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이뤄진 돌은 끝내 규정되지 않는 그 무엇이다. 긴 시간의 덩어리이고 만물의 어머니다. 산업을 가능케 한 철 역시 돌에서 추출한 것이다.
돌과 철, 이 둘을 아우를 때 자연과 문명의 대화가 가능해진다.” 백남준 이후 국제무대에서 가장 주목받는 한국작가 이우환(1936-, 경남 함안)의 말이다. 간결하고 단순하지만 파장의 에너지가 강력한 그의 작품이 드디어 워싱턴에 입성했다.
허쉬혼 뮤지엄 야외 광장에 <관계항Relatum> 시리즈 10점, 뮤지엄 3층에 신작 회화 <대화Dialogue> 4점이 채워졌다. 이 전시는 허쉬혼 개관 45주년 기념전으로 1년간 진행된다.
전시작품은 자연 그대로의 바위와 철로 만든 벽, 봉, 틀을 나란히 혹은 엇갈리거나 맞닿도록 두었다. 야외 공간 한가운데 분수대를 철판으로 두르고 물에 검은 염료를 타는 첫 실험으로 물이 흑요암처럼 변모하니 건물과 하늘이 담겼다.
“<관계항>은 소재와 공간과 행위가 관계를 맺는 열린 장이다. 내 예술은 만든 것과 만들지 않은 것의 대화를 지향한다.”고 이우환은 말한다.
신작 회화 <대화>시리즈 4점도 흰 여백 위에 붓의 흔적이 떠 있다.
“조각에 작가가 만든 것과 만들지 않은 외부가 공존하듯 회화에도 그린 것과 그리지 않은 여백이 함께 있다. 그 관계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표현은 존재가 아닌 현상이다.” 라고 그가 설명한다.
큐레이터 앤 리브는 “이우환의 여백은 공허가 아니라 다이내믹한 풍요.”라고 덧붙인다
바위 밑 흰 조약돌 위에는 검은 그림자를 그려넣었다. 그림자는 서로 닿지 않는다. “하나는 안녕이라 하고 하나는 뒤로 뺀다. 앞으로는 대화하는데 뒤로는 닫혀 있다. 미지와의 끝없는 대화가 바로 표현이다. 그것은 자신을 넘어서려는 시도다. 내 체세포처럼 나 역시 매일 죽고 다시 태어난다.“ 이같이 이우환의 설명처럼 작품에서 그의 정신 세계를 충분히 엿보게 된다.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이우환은 일본의 전위미술 운동인 모노하의 창시자로 일본에서 자생한 한국 작가로 유명해졌다. 그는 절제와 공존을 지향하는 예술 세계를 펼치고 있다. 그는 “세계가 인간의 손으로 변화하지 않는 사물들로 세워졌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나의 작품은 무한으로의 통로이자 문이다”라고 한다.
“나의 그림은 끊임없는 반복의 수련가운데 무한이 숨 쉬게 되고 기가 충만하다. 그래서 그림과 공간과 당신이 만나면 신기한 생명의 파장이 여울지는 설렘의 우주가 열릴 것이다.”
그 설렘의 우주 속에서 이우환은 자신의 행위와 외부의 주어진 사물 간의 생산적인 대화를 한다.
이우환은 전시를 제안받고 2년 동안 워싱턴을 세 차례 방문했고 최근 5주간 체류하며 작품을 설치했다. “완벽한 형태로 건축된 공간에 균열을 내어 전혀 다른 공기를 불러일으키고자 했다”고 한다. 미술관 측은 기존 설치작품을 치우고 야외 공간 전체를 한 작가에게 헌납한 경우는 개관이래 처음이다. 멜리사 추 허쉬혼 관장은 “이우환의 작품은 우리 박물관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다. 현대의 시간과 개념을 초월하는 독특한 예술성을 보여주며 성찰과 휴식의 공간을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이우환은 조각, 설치, 도예, 회화 및 종이 작업을 하며 일본 나오시마 섬에 ‘이우환 박물관’을, 부산시립 미술관에 ‘이우환 공간’을 열었다. 그는 제 52 회 베니스 비엔날레, 구겐하임 회고전, 베르사유 궁전 전시 등 전 세계에서 140 회 이상의 개인전을 가졌다.
여러 해 전 한국에서 겪은 위작사태는 그의 이름처럼 ‘미술시장에 우환이 났다’고 할 정도로 논란이 됐다. 위작문제는 미술시장 존폐에 관한 문제다. 이 사태를 기점으로 시장 자율에 맡겼던 한국 정부가 정책을 만들었으나 위작논란은 오히려 그의 줏가를 올렸다. 작품값이 떨어지지 않았고 경매시장에서도 낙찰총액이 급상승했다.
그는 현재 프랑스 퐁피두센터 메츠의 회고전, 상하이 당대예술박물관 3인 기획전, 뉴욕 디아비콘 미술관에서 전시를 열고 있다. 모노하 운동의 개념인 궁극의 단순함이 미학인 세상이 오리라는 것을 예견한 듯 세계 미술계의 러브콜을 받고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지난 8월 미국 월스리트 저널은 그를 특집기사로 다루었다. 롱아일랜드 채석장에서 돌을 찾고 있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이우환의 작업세계에 돌과 바위에 집착하는 그의 내면의 이야기를 이렇게 전했다.
“전시 공간에서 작품과 마주할 때, 아마도 당신은 긴장감과 해방감을 동시에 품고 있는 신기한 우주를 느낄지 모른다. 요컨대 더 높은 차원의 공간, 무한의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느낌은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고자 노력하는 관계에서 오는 것이다. 내 작업은 하나의 특성을 재현하고자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바로 세계와의 만남과 조응이다”라고. doh05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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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숙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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