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이정(元亨利貞)의 순리대로 서로 다투며 햇살을 따라 아우성치며 무성히도 자랐던 초록의 잎새가 떨어져 나그네 새도 드문 나무의 성긴 가지마다 초동(初冬)의 세우(細雨)가 내려 이슬점이 오르내리는 강변을 따라 폐허가된 운하의 둑을 따라 우리는 걷는다. 더욱이 지지난주 일요일은 수원에서 나를 찾아온 두루춘풍 내외와 우리 내외 그리고 사계삭(四季朔)의 마지막 12월 바람 소리와 함께 걸었다.
으레 그러하듯 우리도 남북한의 이야기, 명주실처럼 엉켜있는 정치판 이야기, 그리고 이제는 모두 종심(從心)을 넘어 망팔십(望八十)이 된 그때 그사람들의 은우(隱優)를 이야기하며 굽어만가는 등을 가끔씩 뒤로 젖치며 뜬금 없이 양심 있는 사람들의 궁팔십(窮八十)과 인간으로 태어났는데도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전두환류의 달팔십(達八十)을 눈감어주는 하늘의 불평등을 이야기 하면서 한 시간여를 걸었다.
또 마누라가 미우면 손자까지 밉다고 폐운하를 보면 으레 작은 눈이 멀리 본다는 두더지 위인이 생각나곤 한다. 국민의 돈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수십조원을 빼돌려 엄마의 젖줄을 끊어 정한수를 더럽히고, 조상의 얼을 품은 도지(道地)의 맥을 끊어버리고 강산의 청천(淸泉) 틀어막어 더럽힌 일규불통(一揆不通)인 아끼히로(이명박의 일본태생 이름)와 좀비가 된듯한 먹물인 어느 음객(吟客)은 칼럼으로 보아 동주를 사모하면서 그 동주를 죽인 왜놈들의 길라잡이 가야마 미쓰로(이광수)를 멘토로 삼는 모순과 위선이 생각나서 나는 잔돌을 걷어차며 길을 걸었다.
폐운하의 양옆으로 늘어선 나뭇가지에 마지막 힘을 다해 매달린 황달병이 깊은 잎새들의 아우성은, 시인들을 부르고 계절의 물감에 취한 만다라(曼茶羅)의 나무들은 속살을 내보이며 화객을 유혹하고 어림짐작으로 초고리 정도는 될까하는 재지니가 분명한 새매가 성긴 나무가지 사이로 날아다니는 강변의 산책길은, 성스러운 순례길이 아닌 누군가에는 애정의 길이 되고, 갈등의 길이 되고, 희망과 절망의 길이 되고 이성과 지혜의 길이 되기도 한다.
나는 재지니의 울음소리와 찬바람을 가르는 나무들의 소리를 들으면서 강원도 깊은 골에서 불린다는 한 많은 애련(哀戀)을 생각한다. “산천 초목 타는 불은/ 세우(細雨)라도 끄지만/ 이내가슴 타는 불불은/ 억수라도 아니 꺼지리” 곧이어 나의 상상은 대붕(大鵬)이 된다. 해(日)와 달(月)이 만나(明) 남녀인 사람(人)이 되어 죽을때 까지 말(言)로 굳게 약속(信)한 명신(明信)은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이내 가슴 타는 불”이 되어 한 많은 노래가 되었고. 지금은 다시 소월의 초혼(招魂)으로 강신(降神)하여 포토맥 강변 내앞에서 강신무(舞)를 추고 있다.
나의 상상은 우주만큼이나 넓고 크다. 이 가슴 아픈 노래는 어쩌면 천민의 아들이 초봄에 피어 오르는 아지랑이처럼 신채기(辛菜氣) 넘치는 접지머리 주인집 처녀와 남몰래 눈흘레(눈맞춤)만을 주고 받던 금지된 첫사랑이었거나 아니면 애련의 한 많은 초념(初念)의 사랑이리라.
지지난 일요일 나를 찾아온 친구 내외가 마련한 돼지 불고기를 전우들은 참숯을 피워 굽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소설속에 나오는 여걸을 닮은 별명이 홍마담인 도꼭지 산악회장의 즉석 청경채 버무리 무침은 별 넷을 자랑하는 그 어느 세프도 울고갈 솜씨로 햄버거에 찌들은 미각을 되살리고 전우들은 고향이 제각기여서 마산댁, 순천댁, 옹산댁, 안성댁, 수원댁들의 독특한 고향맛을 자랑하는 반찬들은 이제 모두 건강 식품이 되었다.
그 옛날 어느 선사가 일일 부작(日日不作)이면 일일불식(日一不食)이라고 일갈했지만 오늘은 일요일. 점(點)처럼 적게 먹으라는 점심(點心)을 백약지장(百藥之將)이요 반야탕(般若湯)인 주(酒)님을 모시고 북장구처럼 푸짐하게 먹는다. 몸 어느 한구석이 불편하고 아프면 죽음이 간간히 생각이나서 먹느니 약이요 찾느니 병원이지만 벽을 등지고 은단 집어먹은 병아리처럼 같잖은 연속극 앞에서 자울 자울 졸지말고 우리 모두 걷자. 오늘도 걷고 내일도 걸어 늙음의 허무한 마음과 아픔의 병마(病魔)고지를 넘고 넘어 백마(百魔)고지를 점령하고 약식동원(藥食同源)인 보약이 되는 점심으로 건강을 지키자.
걸신처럼 점심을 먹어 치운 두루춘풍 친구 왈 “미국에 이런 분위기와 맛이 살아 있다니!” 오래된 친구 내외의 얼굴은 개근상을 받은 초등생 얼굴이 되어 있었다. 오늘의 마지막 역시 신 다방의 별명을 얻은 포토맥 강변의 임시 야외 다방에서 정성을 다해 서비스하는 양탕국(고종이 제일 먼저 마신 커피의 최초 이름)의 깊고도 진한 커피맛으로 언제나 그러하듯 일요일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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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원 / 락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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