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지금 이 순간 약 10여분간의 여유가 주어진다면 어떤 음악을 들을까? 혹자는 쇼팽의 ‘즉흥 환상곡’, 혹자는 베토벤의 ‘운명’, 혹자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등을 신청할지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 멘델스존의 피아노 곡 ‘론도 카프리치오소(rondo capriccioso)’ 같은 곡을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진지하면서도 맑고 서정적인 이 곡은 쇼팽적인 우수나 긴강감 등은 없지만 늘 넉넉한 여유로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것만 같아 좋다. 다소 부르조아적인 음악이라고나할까.
무언가에 도취해 보겠다는 마음의 준비없이 예술은 결코 이해될 수도, 향유될 수도 없다. 예나 지금이나 예술이 한량들이나 하는 취미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인생이 긴장되고 미래 따위나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가까이 다가 올 수 없기 때문이다. 생산이니 노동이니 남는 장사니 따지는 사람들은 음악처럼 비생산적인 시간 낭비(?)를 결코 취미로 삼을 수가 없다. 예술(가들)이 다소 이기적인 것은 그 가치를 세상의 가치와 함수관계로 놓지 않는다는데 있다.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헤어나지 못 하는 모습. 그것이 어쩌면 조금 어처구니 없지만 음악이나 모든 예술(가)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무수한 시간의 낭비… 어쩌면 아무 것도 거두어 드릴 수 없는, 그저 자기만의 꿈 속에서 삶이 먹혀 들어가고 친구가 떠나고 인생이 떠나고 주위가 변하고 또 자신 조차도 어제의 내가 아닌, 마치 세월 속에서 자전거 패달을 밟듯 끊임없이 굴러가고 두드리는, 행위가 바로 목적이요 목적이 행위가 되는 그 긴 시간의 반복… 그러한 투자와 낭비없이 예술이라는 사치는 결코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전음악에 대해 쓰다보면 가끔 어떻게 하면 고전음악을 잘 알고, 쉽게 가까이 갈 수 있느냐하는 질문을 많이 듣곤 한다. 이 때 늘 떠오르는 대답은 여유를 가지고 스스로 해답이 다가올 때 까지 기다리라는 것이다. 공부는 억지로라도해서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지만 음악은 영어단어 외워가듯 하나씩하나씩 채워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술밥에 배부를 수 없듯, 마음이 노크할 때에 자신이 노래할 수있는 음악, 쉽게 이해하고 따라할 수 있는 음악부터 즐기는 것이 순서다. 누구나 쉽게 들을 수 있는 초보자를 위한 클래식 베스트 10을 즉석에서 골라보면, 넘버 (1)이야말로 모차르트의 ‘터어키 행진곡’일 것이다. 음악과 가까이 할 수있는 왕도는 따로 없지만 굳이 급행료를 지불하고서라도 음악과 빨리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단언컨데 모차르트와 바하의 음악을 많이 들으라는 것이다. 특히 모차르트의 예술은 그 자유분방함에 있어서나 도취의 차원에 있어서나 가장 음악과 닮아있다. 바하가 서양음악의 뼈대를 놓았다면 모차르트야말로 서양음악의 건출물이요, 모차르트 없는 서양음악은 안꼬없는 찐빵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2)쇼팽의 즉흥환상곡 (3) 바하의 G선상의 아리아 (4)베토벤의 황제 피아노 협주곡 (5)드보르작 신세계 교향곡 (6)차이코프스키 호두까기 인형(꽃의 왈츠외 춤곡들) (7)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8)하이든의 교향곡 ‘시계’ 등 (9)베르디의 ‘개선행진곡’ (10) 드뷔쉬의 ‘달빛’ 등을 추천할 수 있겠지만 참고로 내가 빠져들었던 음악은 (1) 모차르트 터어키 행진곡 (2) 베토벤 영웅 교향곡 (3)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 (4) 바그너의 탄호이저 (5) 바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등의 순이었는데, 이에서 볼 수 있듯이 다른 곡들에서는 순서의 차이가 있을망정 모차르트의 ‘터어키 행진곡’ 만큼은 1순위인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어쩌면 ‘터어키 행진곡’이 담고 있는 그 초보적인, 단순함의 미학이야말로 클래식이 말하려는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바하의 여러 곡, 그 중에서도 ‘G선상의 아리아’ 등도 깊은 예술성에서 우러나는 간결한 선율미가 우리의 영혼을 감동으로 이끌어가지만 모차르트의 천재야말로 늘 우리를 끝없는 감탄의 세계로 이끈다 할 것이다.
아무튼 (비난의 여지가 있든 없든) 음악은 자기의 귀를 즐겁게하고자, 여유와 풍요로움을 얻고자 하는 다소 이기적인 행위이다. 어린아이처럼 다가가지 아니하면 어머니의 풍요로운 젖과 꿀은 다가오지 않는다. 그 첫 행위로서 발걸음도 가벼운 ‘터어키 행진곡’이 있다. 간결하고도 아름다우며 순수하고도 꿈을 주는 모차르트의 Turkish March는 그의 피아노 소나타 11번 3악장(론도)에 속하는 곡이었다. 1778-1783년 사이 작곡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빈을 점령한 터어키군을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군주국이 물리치고 난 뒤 100주년을 기념하여 작곡됐다는 설도 있다. 당시 유럽에는 음악이나 음식, 의복 등 오스만 제국풍이 유행했는데 ‘터어키 행진곡’도 이를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2014년 헝가리에서 모차르트의 자필 악보가 발견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닮은 곡으로서 극 음악 ‘아테네의 폐허’의 네번째 곡 베토벤의 ‘터어키 행진곡’을 들어보는 것도 좋다.
<이정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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