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기념관 야경.
계속해서 가슴이 무겁고 답답하다. 지금 발 딛고 사는 이곳이나 태평양 너머에 두고 온 그곳이나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는 것 같은 분열과 대립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을 자주 생각한다. 그가 남긴 ‘하나 됨’의 정신이 몹시도 아쉽기 때문이다. 분열되어 대립하던 미국을 하나로 묶어낸 사람, 링컨.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의 내셔널 몰(National Mall)에 링컨기념관(Lincoln Memorial)이 있다.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과 가까이 있어서 우리에게는 퍽 친숙한 곳이다. 이 기념관 곳곳에서 링컨이 추구했던 ‘하나 됨’의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것들을 찾아보면서 멀리 있는 고국과 지금 여기의 미국이 모두 하나 됨을 기원해본다.
미국, 50개 주가 하나로 된 나라
앞마당에서 기념관을 올려다본다. 그리스 문명의 신전을 떠올리게 하는 외모의 기념관. 모두 36개의 기둥이 기념관 상층부(frieze)를 받치고 있다. 기둥 36개는 링컨 대통령(1861년-1865년 재임) 당시 미국의 36개 주를 뜻한다. 그 36개 주 이름을 기둥 사이 사이 위쪽에 새겨 두었다. 그리고 그 한 칸 위(exterior attic walls)에는 48개 주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 기념관이 건립될 당시(1922년)의 주가 48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기념관이 건립된 후인 1959년에 연방에 편입된 알래스카와 하와이, 이 두 개 주는 앞마당에 있는 돌판에 새겨져 있다.
그리하여 이 기념관은, 본 건물 상부에 새겨진 48개 주와 앞마당에 돌판에 새겨진 2개 주가 모두 모여, 50개 주가 ‘하나’임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다수로부터 하나로
알래스카와 하와이가 추가된 것을 기록한 돌판에 새겨진 문장의 마지막은 라틴어 문장이다. E PLURIBUS UNUM. 이것은 미국의 표어(motto)이다. 뜻은 ‘다수로부터 하나로(out of many, one)’. 미국이 추구하는 것은 분열과 대립이 아니라 ‘하나 됨’인 것이다.
이 표어는 미국의 국가 문장에도 있는데 흰머리 독수리가 물고 있는 리본에 적혀 있다. 미국의 국가문장은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된다. 1달러 지폐에 들어있으니 확인하기도 쉽다. 그리고 이 표어는 국가 문장에만 적혀 있는 게 아니다. 1센트, 5센트, 10센트, 25센트 동전에도 이 글귀가 새겨져 있다. 미국의 하나 됨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 일상생활과 이렇게나 가까이에 있는 것이다.
하나 더. 미국 의회 의사당(Capitol) 꼭대기에는 자유의 여신상(The Statue of Freedom)이 서있는데, 그 조각상 받침대에도 이 글귀가 적혀 있다. 의사당에서 의정 활동하는 의원들이 자신의 머리 위에 무슨 글이 적혀 있는지 항상 기억하고 있기를 바란다.
원한 말고 자비
기념관 내부로 들어서면 링컨 대통령이 의자에 앉아있는 커다란 조각상을 만난다. 높이와 너비 모두 19피트(약 5.8미터). <혹성탈출> 등 여러 영화에 등장한 그 조각상이다.
그의 오른편에 게티즈버그 연설문이 자리하고 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라는 문구가 유명한 그 연설. 이 기념관을 찾는 사람의 대다수는 링컨좌상 앞에서 증명사진만 찍고 가는데, 그래도 더러 이 연설문의 그 문구를 확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 맞은편에 있는, 미국사람이 아니면 잘 쳐다보지 않는, 조금 긴 문장에 굉장히 큰 울림이 있다.
링컨 대통령의 재선 취임 연설문(1865년)인데, 그의 수많은 연설 중에 이 연설문이 여기에 새겨져 있는 것은 그 연설에 굉장한 의미가 담겨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 링컨은 이 연설문에서 하나 됨을 간곡히 호소하고 있다. 남북전쟁 막바지이던 그 때에 링컨은 연방정부를 향해 총칼을 들이대고 있는 남부연합에 대해 증오심을 드러내지 않는다. 마지막 단락에서 그는 이렇게 얘기한다.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원한을 품지 않고, 모두에 대해 자비를 품고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깨우쳐 주시는 대로의 정의를 굳게 믿고서, 우리가 하고 있는 과업을 끝맺고 이 나라의 상처에 붕대를 감고 싸움터에서 쓰러진 사람과 그 미망인과 고아를 보살피며, 우리 자신들 사이에서 그리고 모든 나라들과의 관계에서 바르고 지속적인 평화를 이룩하고 소중히 간직할 수 있도록 모든 일을 다하고자 계속 분발합시다.” (주한 미국대사관 홈페이지에 있는 번역)
민간인과 군인을 합해 사상자가 103만 명에 달하는 그 처참한 전쟁의 끝자락에서 링컨은 상대방에게 이 전쟁의 책임을 철저히 묻겠다는 그런 얘기를 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원한을 품지 않고, 모두에 대해 자비를 품고서’(With malice toward none, with charity for all), 그의 이 정신은 지금 이 시점에서 생생하게 구현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나 됨’을 간절히 기원하는 그의 뜻을 담은 재선 취임 연설문을 기념관 벽에 새겨 놓은 그 의미가 이 땅에 하루라도 빨리 실현되기를 기원한다.
벽화에서 보는 해방과 하나 됨
각각의 연설문 위에 벽화(60피트x12피트)가 그려져 있다. 하나는 진리의 천사가 노예 쇠사슬을 끊어버리고 두 손을 높이든 ‘해방’이라는 제목의 벽화이다. 링컨대통령의 노예해방을 기리는 것. 다른 하나는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의 손 위에 진리의 천사가 손을 얹어 결속을 공고히 하는 ‘재결합’이라는 제목의 벽화이다. 링컨대통령의 하나 됨의 염원을 뜻하는 것.
벽화에 그려진 노예의 해방과 미국의 하나됨, 링컨을 설명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❷ 하나 됨의 상징인 속간이 새겨진 링컨 좌상. ❸ 하나 됨을 간절히 기원하는 링컨의 편지 문구(전시실). ❹ 마틴 루터 킹 목사 연설 장면 사진(전시실). ❺ 세계가 사랑하는 링컨(전시실).
하나로 단단히 묶인 속간
이번에는 링컨 좌상 양쪽 팔걸이 앞쪽에 새겨진 것을 주목하자. 양손의 바로 밑에 있는 것인데, 막대기를 띠로 단단히 묶어 놓은 모양이 새겨져 있다. 이것은 링컨기념관으로 오르는 계단 양쪽 돌출부 전면에도 새겨져 있다. 미국식 속간(American Faces)이라는 것이다.
속간(束桿)이란 라틴어 파스케스(fasces)에서 나온 것으로서 ‘나무 막대기 여러 개를 묶어 놓은 것’을 말한다. 나무 막대기(각각의 주)가 따로 있으면 쉽게 부러지지만 여러 개가 한 곳에 묶여 있으면(모든 주가 하나 되면) 잘 부러지지 않기 때문에 ‘하나 됨의 힘’을 뜻한다. 기념관에 속간을 두 군데나 새겨 놓은 것은 하나 됨을 향한 링컨의 간절한 열망을 강조하기 위한 뜻이리라.
로마시대부터 전해오는 전통적인 속간에는 도끼가 같이 있는데, 이 기념관에서는 도끼를 빼고 나무 묶음만 새겼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우위를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나 됨은 포토맥 강의 자갈을 통해서도
계단을 내려가기 전에 기념관 앞마당을 내려다보면 마당 좌우에 자갈로 포장해 놓은 공간을 볼 수 있다. 이 자갈들은 워싱턴 DC 옆을 흐르는 포토맥 강에서 가져온 것이다.
포토맥 강은 남북전쟁 중에 남군과 북군이 밀고 밀리던 전장의 경계라 할 수 있기에 남과 북 하나 됨의 의미를 담아 포토맥 강의 자갈을 가져와서 앞마당에 깔았다고 한다.
평등을 통한 하나 됨의 꿈
이제 계단 18개를 내려와서 바닥을 보면 이 기념관 앞에서 마틴 루터 킹 2세가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이라는 연설(1963년)을 했다는 역사가 새겨져 있다.
이 사람이 주장했던 것 역시 흑과 백의 평등을 통한 ‘하나 됨’이 아니었던가. 그가 여기서 연설한 그날의 역사는 아래층 전시실에서 사진으로 볼 수 있다.
전시실에서 만나는 링컨의 생각
계단을 다 내려왔으면 아래층에 있는 작은 전시실을 둘러볼 차례. 이 전시실은 앞마당에서 기념관을 바라볼 때 왼쪽에 있는 작은 문을 통해 들어간다. 거기에는 링컨이 한 말과 남긴 글, 기념관 건립, 기념관에서 있었던 주요 행사에 관한 기록을 볼 수 있다.
전시실 안에 돌에 새겨진 링컨의 생각 중에 이런 것이 있다. “한 집안이 둘로 나뉘어 대립한다면 그 집안은 제대로 될 수 없습니다.” “노예해방을 하지 않고 이 나라를 (분열에서) 구할 수 있다면, 그리하겠습니다. 노예를 해방함으로써 이 나라를 (분열에서) 구할 수 있다면, 그리하겠습니다. 노예 중 일부를 해방하고 나머지는 그냥 둠으로써 이 나라를 (분열에서) 구할 수 있다면, 이 또한 그리하겠습니다.” 이 정도로 하나 됨을 갈망했던 사람, 링컨.
나머지 이야기
링컨 좌상 뒤편에는 “에이브러햄 링컨에 대한 기억은, 그에 의해 구원된 미국민들의 마음에 간직된 것과 마찬가지로, 이 성전에 영원히 간직될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링컨 좌상의 뒤편에 둘러진 천은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이다. 링컨의 양손은 각각 다른 모양인데, 쥔 왼손은 강인함과 결단력의 상징이고 편 오른손은 평화를 상징한다. 이 두 손의 모습이 수화로 링컨의 두문자인 A(braham)와 L(incoln)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닌 것 같다.
기념관 외부의 기둥과 내부의 기둥은 각각 다른 양식이다. 외부는 단순미가 돋보이는 도리아식 양식의 기둥이고 내부는 상단에 살짝 장식이 들어간 이오니아 양식의 기둥이다.
링컨 좌상을 뒤로하고 기념관을 나서면 영화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인공 연못(Reflection Pool)을 볼 수 있다. 618m x 51m 규모에 2천5백50만 리터의 물이 담겨있다고 한다. 이 인공연못에 내셔널 몰의 중심인 워싱턴기념탑(Washington Monument)이 비친다. 워싱턴기념탑 너머로 의회의사당이 보이기에 결국 링컨이 의회의사당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 된다. 그의 하나 됨에 대한 열망이 의회에 잘 전달되기를 바란다.
기념관 상부에 새겨진 각각의 주 이름 밑에는 그 주가 연방에 편입된 년도를 로마숫자로 표기했다. 메릴랜드와 버지니아는 MDCCLXXXVIII라고 적혀 있는데 M은 1,000, D는 500, C는 100, L은 50, X는 10, V는 5, I는 1이니까 MDCCLXXXVII는 1787이 되어 메릴랜드와 버지니아가 연방에 편입된 연도가 나온다.
링컨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링컨 대통령이 암살된 포드극장(Ford’s Theatre, www.fords.org)에 있는 전시관 방문을 추천한다. 이 극장은 지금도 공연을 하고 있는 곳인데, 그가 피격된 그 자리는 사용하지 않고 보존되어 있다.
링컨기념관에서 링컨좌상이 있는 공간은 12월 25일을 제외하고는 연중무휴 24시간 개방된다. 입장료는 없다. 그 옆에 기념품판매장이 있는데 여기서는 링컨대통령에 관한 것 외에도 가까이에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과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공원 관련 기념품을 판매한다. 개점시간이 정해져 있다. 아래층에는 전시관과 화장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여기도 개방시간 제한이 있다.
DC 안이 대개 그렇듯이 이 기념관도 주차사정이 좋지 않다. 대중교통편을 이용하는 것이 좋고, DC 정부가 운영하는 무료 시티버스인 서큐레이터(Circulator, www.dccirculator.com)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링컨기념관 인터넷 주소는 www. https://www.nps.gov/l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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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김성식(스프링필드,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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