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시대인데 지구촌엔 지금도 왕을 둔 나라들이 엄청 많다. 영국,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스페인, 벨기에가 그렇고 일본, 태국,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쿠웨이트, 요르단 등이 그렇다. 이들 국가의 왕은 실권이 거의 없는 ‘바지 사장’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브루나이, 오만 등은 왕이 직접 통치하는 전제군주 국가(Dynasty)다.
북한도 국호(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와 달리 김일성 가문이 대를 이어 통치하는 김씨 왕조(Kim Dynasty)이다. 일본 왕은 천황으로 불려도 바지저고리지만 김정은은 대통령도 아닌 국방위원장 직함으로 로마황제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은 김씨 왕조 3대와 맞먹는 67년을 계속 재위해 온다.
세계최고 민주국가인 미국의 대통령들 중에도 왕조를 동경하거나 모색하는 경향이 있기는 매한가지다. ‘트럼프 왕조(Trump Dynasty)’라는 말이 요즘 미국 정가에 회자되고 있다. 취임이후 마치 ‘트럼프 왕’인 양 국정을 독단적, 임기응변적으로 밀어붙여온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다섯 자녀와 사위 중 한명을 추후 백악관 주인으로 세우려는 속셈을 감추지 않고 있다.
한달 전 트럼프 대통령의 2020년 재선 선대위 본부장인 브래드 파스케일이 남가주 인디언웰스에서 열린 공화당 대의원 대회에 참석해 트럼프가 내년에 재선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트럼프 가족이 앞으로 수십년간 이어질 왕조를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가족의 능력이 모두 출중하다며 특히 장남 도널드 Jr, 장녀 이방카, 사위 재러드 쿠슈너를 꼽았다.
트럼프는 자녀들 중 이방카를 총애한다. 지난해 그녀를 유엔주재 신임 미국대사로 임명하려다가 친족등용의 비난여론에 부딪혀 없던 일로 했다. 그는 이방카가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감이라며 “(그녀가) 대선에 출마하면 상대방이 누구이든 그녀를 꺾기가 매우, 매우 힘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외국순방 때마다 이방카를 대동해 ‘대선용 스펙’ 쌓기를 돕는 형색이다.
장남 도널드 주니어는 동생 에릭과 함께 가업(부동산 개발)을 책임지고 있다. 말로는 공직에 도전할 뜻이 전혀 없다면서 굵직굵직한 공화당 모금파티엔 만사 제쳐놓고 참석한다. 칼럼니스트 릭 윌슨은 “도널드 주니어가 2024년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고 썼다. 애틀랜틱 잡지도 “트럼프 자녀들의 공직출마 여부보다 누가 먼저 출마하느냐가 관심사”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가족은 ‘케네디 왕조’를 모델로 삼는 모양새다. 트럼프는 부인 멜라니아를 ‘우리 집의 재키 O(케네디 부인 재클린 오나시스)’라고 불렀다. 이방카의 남편 쿠슈너는 맨해튼의 자기 사무실에 케네디 대통령 사진을 걸어 놨다. 그의 아버지도 ‘유대인판 조 케네디(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를 표방했다는 일화가 있다.
하지만 케네디 가문도 왕조를 이룬 건 아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후 5년 만에 동생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이 백악관 문턱까지 갔다가 역시 암살당했다. 그 후 반세기가 넘도록 대통령이 된 후손은 나오지 않았다. 부시 가문에서 부자 대통령이 나왔지만 아들 부시는 민주당의 알 고어 부통령에 총 득표수에서 뒤지고 선거인단 수에서 겨우 이겼다.
어차피 그해(2000년) 선거는 두 정치가문 간의 대결이었다. 고어의 부친은 연방 상하원 32년 연임기록의 원로 정치인이다. 누가 당선돼도 다이내스티 탄생이었다. 지난 대선 때 역시 힐러리 클린턴에 직접 득표에서 뒤지고 선거인단 수에서 역전승한 트럼프는 “힐러리가 당선되면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함께 ‘클린턴 다이내스티’를 일굴 것”이라며 목청을 높였다.
트럼프 다이내스티가 가능할 것으로 점치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당장 내년 재선이 위태롭다. 최신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의 대통령 자질을 부정 평가한 응답자가 10명 중 6명꼴 이상이었다. 북핵문제 해결이 트럼프의 재선에 필수불가결이지만 그가 북미협상에서 손자뻘 김정은에 끌려다니는 이유는 김의 왕조 관리능력에 현혹됐기 때문일지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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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전 시애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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