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는 자기 삶에 있어서 ‘꽃처럼 아름다웠던 시절’ 그 한 때를 의미하는 광동어식 표현이다. 이 동명의 화양연화(in the mood for love)를 2000년 홍콩의 왕가위 감독이 발표한 후, 당시의 복고적 취향과 유행이 덧붙여지면서 ‘화양연화’라는 말은 더욱 더 많이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다.
영화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중국의 모택동이 벌인 대약진운동이 실패하자 그걸 만회하기 위해 문화혁명이 시작되고, 그 등쌀을 견디지 못한 본토인이 대거 홍콩에 몰려드는 1962년, 어느 작은 아파트에 두 가정이 이사를 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좁은 복도와 쪽방을 겨우 면한 도시의 어두운 방, 피난민과 다르지 않은 지친 도시민들이 모여 살던 곳, 그 곳에도 삶의 결은 엄연히 있었던 듯하다.
일상의 우울한 도시를 걸어도 스치게 되고, 좁은 아파트 복도에서 부딪히는 공연히 눈이 가는 이웃의 여자, 날렵한 치파우를 입어 그 숨 막히게 터져있는 치맛단과 관능의 옆트임을 품고 있는 여자에게 처음엔 그저 의례적인 눈인사만 나누는 게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아내가 들고 다니는 외국산 핸드백을 같은 시기에 너무나도 우연히 똑같이 들고 다니던 바로 그 여자가 남자의 넥타이를 보며 얘기한다. “내 남편에게도 같은 타이가 있어요. 출장이 잦은 당신의 아내가 일본에 있었을 때 제 남편도 역시 일본에 있었음을 우연히 알게 되었구요.” 장면은 암전한다. 그러니까 둘은 마침내 이웃하여 살고 있는 그들의 배우자가 이윽고 불륜의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무거운 침묵으로 확인하게 된다.
영화는 이 둘이 빠져 있는 상황을 영화 특유의 저속촬영과 그것도 지나친 슬로우 모션기법과 원샷처리로 질식하리만큼 아름답고 매우 지루하고도 삼엄하게 처리한다. 게다가 음악은 어느덧 3/4박자, 바닥 안개처럼 깔리는 첼로 연주로 ‘유메지의 테마’를 연주하고 있어 긴장감 있는 애조를 자아내며 우리가 한번쯤 겪었음직한 기억의 통로로 연결해준다.
그것도 같은 걸 경험하게 된 후 겪게 되는 그들만의 결속감이었을까. 둘은 그 이후 서로 끌려 소심한 밀회를 하게 되지만, 언제나 애매하게 서로를 타이르듯 “우리는 그들과 다르잖아요”라는 말로 아직까지는 이성이 감성을 버텨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들의 관계가 배우자들의 불륜으로, 이른바 복수적 맞바람의 결과로 그들이 그렇게 되었는지 아니면 애초에 그들이 먼저 서로에게 끌려 품었던 연정이 비로소 배우자들의 불륜을 빌미로 정당화되어 그렇게 맺어졌는지를 스스로에게 자문하게 된다.
서로를 그토록 원했으나 결국 자신들의 운명을 거슬리지는 못한 사랑, 정말 초인적인 도덕감으로 절제된 그들의 이야기는 안타깝게도 아주 간신히 그들 본연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뭘 한 것도 아니었지만 남들에게 내보일 만큼 그렇게 떳떳한 감정 또한 아니었기에, 서로는 둘의 운명을 예감하고 그들이 먼저 행하는 이별연습은 참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묘하게 서늘한 감동을 준다. 남자가 말한다 “당신을 위해서라도 내가 떠나야겠어요.” “그럼 날 사랑했단 말인가요?” “나도 모르게 그만 그렇소.” “부탁이 있어요. 그럼 내가 그 슬픔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 이별연습을 해봐요.” “그래요 마지막으로 묻겠소. 만약에 내게 당신의 자리가 있다면 그럼 내게 오겠소?” 여자는 말없이 돌아서서 등줄기를 흔들며 오열한다. 치파우의 목을 감싸고 있는 깃만이 홀로 비오는 전등 밑에서 가련했다. 애석하게도 그들이 살아서는 다시 보지 못하는 마지막 만남이 그것이었다.
얼마후 이별의 작은 의식인양 남자는 전에 그녀에게 주려 샀던 반지를 어느 고목의 작은 구멍에 넣고는 그 나무 구멍에 대고 그들의 마지막 비밀을 속삭인다. 그리고 그 구멍을 진흙으로 봉한 후 마지막 독백을 한다. “먼지 낀 창을 통해 보듯 이제 지난 모든 날들이 온통 희미하기만 하다. 그마저도 그 시절은 갔고 거기 이제 아무것도 없다.”하며 어쩜 처음부터 사랑이 아니었을 지도 모를 그들의 이야기를 영원히 묻게 된다.
이제 우리들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화양연화는 과연 언제였을까. 번성하면 사위어 가는 것도 우리들의 젊음이며, 스스로가 내린 선택이 곧잘 후회가 되듯 꼭 늦은 가을밤이 아니더라도 우린 그렇게 불면의 밤 속으로 걸어가기도 한다. 어쩌면 세월 저쪽 기억의 편린으로 웅크리고 있던 한낱 한 장의 사진이 어느 날 갑자기 기억의 왜곡이 일어나 자칫 사랑의 단계로 잘못 끌어 올려진 그런 기억의 물고기는 아니었을까.
그건 별로 중요치 않다. 하지만 결국 그건 아름답고 애절한 그들의 이별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도 흐트러짐 없이 살아가는 우리가 그 때를 추억하는, 바로 우리일 수도 있는 그들의 이야기어서 더욱 가슴이 저리는, 어느덧 그런 계절이 성큼 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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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혜 부동산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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