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대화 관계 수립 30주년을 기념해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11월25일부터 이틀간 열렸고, 27일에는 제1차 한·메콩 정상회의가 개최됐다. 이번 정상회의는 관련 행사를 포함해 양측 국민과 기업인 등 약 1만명 이상이 참가한 현 정부 출범 이후 최대 규모의 다자회의였다. 아세안 10개국은 인구 6억5,000만명에 평균연령 30세로 성장잠재력이 매우 큰 시장이다. 한국 수출의 18%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교역 상대국이면서 세 번째로 큰 투자대상 지역이다. 지난 30년 동안 교역 20배, 투자 70배, 인적교류 40배 이상 증가했을 정도로 이 지역의 중요성은 커졌다.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태국과 투자협력 양해각서 체결, 인도네시아와 7년을 끌어온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최종 타결, 필리핀과 자유무역협정(FTA) 조기 체결 합의, 한·아세안 공동 비전성명 채택 등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특히 현 정부 핵심 통상전략인 신남방정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구체적 성과를 도출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정상들은 역내 발전을 위해 교역·투자를 활성화하고 모든 형태의 보호무역주의에 반대한다는 의지를 재확인했으며 역내 개발격차 완화를 위한 협력도 지속하기로 했다. 또한 한·아세안 간 교역·투자·연계성, 소상공인·중소기업, 스타트업 파트너십·혁신 등에서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통합되고, 평화롭고, 안정적인 공동체’라는 아세안 비전에 대한 공통된 목표를 토대로 ‘사람 중심의 평화·번영 공동체’를 구축해나가기로 했다.
이는 2017년 11월 ‘한·인도네시아 비즈니스 포럼’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선언한 ‘신남방정책’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신남방정책은 ‘사람 중심의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를 만든다는 비전 아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아세안·인도와 전면적 협력을 추진해나가겠다는 것이다. 미중 패권분쟁이 격화되고 있고 일본과의 통상갈등도 심화되는 상황에서 신남방지역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한·아세안 특별정상희의 선언이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신남방정책의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경제 중심’, 이명박 정부의 ‘신(新)아시아 구상’,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 과거에도 정권마다 아시아권을 아우르는 새로운 정책들이 발표됐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아세안 국가와의 교역과 투자가 큰 폭으로 증가했지만 이러한 정책들의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악화되는 국내 기업활동 여건을 극복하고 살아남기 위해 기업들 스스로 선택하고 노력한 결과로 보인다.
이번 선언이 실질적 의미를 가지려면 ‘상생 번영을 위한 경제협력 기반 구축’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신남방정책에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역투자 증진을 위한 제도적 기반 강화’, ‘인프라 개발 참여’, ‘중소·중견기업 시장진출 지원’, ‘신산업 및 스마트 협력을 통한 혁신성장 역량 제고’, ‘국별 맞춤형 협력모델 개발’ 등 5개 과제가 선정됐다. 이 과제들이 일방적 희망사항을 열거한 것에 그치지 않기 위해 아세안 국가들이 실질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이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보다 ‘열린 자세’로 대화 채널을 구축하고 장기적 전략을 세워나가야 한다.
예를 들어, 아세안이 2016년 발표한 ‘아세안 연계성 마스터플랜 2025’에 따라 추진되는 다양한 사업과 2018년 출범한 ‘아세안 스마트시티 네트워크(ASCN) 사업’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의지 표명이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사업추진 배경과 국가별 역내 역학관계에 대한 이해와 네트워크 구축이 필수적이다. 2007년 일본이 지원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설립된 아세안·동아시아 경제연구센터(ERIA)가 아세안 주요 거점을 연결하는 중장기 플랜을 수립했으며 이를 통해 관련 인프라 구축사업이 사실상 일본의 마스터플랜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아세안 정상회의는 새로운 출발점이 돼야 한다. 과거 정책들이 왜 성과가 없었는지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 참여국 정상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한국과의 경제협력 강화이고 그 핵심에는 기업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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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수 숙명여대 교수·한국국제통상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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