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무스레한 고목들 사이로 가늘게 눈 덮인 공원 오솔길을 걷고 있다. 마침 반대편에서 늙은 말 하나가 코에 하얀 김을 내뿜으며 뚱뚱한 여자를 태우고 걸어온다. 말은 몇 뭉치의 똥을 대지 위에 뿌려 놓는다. 배설은 일반적으로 쾌감을 수반한다.
생명에 필요한 영양분을 빼낸 후 찌꺼기만 내보내는 청소작업이 배설이다. 몸 청소는 사람됨의 껍데기만 깨끗하게 한다. 마음 영혼을 말끔히 씻어 주어야 진짜 사람됨을 만들어 준다. 정신과에서는 이를 정화(Catharsis)라 부른다.
정화는 그리스 말로 씻겨낸다는 뜻인데 당시 예술문화 영역에서 사용되었다. 슬픈 책을 읽거나, 슬픈 노래를 듣거나, 비극을 관람하는 중에 느낄 수 있는 고통, 연민, 분노 감정들을 잘 소화시켜 배설함으로써 영혼을 청소하는 과정으로 생각했다.
19세기 말 프로이드는 모든 정신장애의 요인을 콤플렉스로 보고 환자가 이를 인식해 추방한 후 심적 평온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정화라 했다. 무의식 속에 관념이나 감정으로 억눌려있는 콤플렉스를 해소하고 배설함으로써 마음의 답답함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이다.
추수감사절이 지난 이맘때면 생각나는 환자가 있다. 30대 중반의 건장한 남자였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잘 생긴 남자동료와 섹스하고 싶은 흥분과 충동이 자꾸 일어나 근무에 지장이 많으니 도와 달라는 하소연이었다.
그는 고교시절 여러 명의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도 2주간 보이스카웃 캠핑을 갔을 때 가장 핸섬한 소년한테 성적 끌림을 경험했다. 그후 자기보다 잘 생긴 남성을 보면 왠지 성적매력을 느끼며 가깝게 지내고 싶었다.
이런 동성애적 성향을 없애버리려고 결혼도 일찍 하고 자식도 두었지만 그의 집착은 사라지지 않았다. 최근 성적매력을 느낀 직장동료가 갑자기 미워지고 역겨워 때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자 가슴이 두근거리며 숨쉬기가 곤란하고, 손에 땀이 나고, 다리가 후들 후들 떨렸다. 동시에 그에 대해 미안하고, 죄스러워 밤잠도 설치고 우울하기만 했다. 이 모든 문제가 자기의 내면에 들어앉은 동성애 욕망이기에 이를 깨끗이 씻어줄 의사를 찾아온 것이다.
인간은 양성(Bisexual) 심리상태를 가지고 있으므로 누구나 동성애적 성향이 잠재되어 있다는 프로이드의 언급 이래 잠재적 동성애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일부 심리학자들은 잠복 동성애란 치유자가 만들어 낸 산물이라 비난한다. 즉 치유자가 동성애 말을 꺼내기 전까지 환자는 전혀 몰랐는데 넌지시 암시하는 말을 듣고 보니 자신이 동성애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믿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게이는 잠재적 동성애 성향이 의식상태에서 외부로 드러난 소수의 케이스다. 상당수는 잠복성향이 사회적 타부나 규범 때문에 의식 밖으로 나오지 못하다가 기회가 오면 다른 증세로 대치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동성애적 성향은 부정이나 반동작용(Reaction Formation) 같은 내면의 방어기제로 인해 무의식 속에 꽁꽁 묶여 평생 나타나지 않는다.
잠재적 동성애자는 가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동성애자 혐오나 차별태도를 보이기도 하고, 그로 인한 미안함, 죄책감으로 심한 불안증세를 보이는 현상을 동성애적 공황상태라 부른다.
왜 인간은 잠재적 동성애를 가지고 있을까?
대다수의 분석심리학자는 자아발달 과정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잘 해결하지 못해 자신과 동성 부모와의 동일화 형성관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오이디푸스 이전인 분리개별(Separation- Individuation) 단계에서 엄마와의 공생관계, 즉 모자 단일체를 벗어나지 못해 독립적 개체로서 성장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지금은 잠재적 동성애를 생물학적(홀몬적), 심리학적, 발달학적, 문화적 영향의 복잡한 상호작용과 연관된 내면의 심리상태로 설명하고 있다. 미 정신의학협회는 1973년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했다. 한편 보수 종교단체는 여전히 동성애를 죄로 취급한다.
칼 융은 “인간의 내면에는 모든 대상에 대한 욕정과 공포가 함께 존재하며 이는 집단무의식을 통해 대대로 내려온다”고 했다. 이 말을 통해 동성애자들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줄고 마음이 편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
게이나 래스비언들은 어찌 보면 대다수의 우리보다 용감하고 솔직한 소수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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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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