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아직도 한 여름처럼 뜨거웠다. 온통 셀폰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뒤엉킨 트레비 분수를 벗어나 스페인 광장으로 향했다. 옛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젤라토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던 그 대리석 계단을 추억하며 걸었다.
그런데 10년 전 이 광장에 섰을 때의 감동은 사라졌다. 계단에서 음식은 물론, 앉는 것조차 금하는 새 법령이 곧 시행된다고 했다. 좌절감이 왔다. 이 세대 마지막 낭만의 보루인 로마에서마저 자유와 추억은 사라지고 규제와 속박이 목을 죄어오는 것 같았다.
역행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세상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무너지고 있다. 포용과 용납 대신 배척과 증오, 구속과 반목의 세상으로 거꾸로 질주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정치와 환경일 것이다.
링컨의 나라, 미국도 신사도의 대국에서 패거리 붕당정치판으로 변하고 있다. 날만 새면 총기사건으로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는데도 정략에 눈먼 정치가들은 권력만 좇는 비겁한 나라가 되었다. 처칠의 나라, 영국도 유럽연합에서 탈퇴한 후 선도국임을 포기했다.
한국, 또한 위선적 정치행태로 야기된 좌우갈등이 점입가경이다. 70년 전 찬탁, 반탁 진영 간 분열과 증오의 시대로 뒷걸음질치고 있다.
환경문제 악화도 못지않다. 지구 산소를 20%나 공급하고, 동식물종의 10%가 서식하는 아마존 삼림이 불타며 근 1/5이나 소실되었다. 농지개발을 부추기는 정권이 들어선 후 산불은 빈번해지고 열대우림은 무차별 파괴되고 있다.
북극 온난화와 해빙은 더욱 심각하다. 2018년엔 북극 기온이 가장 높았다. 지난 20년 전보다 섭씨 1.7도나 상승했는데 지구 전체 평균기온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바로 북극 증폭현상이다. 즉, 빙하가 녹아 바다 면적이 넓어지면 햇빛을 더 흡수해 해수 온도가 올라가고 더 많은 얼음이 녹게 되는 악순환이다. 이 현상은 해류와 제트기류에 영향을 끼쳐 지구 전체의 이상 기온을 유발한다. 그럼에도 트럼프와 측근들은 이 엄연한 과학적 사실마저 ‘가짜 뉴스’라고 부인하고 있다.
이런 이상기후가 인간의 폭정과 겹쳐 최악의 참상을 낳고 있다. 40만이 죽고 인구의 절반이 넘는 1,200만이 난민으로 떠도는 시리아의 내전이 그 예이다. 아사드 정권의 폭정과 종교 갈등이 직접 원인이지만, 환경학자들은 지구 온난화가 몰고 온 시리아의 사상 최악의 가뭄을 주목한다. 오랜 가뭄으로 수백만 농민들이 황폐한 농지를 버리고 도시로 대이동하면서 부족 간의 갈등이 대규모 내전으로 확산됐다고 보는 것이다.
환경문제는 뜻밖에 인종차별주의로 변질되고 있다. 소위 에코 파시즘(eco fascism)이다.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선 인종 간 희생도 불사한다는 백인우월주의다. 그 파시즘이 얼마 전 뉴질랜드와 미국 엘파소에서 일어난 총기사건의 본질이었다. 범인들은 인구과잉으로부터 환경을 보호하려 타인종을 제거했다고 자백했다.
인공지능과 SNS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도 인류를 어디로 끌고 갈지 불투명하다. SNS 소통은 범람하는데 인간들은 더욱 고독하다. 인공지능이 수많은 직업을 대체함은 물론, 딥 러닝을 학습해 더욱 진화하면서 인간을 뛰어넘거나 위협하는 상황이 올 우려도 커지고 있다.
종교 또한 쇠퇴일로이다. 미국 기독교인수가 10년 전보다 거의 8%나 줄었다는 통계다. 문을 닫는 유럽의 성당과 미국의 교회가 늘어간다. 이는 세속화, 종교다원주의 영향과 함께 교회가 사회를 선도하는 빛과 소금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 데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이 역행하는 세상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는가? 그런데 서유럽을 여행하면서 일행 중에 어느 중년부인을 보았다. 무거운 캐논 카메라를 목에 걸고 땀을 흘리며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LA 집에서 불치의 병으로 누워있는 남편이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이 보고 싶다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가는 곳마다 쏟아지는 햇볕의 따스함과 미세한 바람의 속삭임, 푸른 나무의 숨소리를 담으려 애썼다. 누구나 쉽게 셀폰으로 복사하듯 사진을 찍어내는 데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해 세상의 숨은 아름다움을 찾아냈다. 마치 꺼져가는 남편의 생명을 되살리려는 간절한 기도처럼. 오직 사랑의 힘만이 역행의 시대를 돌이킬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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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봉 수필가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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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환경문제는 트럼프와 그의 추종자만이 무시하는게 아닙니다. 거의 모든 보수인들 그리고 기독교인들도 지구 온난화 안믿읍니다. 어느 교회의 목사들도 지구 온난화 걱정하는 설교나 기도 안합니다. 총기규제에 대해서도 아무 말 없읍니다. 왜? 이건 진보들이 주장하는것이기때문이죠. 반면 왜치는건 동성애반대, 낙태반대, 불체자반대입니다. 요즘의 기독교인들은 옛 바리세인들과 다른게 하나도 없읍니다. 그저 지들에게 유리한 보수 정당을 무조건 찍어주고 밀어주는것밖에는….
미꾸라지 한마라가 지구촌을 흑탕물로 만드는데 그를 두둔하고 뒷 꽁무니에서 지독한 냄새도 아랑곳없이 알랑이는 그 모습 내일이 있다는걸 안다면 정신을차릴수도 있을텐데도 오늘만 살겠다는 것같아 안타까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