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주의 라팔마 시의원을 지냈던 스티브 황보 씨를 만났다. 시의원에서 물러난 지 2년이 지난 그가 떠오른 것은 현직 시의원이던 시절 그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나서였다.
무슨 일 때문이었던지 퇴근길에 잠시 동네 맥도널드에서 만났던 그는 “정치인이 되니까 제일 힘든 게 남에게 손 벌리는 일”이라는 말을 했다. 친한 친구가 큰 사업을 하고 있지만 “캠페인 기금 좀… “ 이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더라는 것이다. 라팔마가 작은 시이긴 해도 그는 두 번의 시의원 선거를 모두 1만 달러 이하의 자금으로 치렀다.
시의원 출마를 결심했던 이유도 거창하지 않았다. 아들만 셋이라는 그는 1세들이 리더십 포지션에 있으면 그의 아들과 같은 2세들에게 격려가 되고,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도 뭔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학생 때 이민온 그는 ‘이민교회 목사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청소년기 때부터 교회 안이나 밖에서나 남의 일부터 먼저 챙기는데 익숙해 있기도 했다.
그때 그에게서 들은 이런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기초 지방자치단체의 선출직 의원에게서 거창한 정치적 비전보다는 이런 생각을 들으니 더 진솔하게 느껴졌다.
4년 임기의 시의원에 재선됐던 그는 마지막 임기를 1년 앞두고 사임했다. 한참 뒤늦은 질문이 되겠으나 그가 임기 중에 그만둔 이유는 뭘까? 그는 “시의원 일이 재미가 없었다”고 한다. 한계를 느꼈다는 것이다. 시정은 복잡할 게 없다고 한다. 그가 무력감을 느낀 것은 공무원 은퇴연금 문제였다.
캘리포니아는 재정에 비해 과도한 은퇴연금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와 카운티도 공무원 연금제도는 주정부와 똑 같아 문제가 많으나 아무도 ‘뜨거운 감자’인 이 일에 나서지 않는다고 한다. 복잡해서 자세한 내용을 모르는 시의원도 많고-.
한정된 예산에 철밥통 공무원의 밥그릇부터 챙겨주다 보면 그 부담과 희생은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이 된다. 치솟는 은퇴연금 재원을 대느라 카운티와 시의 직원 수는 오히려 줄고, 공공 서비스도 줄어들게 된다. 한인 유권자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내용일 수 있지만, 마침 지난달이와 관련된 연구결과가 발표돼 그의 주장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공공정책 전문가인 UC버클리 새라 안지아 교수는 캘리포니아의 카운티와 시 공무원 은퇴연금 예산이 지난 10년 동안 미 전국 평균보다 6배가 넘는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고 밝혔다. 공무원 한 사람의 은퇴연금 적립에 쓰이는 예산이 지난 10년 새 미 전국에서는 평균 1,216달러가 늘어난 반면 캘리포니아에서는 7,022달러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공무원들에게 관대하다. 파워그룹인 공무원노조를 거스르면 정치생명이 위태롭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깡통을 앞으로 차내기만 할뿐 치우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최대 관심은 다음번 당선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그는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더 이상 시의원직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됐다.
임기 중에 오렌지카운티 시 협의회 회장도 했던 그는 오렌지카운티에 34개 시가 있지만 시의원은 모두 풀타임 직이 아니며, 파트타임으로 커뮤니티 서비스를 하는 자원봉사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또한 이민 1세의 시의원 출마는 어차피 무리한 도전이기 때문에 지금은 과도기이지만, 갈수록 자연스러운 과정을 통해 2세들이 지역사회의 공직에 진출하는 때가 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한때 한인사회에서는 출마 깃발만 들면 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거의 무턱대고 지원하던 때가 있었다. 함량미달로 보이는 후보에 대해서도 ‘정치력 신장’이라는 대의명분 앞에 대놓고 이견을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지금도 후보가 아주 돈키호테가 아닌 다음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분위기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과거만큼 무작정 지원이 아닌 것은 다행스럽다. 커뮤니티의 정치적 성장은 이런 쪽에서도 이뤄져야 할 것이다.
참, 내년이면 예순이 되는 스티브 황보 씨가 시의원을 그만 둔 개인적인 이유는 “이제 나를 위한 삶, 가족들과 함께 하는 생활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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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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