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자 씨는 평생 성악가로서 활발하게 활동을 해왔다. 지난 1983년 8월 서울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오페라 춘희에서 주인공 비올레타 역으로 열연하고 있다.
김옥자 씨가 지난 1976년 4월 북한을 방문했을 때 평양에서 남편 김시면 씨와 자리를 함께 했다.
남가주 한인회 회장과 한미포럼 대표 등으로 한인사회에 잘 알려진 올드타이머 김시면 씨의 부인 김옥자(사진) 씨가 위암투병 중 수술 후 심장마비로 지난달 18일 별세했다. 향년 83세.
1937년 3월10일 경상북도 안동에서 부친 김규성 씨와 모친 김 원 씨의 3남매중 막내로 태어난 김옥자 씨는 1960년 서울대 음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1962년 도미해 줄곳 성악가의 길을 걸어왔다. 어릴 때부터 음악과 미술 등에서 소질을 보였던 김 씨는 새벽이슬이 맺힌 이른 시간부터 하루종일 노래를 불러도 지치지 않는 연습벌레였고 마침내 서울음대 성악과에 입학, 1960년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1958년 우연한 기회에 군에서 제대한 김시면 씨를 만난 김 씨는 둘만의 풋풋한 사랑을 나눴다. 김시면 씨가 1961년 먼저 미국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고 1962년 대구사립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던 김 씨도 남편을 따라 도미 후 1962년 LA에서 최영용 연합감리교회 목사 주례로 20명의 하객앞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김시면 씨는 이민 초년생들이 그러했듯이 무거운 웨어하우스 짐짝을 나르는 일부터 시작해 2~3개 잡을 뛰면서 밤에는 USC 에서 영어를 배우는 등 주경야독을 했고 김 씨는 메이 컴패니 포장 센터에서 일했다. 이 와중에 김 씨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을 길이 없어 USC음대 오페라 워크샵 2년 과정을 수료했다.
남편 김시면 씨는 “이민 초기에 이런 저런 사업을 하면서 실패를 거듭하고 시름에 젖어있을 당시 아내가 권유한 가발무역에 뛰어들어 돈을 세기도 힘들 만큼 엄청나게 벌었다”며 “아내가 사업을 보는 안목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김 씨는 1976년 4월10일 미주지역동포로 북한의 평양을 방문해 능라도 극장에서 김일성 주석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연을 하기도 했다. 1973년에는 김씨 부부가 중공의 관동박람회를 방문해 한국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고 박정희 대통령의 경회루 만찬에 초대되기도 했다.
이어서 김 씨는 LA에서 공연된 오페라 ‘루치아’(1979년), ‘대춘향전’(1981년)에서 주연을 맡는 등 활발한 연주활동을 계속 해왔다.
특히 김 씨는 46세의 나이에 1983년 8월26~2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김자경 오페라단이 공연하는 베르디의 오페라 춘희에서 주인공 비올레타 역으로 출연해 ‘40대 중반에 고국무대 데뷔’라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2001년 6월9일 콜번 예술학교 지퍼홀에서 열린 LA연합감리교회 2세 목회와 청년회 활동을 위한 기금모금 음악회에는 김 씨가 성악가, 딸 데보라 정씨가 바이얼린 주자, 손녀 레이철 양이 피아노 주자로 출연해 할머니와 딸, 손녀 3대가 한 무대에 서는 이색적인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김 씨는 2007년 월트디즈니 콘서트홀에서 프로뮤지카 오케스트라와 솔로 리사이틀을 갖고 한국과 미국에서 7번의 독창회를 진행했으며 12개의 솔로 CD를 내어놓는 등 평생 성악가로서 왕성한 음악활동을 해왔다. 2016년에는 LA 한인타운을 방문했던 힐라리 클린턴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선거기금모금 파티에서 미 국가를 부르기도 했다.
김시면 씨는 “아내의 목소리가 호소력이 있어 청중들의 심금을 자아냈다”며 “그녀의 목소리에 감동을 받은 청중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2004년에는 남가주 한국학교 이사를 지내는 등 사회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녀는 개신교 성도로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서로 사랑하자’를 평생 모토로 삼아왔으며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등 숨은 봉사활동을 많이 해왔다.
김시면 씨는 “아내가 자녀교육에도 열심이어서 큰 딸 하버드, 둘째 딸 프린스턴, 세째 딸을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등 명문대에 입학시키고 피아노와 첼로, 바이얼린 레슨은 물론 테니스, 아이스 스케이팅 등 과외활동을 하는 것도 열심으로 후원해 자녀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하는 데 헌신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남편 김시면 씨와의 사이에 출가한 큰 딸 미란(Cedina,변호사), 둘째 딸 영란(Doris, USC 건축과 교수) 셋째 딸 효란(Deborah,바이얼리니스트)과 2명의 손자, 5명의 손녀를 두었다.
돌아가신 분의 업적을 기리고 유가족과 함께 고인의 추억을 나누고자 합니다. 평생을 열심히 일하시고 돌아가신 분들의 소식을 알려주시면 게재해드리겠습니다.
▲연락처: peterpak@koreatimes.com, (323)692-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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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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