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위원장이 백마를 타고 눈이 휘덮인 백두산 꼭대기에 오른 사진 한 장을 공개했다. 통신에 의하면, 김정은이 말 위에서 “어떠한 역풍에도 북한을 부국강국으로 만들겠다는 결심을 재다짐 했다”는 것이다. “적대세력들에 의한 제재와 압력에서 오는 난관을 극복하고 우리 힘으로 잘 살수 있는 나라를 만들자”는 다짐도 했다.
북한은 김일성이 항일유격전을 할 때 백마를 탔으며, 백두산 기슭에 정한 군사진지를 중심으로 유격전을 벌였다고 말한다. 첫 번째 세습으로 통치자가 된 김정일도 백두산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북한 김씨 왕조의 ‘백두혈통’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이 동화 같은 전설을 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공개적으로 전설의 진실여부를 묻지 않는다. 전설의 상징은 북한의 지도자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지지와 결속을 다짐하는 데 목적이 있다. 북한엔 종교자유가 없다. 하지만, 옛날부터 전해오는 무속적 신비성의 잔재가 아직도 폐쇄된 북한사회에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또 다른 이상한 일이 생겼다. 10월 15일 평양에서 남북 선수들 간에 치러진 월드컵 예선전에 관중도 없고, 실시간 중계 방송도 없었다. 경기결과 득점도 없이 끝났다. 손흥민 한국팀 주장은 “경기가 거칠었고, 욕설도 들었지만, 한국 선수들이 부상당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평양은 참으로 이상한 방식으로 국제경기를 주최했다. 북한에 대한 인상을 개선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북한의 주최측이 국제적으로 북한보다 강하다고 평가받는 남한 팀에게 패배할 것을 두려워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난 수개월간 대화를 거부하고, 상대를 하지않는 남한과는 아무런 협력도 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북한이 한국을 기피하는 이유는 이렇다. 한국이 미국과 군사훈련을 계속하고 있고, 한편 국방력을 강화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한미가 훈련 규모를 줄이거나 형식을 변화시키는 것은 훈련의 목표가 북침인 만큼 달라질 게 없다고 주장한다.
준비태세를 위한 군사훈련과 군사장비의 현대화는 모든 나라들이 하는 일이다. 북한도 정기적으로 인민군 훈련을 한다. 북한은 각종 탄도 미사일을 계속 개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을 발사했다(실제로 잠수함에서 발사한 것인지는 확인돼지 않았지만). 북한이 대륙간 탄도 미사일 발사를 중단한지는 거의 2년이 된다.
10월 5일 스웨덴에서 북미간 실무회담이 결렬된 이후, 북한은 스스로 먼저 움직이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들은 지난 4월 김정은이 정한 금년말까지의 데드라인을 고수하고 있다. 그때까지 미국이 새로운 입장을 갖고 협상에 나오라는 것이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미국이 북한이 제안한 단계적 비핵화 과정을 받아들이되, 각 단계마다 양보에 따른 상응 혜택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북이 선호하는 동시행동의 원칙을 말한다.
만약 연말까지 미국이 기한을 지키지 못할 경우, 김정은이 어떻게 나올지도 분명치 않다. 그가 경고 했던 “새로운 길”이 무엇인지도 분명치 않다. 북한은 현재 북침을 억제할 수 있는 충분한 무기고를 갖고 있다. 지금도 북한이 가장 신경을 쓰는 분야는 경제다. 제재속에서도 북한의 경제가 어렵지만 그런대로 굴러가고 있다. 경제학자들이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제재는 북핵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여기서 몇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 본다. (1) 내년 미국 대선 이후까지 협상의 정체가 지속될 수 있다. 북한은 도발적 무기개발을 계속하지만, 핵실험이나 ICBM 발사는 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다. (2) 핵실험과 ICBM 발사를 재개한다. 2017년 ‘화염과 분노’의 시기로 환원하고, 핵전쟁의 위험을 감수하게 된다. (3) 미국이 신축성을 보여 비핵화 방법론의 돌파구를 찾는다. 북한의 제안도 신중히 고려하며, 실질적인 협상의 진전을 꾀한다.
위에서 (2)의 선택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피해야 한다. 김정은도 백두산위에서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멸의 길이기 때문이다.
선택의 (1) 과 (2) 정돈상태의 지속 또는 돌파구 발견은 워싱턴 정치사정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 현재와 같은 탄핵정국에서 여러모로 몰리고 있는 트럼프의 입장은 북한에 손을 쓸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는다.
북한은 만약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면, 미국의 정책이 또 한 번 바뀔 것을 알고 있다. 트럼프처럼 북한에 잘 해준 미국 대통령은 없었다. 김정은이 트럼프의 재선을 돕기 위해서 간소하지만 중간단계 성격의 핵 협상 합의를 할 지도 모른다.
반대로, 김정은이 오판을 할 수도 있다. 만약 김정은이 정치적으로 난처해진 트럼프가 북한이 ICBM을 다시 발사해도 강력한 대응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오판한다면, 그가 스스로 방지하기를 원하는 위험한 불구덩이를 자초하는 격이 될 수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북한이 스스로 선언한 핵실험 동결과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중단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역설적으로, 한반도 평화의 운명은 현 시점에서 트럼프보다 김정은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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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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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항상 이상한 나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