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저 멀리 노을 빛에 바래 불그스레 달궈진 산등성이 보인다. 산 속 곳곳엔 커다란 창문이 달린 집들이 있고, 그곳에 반사된 노을 빛은 불빛처럼 빛났다. 사방에 어둠이 내린 후엔 어떤이의 포근한 안식처였을 산 속의 불빛들. 그러나 그날밤, 산은 밤하늘과의 경계만을 남기고 어둠 속에 갇혔다. 바람은 외길로 도망치듯 소리내어 부대끼고, 어둠은 시간을 삼킨 채 고요히 침묵한다. 산 위에 사는 살아있는 모든 것과 마른가지와 먼지, 고목까지도 언제 터질지 모를 불꽃을 피해 숨어들어라. 숨소리 조차 멈추었다가 펄럭이던 먼지가 불꽃이 되지 않길. 그 속으로 타들어가지 않기를. 이 바람이 그저 지나가기를. 숨죽여 바라던 시간들.
불빛이 사라진 어둠 속을 속도를 줄이며 나아갔다. 사방을 주시하며. 불현듯 산위를 내려와 먹을 것을 찾는 동물을 만날지도 모른다. 그의 뿔에 받혀 전조등이 나가 불빛을 잃는 일은 겪고 싶지 않기에. 어둠의 길은 울타리가 없는 긴 터널처럼 뻗어 있다. 때론 구부러지고, 때론 좁아지면서. 간혹 낮동안 태양열에 충전된 렌턴이 꽂혀진 길 옆 불빛들을 스쳐 지났다. 어떤 이의 집이 그 불빛 언저리 어딘가에 있음을 알리며. 차에는 몇가지 음식과 랜턴을 챙겼다. 불빛과 전기가 사라진 이곳엔, 자연 앞에 무기력해진 인간의 불안이 어둠 속을 표효했다. 오늘 밤을 어둠 속에 보내야 하는 그녀의 집을 향해. 좁아진 길로 접어들어 오르자 건조한 바람이 휘어감고 달려 내려온다.
악마의 바람이라 불리는 강풍이 캘리포니아 산속에서 강한 화염을 몰고 사방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약 20여만의 주민들에게 강제 대피령이 내려지고, 화마로 인한 인명과 재산피해가 늘고 있다. 또 다시 어딘가에서 일어날 불꽃을 방지하고자 지난 며칠사이 주민 200만명에게 강제 단전이 강행 되었다. 학교가 휴교되고, 사람들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불편과 불안을 겪으며, 비상시를 위해 가족 중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먼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게 했다. 인간이 초래한 지구 온난화는 이제 지구 스스로를 아프게 하고, 자연과 인간의 재해란 이름으로 그 곳에 사는 모든 생명체를 위협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화마로 인한 피해 상황과 대피에 주의를 기우리고 있을때, 위험을 무릅쓰고 그 불 길 속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화마 현장에서 불길을 진압하고, 불길이 더 이상 번지지 않도록 막는 작업을 하는 이들. 그러나 그들의 숨은 노력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산불이 났을 때 불길을 진화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방벙들이 동원된다. 드론을 띄워 소화탄을 쏘거나 소방헬기를 동원하여 산불을 진압하거나 인공 비를 만들기도 하고, 진화 초기엔 산불에 맞불을 내어 산불의 이동 경로를 차단하기도 한다. 맞불을 놓아 불길을 막는 최정예 소방요원들을 ‘그래닛 마운틴 핫샷(Granite Mountain Hot Shots)’이라 부른다. 그들은 불길의 예상 경로를 파악해 땅을 파고 경계선을 만들어 나무를 잘라 묻은 후 불을 놓는다. 맞불로 방화 경계선 안의 모든 것을 태워 불길이 경계선에 왔을때 불길의 방향을 바꾸거나 자연진화 시키기 위함이다. 그러나 만일 맞불을 놓은 이후 풍향이 바뀌는 등 불길이 예상경로를 벗어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생각만으로도 암담한 이렇듯 위험한 일을 그들은 어떻게, 왜 수행해 나가는 것일까?
2013년, 애리조나 주의 최악의 산불로 기록된 야넬의 대형산불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최정예 산불 진압팀인 핫샷 19명이 한꺼번에 희생되었고, 그들의 실화를 담은 영화 ‘온리 더 브레이브’가 2017년 개봉되었다. 누군가의 아빠이며, 남편이며 가장인 그들에게 산불은 극복해야 할 임무임과 동시에 두려움이며 지켜내야 할 자신이었을 것이다. 지난 캘리포니아의 산불 진화 과정에서도 진화를 하던 소방관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다.
다시 전기가 복구되고 일상의 하루가 시작되었지만, 아직도 어느 곳에선가 바람을 탄 불꽃을 잡으러 집을 떠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어둠이 덮힌 자연 그대로의 땅은 인간이 얼마나 작고 나약한 존재인가를 실감하게 하는 동시에, 지금 누리고 있는 문화적, 기술적 혜택이 얼마나 큰 감사함이며, 이것을 지켜나가기 위해 이름 모를 누군가의 희생이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어둠이 깔린 좁은 길을 달려 그녀의 집에 도착했다. 불 꺼진 창,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을 것 같은 그곳에서 문을 두드린다. 최정예 소방대원인 핫샷팀이 목숨을 걸고 위험을 감내하며 맞불을 켰 듯, 우리 삶 속에서도 때론 더욱 소중한 것을 지켜내기 위해, 스스로의 영역에 맞불을 내어 내 마음 안과 주변의 잡풀 및 가지들을 아프게 소각해야 할 일도, 때론 내가 누군가를 위해 맞불을 켜주어야 할 때도 있음을 생각한다. 나는 묻는다. 언제, 어느 곳에, 누구를 위해 맞불을 놓을 것인가. 그러한 상황에 직면 했을 때 나는 위험을 감수 할 용기를 가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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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 SF한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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