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시피 강 하구에 있는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는 특별히 컨벤션 등이 있지 않는 한 LA에서는 일부러 찾아갈 일이 드문 곳이다. 조지아, 플로리다 주 등과 함께 동남권에 속해 있는데다 식품 등 비즈니스는 텍사스와 연결된 곳이 많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엄청난 피해를 입긴 했지만 뉴올리언스는 여러 면에서 매력적인 곳이다. 재즈의 발상지로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배경이기도 한 프렌치 쿼터, 멕시코 만에서 나오는 풍부한 해산물과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 크레올과 케이전 푸드 등. 역사를 알고 가면 즐거움이 배가 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메트로 뉴올리언스의 한인사회 규모가 몇 백명 수준이던 때, 이민 100주년 취재로 갔던 적 이야기니 한참 된 일이긴 하나 거기서 만났던 한인들은 그 고장의 자랑을 마음껏 했다. 많은 좋은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신문사로 돌아온 뒤 뉴올리언스에서 전화가 왔다. 너무 좋다고 쓰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너무 좋은 것만 이야기한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특히 마진이 좋다든지, 경쟁이 적어 비즈니스가 할 만하다든지 하는 이야기 등은 하지 말아 줄 것을 당부했다. 이 분들은 LA 사람들이 몰려올까 봐 걱정이었다. 전해들은 LA식 생활력과 전투력을 우려하고 있었다. 이 ‘순수한 근심’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하나, 잠시 혼란스러웠다.
얼마 전 이 같은 뉴올리언스 체험에 기시감(Deja Vu)이 드는 기사를 읽었다. 외지인들은 ‘보이지’, 그곳 사람들은 ‘보이시’라고 발음한다는 아이다호 주도 Boise 이야기였다. 뉴올리언스에서 온 전화가 “노 땡큐, 앤젤리노”였다면, 여기는 “노 땡큐, 캘리포니언”이었다.
이번 보이지 시장선거에서 한 후보가 내건 구호는 이랬다. ‘캘리포니아 침공 저지(Stop the California invasion)’. 길에 세워둔 차에는 알파벳 대문자로 쓴 ‘캘리포니아로 돌아가라/우린 당신이 여기 있는 걸 원치 않아(GO BACK TO CALIFORNIA/WE DON’T WANT YOU HERE)’라는 카드가 꽂혀 있었다. 차 주인은 보이지 주립대 풋볼선수 출신이었지만 문제는 캘리포니아 번호판이었다. 캘리포니언에 대한 감정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로 LA타임스는 전했다.
‘대부분의 아이다호 인들에게 캘리포니언은 메뚜기 떼의 재앙’이라는 보도가 워싱턴 포스터 지를 통해 전해지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를 아는 캘리포니아 이주자들은 잔뜩 몸을 낮춘 채, 적응에 애를 쓰지만 무료 자원봉사를 자청해도 들은 척 만 척, 찬바람이 쌩쌩 분다고 한다.
당연히 이런 적대감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실질적이다. 아이다호 주 노동부에 따르면 아이다호는 네바다와 함께 전국에서 가장 가파르게 인구가 늘고 있는 곳. 캘리포니아 이탈주민이 큰 몫을 차지한다.
이들 때문에 우선 집값과 렌트비가 급상승했다. 보이즈의 집값은 최근 1년 반 새 20% 가까이 올랐다. 서민아파트는 공실률이 0.45%로 거의 빈방이 없는 상태. 몰려오는 이주민을 감당하려면 인구 22만 8,000명의 이 중소도시는 앞으로 10년간 매해 1,000호의 신규주택을 건설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감자바위 아이다호’에 비하면 캘리포니언은 부자들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LA나 오렌지카운티 같은 곳에서 집을 팔고 가면 여기서는 같은 규모의 집 2~3채를 살 수 있었다. 최저임금만 해도 예컨대 LA가 14달러 25센트인 반면 보이지는 7달러 25센트. LA 곳곳에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변형판이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텍사스, 네바다, 아이다호 등으로 탈출하는 것은 캘리포니아가 살기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타주에 있는 자식을 불러들여 가까운 곳에서 같이 살고 싶지만 다운페이라도 도와줄 형편이 안 되는 부모라면, “괜히 불러 왔다가 자식이 평생 집 한 칸 지니지 못하고 살지나 않을까 걱정”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남가주의 주거비는 턱없이 높다. 게다가 새로 나오는 법이란 게 죄다 비즈니스의 목을 옥죄는 것들뿐이고-.
“인구 20만명이 좀 넘는 도시에 일 년에 2~3만명이 살겠다고 몰려온다면 당신은 어떡하시겠소. 만약 내가 왕이 될 수 있다면 260억 달러를 들여 아이다호 전체에 장벽부터 칠거요”라는 이야기도 보이지에서 나왔다. 트럼프의 멕시코 장벽 아이디어가 엉뚱한 곳에서 차용될 정도로 이곳 주민들의 심정은 지금 절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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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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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주도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빈땅 천지인데 한국처럼 대규모 주택단지를 여기저기 세우면 주택난이 해결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