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을 일한 후 은퇴해 딱 1년을 쉬고 나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역사학 박사과정이었다. 6년반 만에 학위를 받았다. 만 71세. 대학졸업 후 49년,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친 뒤 46년 만에 거둔 값진 결실이었다.
박사 자격시험의 출제범위는 ‘책 300권’이었다. 그 책을 다 읽어야 했다. 박사과정을 이수하는 동안 봐야 했던 책을 더하면 500~600권쯤 됐을 거라고 한다. 한 페이지를 사선으로 죽 훑어 내려가면서 키 워드를 집어낼 수 있어야 했다.
학업 도중에 건강상의 큰 위기도 겪었다. 공부를 시작한 지 3년여 만인 지난 2015년 크리스마스 무렵, 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급속히 진전되는 유형이어서 바로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3차례의 화학치료와 한달 여간 매일 방사선 치료도 받아야 했다.
그런 어려움 가운데 2년 반이 걸려 쓴 논문이 통과돼 마침내 지난 여름학기, 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박사모를 썼다. 포모나의 박혜옥 씨가 그 주인공이다.
일흔이 넘어 박사학위를 한 분이 있다고 동료가 알려줘서 만나 뵌 만학도 박혜옥 씨는 은퇴하기 전에도 대학에서 일해 왔다. 문헌정보학에서는 최종학위인 석사를 텍사스 A&M에서 마친 그는 대학 도서관에서 주로 카탈로그를 디지털화 하는 작업을 했다. 커리어 후반기인 20년간은 칼스테이트 프레즈노에서 디지털 캠퍼스 디렉터, 칼폴리 포모나에서는 대학 강의를 온라인화하는 업무를 총괄했다.
은퇴한 지난 2011년은 캘리포니아 주가 한창 예산난을 겪을 때. 캠퍼스에 감원 바람이 불었다. “나 하나 그만두면 젊은 사람 2~3명은 쓸 수 있겠다” 싶어 스스로 물러났다. 그 뒤 1년은, 그녀의 표현을 빌면 “신나게 놀았다”. 여행도 가고, 골프도 치면서. 나머지 시간은 나를 위해 쓰고 싶었다. 공부를 다시 시작한 이유였다.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원 입학시험인 GRE를 다시 치고, 집에서 가깝기도 한 클레어몬트 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논문 소재는 패사디나 인근 헌팅턴 라이브러리에서 유명 작가인 잭 런던 컬렉션을 뒤지다 단초를 잡았다.
1904년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지 종군기자로 러일 전쟁을 취재한 잭 런던의 종군기에서 일본군 병사가 서양구두인 군화가 발에 맞지 않아 고생하는 이야기를 접했다. 그 병사는 전에 짚신을 신었다고 했다. 짚신? 그는 조선인이었다. 자취를 추적해 들어갔다. 조선인 병사는 일본군뿐 아니라 적군인 러시아 군에도 있었다.
‘러일전쟁 전후로 본 러시아 극동과 만주지역의 아리랑 민족 디아스포라에 대한 연구’(Arirang People: A Study of Koreans in Transnational Diasporas in the Russian Far East and Manchuria, 1895-1920)라는 박혜옥 씨의 긴 논문제목을 처음 봤을 때, 얼핏, 한국도 아니고 미국에서 한국 근대사 연구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몰라서 한 생각이었다.
자료는 오히려 미국 쪽이 풍성했다. 조미 우호조약이 맺어진 1882년부터 1910년까지 미국 쪽 한국 근대사 사료는 국무부 외교자료(FRUS)로 보관돼 있었다. 일본 자료는 의회 도서관에 다 있었다. 맥아더 사령부가 일본 외무성과 군무성 기록(JACAR)을 몽땅 가져와 마이크로 피쉬로 떠놨기 때문이다. 한국자료는 규장각과 이조실록 고종편 등을, 러시아 외교부와 국방부 쪽 한국관련 문서도 조사했다.
논문은 이런 자료들을 바탕으로 당시 조선인이 일본군뿐 아니라 러시아군에도 참전한 사실을 밝혀냈다. 1863년 대기근이 덮치자 함경도에서는 대거 연해주로 흘러가는 등 당시 만주와 연해주에는 조선 이주민들이 초국적 디아스포라를 형성해 살고 있었다.
러일전쟁 10년 전인 1894년 청일전쟁 때는 조선 이주민들이 청나라 군으로 참전한 기록도 확인됐다. 조선인은 일본군, 청나라군, 러시아군, 이렇게 찢어져 서로 싸웠다.
“러일전쟁 말, 미국의 주선으로 열린 1905년 포츠머스 조약으로 사실상 조선은 없어졌어요.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지요. 지금 한국정세를 보면 마치 115년 전의 일이 되풀이되는 것은 아닌가 마음이 아파요. 대원군과 민비가 싸우듯 안에서는 저렇게들 싸우고, 한국을 둘러싼 열강은 여전하고-.”
박혜옥 박사가 만학으로 가 닿은 그 때, 그 이야기가 영화나 대하드라마로 제작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민족이 겪었던 그 참담했던 서사가 웅장한 영상으로 재현된다면 저렇게 죽어라 싸우는 증오의 에너지가 혹 역사와 세계를 돌아보는 혜안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인가. 만학 이야기를 들으려고 찾아갔던 자리가 역사의 아픔과 위기를 절감하는 자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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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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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일을 하셨습니다. 한민족은 만나면 서로 물어뜯고 싸우는 골치아픈 민족성을 가지고 있다. 중국이 한반도를 흡수하지 않고 조공국으로 놔둔 이유가 있다.
Claremont College, 쉽지도 않고 학비도 비싼 좋은곳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열정에 축하를 보냅니다. 모처럼 연구하신것 가치있게 쓰실수있도록 기원과 부탁드리니다.
자기 주장에 창살없는 감옥을 만들어 우물안 개구리처럼 자기만 주장하며 자기가 자기를 죽이는 아니 남까지 나라까지 어지렵게하는 사람들 특히 종교인들..하늘이시어 어찌하오리까.....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