번째부터 장남 두식, 한용숙씨, 차남 대식, 삼남 문식, 사남 형식.
“한국 현대사의 험난한 질곡을 가냘픈 여인의 몸으로 감내하고 미국 땅까지 이민 와서 자식들은 물론 손자, 손녀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일생을 살아야하는 지를 자신의 삶으로 몸소 보여주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며 옵니다” 지난 5월18일 향년 101세로 숨진 한(김)용숙씨의 삼남 한문식 한미보험 대표는 “어머니의 삶은 흡사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직후 격변기를 살아야 했던 한국인의 가슴아픈 삶을 다룬 드라마‘여명의 눈동자’와도 같았다”며“일제 시대에 남편이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인도네시아에서 모진 고생을 할 때도 항상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자세를 잃지 않으셨다고 친지들에게 들었다”고 회고했다.
1917년 10월30일 경기도 용인에서 부친 김진환씨와 모친 홍과천씨 사이에 4녀 1남중 3녀로 태어난 한용숙 씨는 1934년 한맹순씨를 만나 백년 가약을 맺었다. 슬하에 묘식(장녀), 두식(장남), 대식(차남), 문식(삼남), 형식(4남) 등 4남1녀와 손주 11명, 증손주 13명 등 36명의 자손을 두었다.
한 씨는 일제시대와 6.25전쟁, 4.19혁명 등 굵직굵직한 한국 현대사의 모진 풍파를 겪으면서 남편이 일본군에 징병된 가운데서도 무사히 귀환했고 자식들도 사고없이 무사히 성장한 것을 항상 감사해왔다고 한다. 한문식 씨는 “자신의 생일이 1949년 7월인데 6.25전쟁으로 피난 가느라 돌상을 차려주지 못한 것이 미안해 매년 생일 때면 모친이 돌떡을 하사하셨다”고 회고했다. 한 씨는 6.25전쟁으로 가족이 흩어져 피난 생활을 하는 가운데 휴전후에는 각박한 생활전선에서 가난과 싸우면서 어린 4남1녀를 양육해야했다.
남편 한맹순 씨는 공무원으로 일했고 한때 사업에 실패해 어려움을 겪었으며 60세의 나이에 돌아가신 후 한 씨는 본인도 가족의 정착을 돕기위해 1981년 미국행을 선택, 가족들의 성공적인 이민 생활의 토대이자 구심점 역할을 했다.
한문식 씨는 “모친은 자녀들이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항상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독려하셨다”며 “특히 한국식 예의범절을 철저하게 교육시켜 손자손녀들도 항상 어디를 가고 오든 인사를 하는 것이 절로 습관이 되도록 만들었다”고 전했다. 한 씨는 정초가 되면 전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음식을 나눠먹고 세배를 하면 자식들과 손자, 손녀 모두에게 일일이 세배 돈을 주는 등 베푸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한 씨가 100세 넘어서까지 장수를 했던 비결은 항상 뒷마당에 과일과 채소를 가꾸면서 자연스럽게 운동을 했고 햇볕을 많이 쪼이면서 건강한 생활을 하게 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또한 농담과 유머를 즐기면서 낙천적인 성격으로 어려운 일이 발생해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긍정 마인드가 그녀의 장수에 일조했다. 남들에게 베풀고 도움을 주면서 책임을 다하는 그녀의 삶을 보고 자녀와 손자, 손녀들도 미국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기반이 되었다.
한문식 씨는 “자식들이 서로 협조해 모친을 너싱 홈에 보내지 않고 모시기로 약조하고 비용도 나누었다”며 “특히 넷째 아들과 며느리 세숙씨가 지난 30여년간 지극 정성으로 모친을 모셨다”고 밝혔다. 세숙 씨는 지난 8일 옥스포드 팔레스 호텔에서 열린 남가주 외대 송년의 밤 행사에서 동문들의 추천으로 자랑스런 효부상을 받기도 했다. 한씨 집안은 장남 두식 외대 영어과(58학번), 삼남 문식 법학과(69학번), 동생 형식 마인어과(72학번), 넷째 며느리 세숙 영어교육과(75학번)를 졸업한 외대 집안이기도 하다.
한용숙 씨의 100세 생신 잔치는 지난 2017년 10월28일 한국에서 온 장남 두식씨를 포함한 4형제와 손자, 손녀 등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옥스포드 팔레스 호텔에서 열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평생 불자였던 한용숙 씨의 장례는 선각사 우상 스님 집례로 지난 5월24일 불교식으로 치러졌으며 이 자리에서 한국에 거주하는 큰 손주 준섭은 조사를 통해 “할머니의 한 세기는 수 많은 고난으로 점철되었지만, 그녀의 사랑과 헌신으로 그녀의 자손들은 한국과 미국 사회 각계 각층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며 사회에 이바지하고 있다”며 “그녀의 사랑과 헌신을 잊지 않고 대대손손 전해나갈 것”이라고 말해 듣는 이들을 숙연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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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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