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죽음,그리고 미학- 복수와 정의
월매의 ‘몽룡 장원급제’ 기원엔 원망과 함께 간절한 사랑 담겨
▶ 그리스 비극 ‘오레스테이아’서도 ‘복수의 반복’ 사법 정의로 마무리
‘춘향전’의 한 대목에 이런 장면이 등장한다. 이몽룡이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간다. 성춘향과 그녀의 모친 월매는 남원에 남아 그를 기다린다. 과거에 급제한 이몽룡은 암행어사가 돼 다시 남원 땅을 밟는다. 처갓집에 당도하자 그는 대문으로 곧장 들어가지 않고 담장 너머를 기웃거린다. 그때 월매가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하는 모습을 본다. 월매는 사위가 꼭 장원급제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원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이몽룡은 뒤늦은 깨달음의 탄식을 터트린다.‘내가 내 힘으로 급제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장모의 지극 정성 때문이었구나.’
자기 잘난 탓에 이룰 수 있는 일은 극히 적다. 내 신변상에 무언가 크고 멋진 일이 일어날 때는 보이든 보이지 않든 그 일을 도와준 사람들이 많기 마련이다. 잊지 않고 그들에게 감사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반드시 길러야 할 덕성이다.
앞에서 월매가 기도한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사위가 장원급제해 옥중에 갇힌 딸 춘향이를 구해달라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기복(祈福)이다. 이런 기도 속에는 미움의 감정도 섞여 있기 마련이다. ‘내 딸은 이리 고생하고 있는데, 너는 도대체 뭐하고 있는 것이냐’며 사위를 원망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변 사또에 대한 원한의 불길이 활활 타오를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의 기도에는 소원과 원망이 혼재해 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한은 크게 정한(情恨)과 원한(怨恨)으로 구분된다. 전자가 긍정적인 정념이라면 후자는 부정적인 정념이다. 전자가 자책하면서도 사랑의 희망을 놓지 않는 반면 후자는 사랑의 대상에 대한 공격성을 주된 내용으로 삼고 있다. 기도에는 보통 이런 두 종류의 한이 어려 있다.
원한은 복수의 감정이다. 복수란 무엇일까. 앙갚음이다. 최소한 받은 만큼을 되돌려 갚아주는 행위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그것을 대변한다. 이런 복수가 원초적인 정의의 모습이다. 사법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과거에 그토록 많은 사람이 복수에 목을 맨 이유다. 옛날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이 망가지는 줄 알면서도 복수에 집착했다. 그것이 인륜도덕의 근간이라고 봤고 인간이 금수와 다른 점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가 피를 부르는 복수의 악순환 때문에 사법질서가 마련됐다. 제3 자인 판사(혹은 배심원)와 법이 공정하게 죄를 심판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러나 복수는 여전히 원초적인 정의감에 속한다. 법적 정의 역시 죄에 따른 응분의 벌을 내리는 등가교환의 원리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복수의 원리를 바탕에 깔고 있다.
그리스 비극작가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에는 복수의 여신들이 등장한다. 트로이전쟁에서 그리스 총사령관이었던 아가멤논은 군함의 출항을 위해 딸 이피게네이아를 희생양으로 바친다. 그의 아내인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딸을 죽인 비정한 남편에게 앙심을 품고 그가 전쟁의 승리자로 돌아왔을 때 잔혹하게 살해한다. 이어 아들이자 왕위 승계인 오레스테스가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죽인다. 복수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반복된다. 이때 망령이 된 클리타임네스트라가 복수의 여신들을 일깨워 아들을 괴롭혔기에 오레스테스는 거의 미치광이가 된다. 이것을 아테네 신이 중재한다.
복수의 여신들과 새로운 정의의 신 아폴론을 법정에 세운다. 복수의 여신들, 즉 구(舊) 정의와 아폴론, (공)권력이 확보해준 신(新) 정의가 열띤 논쟁을 벌이고 결국 아폴론의 승리로 귀결된다. 논쟁의 장소가 법정이라는 점에서 벌써 승패는 판가름 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혜로운 아테네는 복수의 여신들을 자비로운 여신들로 승격시킨다.
원초적 정의인 복수가 사법적 정의로 이행되는 것은 합리적인 과정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활개치며 다니는 전두환씨는 5·18 희생자 유가족에게 과연 어떻게 보일까. 연쇄살인범에게 딸을 잃은 아버지는 법정이 내린 살인범의 형량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이스킬로스가 복수의 여신들을 끝까지 배려한 까닭은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복수심은 여전히 정의감의 원천이다. 그리고 아무리 세련된 사법 정의라도 기본적으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죄와 벌의 등가 원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복수와 정의는 우리의 통념보다 훨씬 더 친밀한 관계일지도 모른다. 지극히 주관적인 ‘짜증’이 아니라면 한 개인의 분노가 ‘공분’으로 전환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의문을 풀자. 왜 복수(revenge)의 여신들은 복수(plural)로 설정됐을까. 신화적으로는 그들이 에리니에스 세 자매로 묘사돼 있다. 춘향전에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숨은 조력자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도 마찬가지 아닐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들이 나로 인해 다칠 수 있다. 그렇다면 나의 죄를 응징하려는 이들은 복수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심코 던진 돌에 죽은 개구리’라는 말도 있듯이 한 사람의 과오는 뜻밖의 사람에게도 해를 미칠 수 있다. 직접적인 피해당사자에게 겨우 용서를 받았다 해도 온전한 해원을 성취하기 어려운 이유다.
진정한 기도는 한갓 복을 구하는 행위가 아니다. 고마운 이들에게 감사하고 폐를 끼친 이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행위다. 잘 알고 있는 대상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전혀 모르는 존재들에게도 감사와 사죄의 마음이 전해지기를 간절히 청하는 행위다. 당연히 간청하는 기도는 자신을 하염없이 낮추는 자세에서 시작된다.
다른 한편 기도란 자신이 타인을 용서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원이기도 하다. 가혹한 복수로도 사법 집행으로도 결코 분이 풀리지 않는 이들을 용서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기도는 이런 불가능한 용서를 실천하도록 심신을 가다듬는 사랑의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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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한국연구원 학술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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