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시만씨 향년 84세
▶ 1970년초 가족 이민, 자녀들 위해 헌신...나눔과 배려 한평생
김시만씨는 남편 김학배씨와 카셀스 식당을 주류사회에서도 유명한 햄버거 식당으로 키웠다.
“어머니는 이웃들에게 베푸는 삶을 사셨습니다. 마지막에 지병이 깊어져서 양로병원에 가서도 같이 있는 환자들이나 간호사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좋아하셔서 어머니가 필요한 물품을 살 때도 2~3배를 더 사 드렸습니다”
지난 11월 2일, 84세에 타계한 김시만 씨의 장남 김종식 씨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속 깊이 따뜻함이 느껴진다”며 “평생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셔서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주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1935년 3월15일 서울 서대문 충정로에서 출생한 김시만 씨는 1956년 김학배씨와 결혼했으며 1남2녀의 자녀와 3명의 손자, 5명의 손녀를 두었다.
지난 1971년 12월22일에 LA로 가족 이민을 와서 자녀들을 명문대에 보내고 프로패셔널과 비즈니스 우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자녀들의 뒷바라지를 했다. 이민 초창기에 밴나이스에서 거주할 때 젊은 신혼 부부들이 일하러 가면서 김씨에게 자녀들을 맡기고 가곤 했는데,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정성을 다해서 키워주는 등 아이들을 끔찍히 좋아했다고 한다. 또한 음식 솜씨가 좋아서 맛있게 김치를 담궈서 이웃들에게 많이 나눠주어 인근에서 그녀의 김치를 먹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없을 정도였다.
김시만 씨의 장남 김종식 씨는 재정서비스 분야에서 37년간 일하고 있는 매스뮤추얼 파이낸셜 그룹의 공인재정서비스 전문인으로 한인사회에 잘 알려져 있다. 큰 딸 캐더린은 우드핸드 힐스에서 미국 식당을 운영하다 현재는 오리건으로 이주해 영양사 일을 하고 있으며 작은 딸 헬렌은 맨해턴 비치에서 ‘슬로피스’라는 유명 미국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김학배,시만 씨 부부는 1977년부터 밴나이스에서 주유소가 달린 마켓을 10년 가까이 운영하다가 몇 차례 강도를 당하기도 했다. 김종식 씨는 “부모님이 자녀들을 교육하고 부양하기 위해 1년 365일을 하루도 쉬지 않고 새벽부터 밤까지 마켓에서 열심히 일을 했다”고 밝혔다.
김씨 부부는 우연한 기회에 지난 1986년 카셀이라는 유대인 주인으로부터 한인타운 6가와 베렌도에 위치한 햄버거 식당 ‘카셀스 햄버거’(Cassell’s Hamburger)를 인수하게 됐다. 김씨 부부는 카셀로부터 햄버거 맛을 내는 비법을 배웠으며 주인이었던 카셀은 식당을 매각한 후에도 10년 동안을 주방에서 쿡으로 일하면서 카셀스 특유의 햄버거 맛을 김씨에게 계승해 더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시만 씨는 캐시어부터 시작해 쿡은 물론 새벽마다 식재료를 매입하는 일까지 남편과 함께 하면서 식당에 대한 전반적인 운영을 배웠다.
이런 가운데 LA타임스와 CBS, FOX 11 등 주류 언론은 물론 레스토랑 가이드 자갓(Zagat) 등 까다롭기로 소문난 음식 평론가들이 카셀스 햄버거를 LA 최고의 햄버거라고 극찬하면서 한인사회보다는 주류사회에서 더 명성을 얻는 식당으로 자리를 잡았다. 한국에까지 햄버거 맛이 알려져 한국에서 온 관광객도 즐겨 찾는 명소로 자리잡았다.
김종식 씨는 “부모님이 과일과 신선한 야채를 곁들인 햄버거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했기 때문에 햄버거 계의 ‘넘버 원’ 자리를 고수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김시만 씨는 고객이 음료수나 음식이 조금 부족하다 싶으면 바로 서비스를 하는 등 인심이 좋아 단골 고객들이 항상 ‘마마’라고 부르면서 그녀를 무척 따랐다고 한다.
김종식 씨는 “1948년 문을 연 카셀은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가 대를 물려 찾아오고 칼라바사스와 팔로스버디스 등 먼 곳에서도 오직 맛있는 햄버거를 먹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들로 장사진을 이뤘다”며 “어머니가 항상 미소를 지으면서 고객들에게 싸고 푸짐한 음식을 맛있게 제공하려는 배려의 마음도 식당의 성공에 큰 몫을 했다”고 밝혔다.
김씨 부부는 1986년부터 2003년까지 카셀스 햄버거 식당을 운영했으며 이후 김종식 씨가 부모로부터 이 식당을 이어받아 10년간 더 운영했다. 2015년에는 카셀스 브랜드를 6가와 노르만디 호텔 주인에 매각해 김씨 부부의 정성과 애환이 녹아 있는 카셀스는 계속 유명 햄버거 식당으로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김 씨의 남편 김학배 씨는 지난 2005년 2월27일 작고했다.
김종식 씨는 “어머니가 일제시대와 6.25전쟁 등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겪으면서 이래저래 참 고생을 참 많이 하셨다”며 “항상 미소를 띤 얼굴로 나눔과 배려의 삶을 강조하신 어머니의 이웃사랑이 자신에게도 전수돼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데 많은 힘이 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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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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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hf1991 님...'84세로 타계한 김시만씨의 유가족인 장남 김 종식씨는' 이라고 작성해야 맞는거 란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