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여성 최초 대법관이었던 김영란 전 대법관이 최근에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 기사를 읽어 보게 되었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게 어려워진 사회는 발전이 없다.” “그런데 계층이동 사다리가 좁아진 것 같다.” “이런 사다리를 걷어 차거나 좁아지거나 막히면 안 된다.” 이와 같은 발언을 했다고 한다. 또한 “우리는 다른 나라에 비해 고학력 사회에 계층 이동이 비교적 쉬웠고, 그에 대한 갈망이 큰 사회였는데 그래서 좌절감도 많이 느끼는 것 같다”고도 했다고 한다.
이러한 발언들은 조국 법무부 장관 청문회 과정 중 장관 자녀들의 여러가지 특혜 의혹이 불거지면서 좀 더 공감을 얻는 것 같다. 의혹으로 제기된 내용들의 사실 여부와 불법성은 형사 재판 절차를 거치면서 밝혀질 것이라 믿는다. 장관 업무 수행에 직접 연관되지 않다고 해도 이미 국민적 관심사가 된 이상 모든 진실이 드러나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층 상승 사다리’의 개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이 개념은 일단 ‘계층’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상승’을 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상승’이라는 말에는 어떤 쪽이 더 좋거나 나쁘다는 가치 판단이 포함될 수 밖에 없다.
즉, 상승은 좋고 하강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인식될 것이다. 그러면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계층’은 무엇일까? 조선시대에는 사농공상의 신분 구별이 있었다고 하지만 요즈음에는 아니다. 그러면 무슨 ‘계층’이 존재할까? 직업에 따른 구분인가 아니면 소유하고 있는 부의 규모에 따라서일까. 사회적으로 존경이나 부러움을 받는 정도에 따라 사다리의 층계처럼 속해있는 층계 위치가 다른 것인가. 아니면 이러한 여러가지 요소들을 모두 합쳐서 성적을 산출해야 하나.
초중고 교사가 대학교수가 되었다면 계층이 상승된 것으로 보아야 하나. 대학교수가 국회의원이나 장관이 될 때도 마찬가지일까. 경영하던 사업체가 어느날 파산을 했다고 하면 과연 계층이 하강된 것일까. 그럴 경우 계층 사다리에서 여러 층계 내려 온 것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사람마다 답변이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만약에 이렇게 여러 다른 요소들을 고려해 계층을 정해 놓았다고 할 때, 한 계층에서 다른 계층으로 이동하는 것에 과연 어떤 가치를 부여해야 하나. 또한 자녀 교육에 있어 상승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나.
나는 20년동안 교육위원으로 있어 오면서 항상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 할 것을 주문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갈 수 있으면 가라고 했다. 그러나 신분이나 계층의 상승에 목표를 두라는 뜻은 아니었다. 대신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개발하고 사용하는 일을 충실히 하자는 주문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단지 우리 모두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다 보면 서로 다른 역할을 맡아 할 수밖에 없는 것 뿐이다. 모든 사람이 의사나 변호사를 한다고 하면 누가 요리를 하고 누가 지붕을 고치나. 버스 운전사, 경찰, 은행원, 그리고 식료품 가게의 캐쉬어도 필요하다. 모두 주어진 재능과 처해진 상황에 따라 맡은 역할을 얼마나 충실히 하느냐로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어느 한 직업이 다른 직업보다 우월한 지위를 점하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이에 자녀 교육에 있어 어른들이나 교육제도가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돈을 버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일부러 가난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부의 많고 적음이 신분이나 계층을 가늠하는 잣대로 쓰여질 때 우리의 정신은 피폐할 수 밖에 없다. 돈이 부족하면 물론 조금 불편할 순 있다. 그러나 그것도 보는 사람의 마음 자세에 따라 불편한 느낌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우리가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소득이나 부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설사 그러한 소득이나 부가 없더라도 그러한 처지가 신분이나 계층에서 딛고 올라야 할 사다리의 아래쪽 층계로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개천에서 용났다’ 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개천’이라는 곳이 미천하다는 뜻이라면 그 것은 ‘용’이 된 사람의 집안을 모욕하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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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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