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말과 글을 온 세계에 알려서 널리 활용되기를 소망하는 이들에 의해서 출발된 재미한국학교 워싱턴협의회가 워싱턴 DC, 메릴랜드, 버지니아, 웨스트 버지니아 지역에 위치한 한국학교들이 연합하여 창립한지 올해로 벌써 35년이 되었다.
나는 26년전에 아내와 함께 수년간 한글학교 교사생활을 했었다. 당시 상황을 더듬어 보면 한글교재도 부족했고 표준화가 되어있지 않은 데다 선생님들의 수준도 차이가 컸고 그나마 몇 년 가르치다 그만두는 분들이 많아 한글학교 운영이 쉽지 않았다. 반 편성을 학생의 수준에 맞게 나누기 보다 편의에 의해 나이와 학년을 중심으로 나누게 되다 보니 한 반의 학생 수준의 편차가 심해서 어디에 기준을 두고 가르쳐야 될지 몰라 수 년을 한글학교에 다녔지만 한글을 제대로 읽고 쓰지 못하는 학생이 많았다. 경제적으로도 한글학교의 운영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협의회는 한글을 자녀에게 가르치려고 하는 부모의 정성과 교회, 성당을 비롯한 여러 한인 공동체의 노력, 그리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봉사를 그치지 않았던 수많은 선생님들의 땀과 열정에 힘입어 눈부신 성장을 이룩하였다. 협의회 창립 당시 20여개에 불과했던 한국학교는 이제 이 지역에 100개를 넘는 양적인 부흥을 이루었고 질적으로도 큰 성장을 이루었다.
또한 한인학교, 한글학교, 한국학교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던 것을 이제는 한국학교로 명칭을 통일하였고 주미한국대사관 교육원의 표준화된 한글교재 지원, 그리고 재외동포재단의 재정적인 지원 등이 한국학교 운영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재미한국학교 워싱턴협의회는 지금도 한글과 한국문화 전달의 사명을 다하고 있고 미국 전역의 14개 재미한국학교협의회 산하 지역협의회 중 모범이 되어 왔다.
그렇지만 한국학교에 좋은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들어 미국의 이민정책이 폐쇄적인 방향으로 바뀌고 있고 본국으로부터의 이민과 유학이 줄어들고 있는 데다 한인동포의 가정에서도 자녀들을 많이 낳지 않는 것이 추세라서 한국학교에 따라서는 학생 수가 줄거나 문을 닫는 학교도 생기고 있다. 미국의 전체적인 경제는 성장을 지속하고 있지만 한인이 주로 종사하고 있는 개인사업은 10년전 경제위기 이후 회복이 지연되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이 많이 있고 따라서 교회나 한인단체들도 양적으로나 경제적인 어려움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규모가 큰 한국학교는 경제적으로 독립한 학교도 있지만 작은 학교들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곳도 아직 많이 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급변하는 교육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한국학교의 운영도 진화해야 한다. 발전과 부흥은 새로운 환경을 극복하고자 하는 도전과 열정, 그리고 회원 학교들 사이의 협력으로 이루어진다.
최근 들어 한국의 드라마, 음악, 음식, 의복 등 한국의 문화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미국에도 한류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커다란 스타디엄 운동장을 꽉 채운 수 만명의 외국인들이 한국말로 떼창을 하는 것이 이제는 더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에 따라 한인자녀들의 한국어에 대한 자부심과 관심이 높아지고 미국 주류사회에서도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학생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 2-3년간 미국의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제2외국어를 선택하는 학생들의 수가 다른 모든 외국어는 줄어들었지만 한국어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이들을 위해 우리의 한국학교가 보다 더 적극적으로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보급하기 위해 한국정부가 설립한 세종학당이 있기는 하지만 미국에만 1000여개가 넘는 한국학교에 비할 바가 아니다.
미래에는 점점 줄어드는 한인 1.5세와 2세의 한국학교 등록을 보완하는 의미도 있고 한글과 한국문화를 배우고 싶어하는 외국학생들과 성인들을 위해 우리의 한국학교가 장소를 제공해 주며 한국문화를 세계에 전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인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것은 가정에서 한글을 사용하는 우리의 2세에게 가르치는 것과 다른 면이 있다. 이미 몇 한국학교는 이를 위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이들 한국학교가 서로 협의하여 교재를 공동개발하고 경험을 나누면 다른 한국학교에서 이를 벤치마킹해서 시행착오를 줄이고 조기에 정착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김구 선생님이 평생 염원하던 미래의 통일된 대한민국이 군사적이나 경제적인 대국이 되기 보다는 문화대국이 되기를 원했던 소원이 이제 우리의 눈앞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35년의 성년에 이른 한국학교의 미래는 한편으론 어렵겠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하나의 기회이다. 우리의 한국학교가 이제 다시 한번 진화하여 한글이 국제어의 하나로 인정받는 큰 목표를 달성하는데 주춧돌이 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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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훈 / 재미한국학교 워싱턴협의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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