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영 전 워싱턴 한인회장 님이 9월11일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90세 가까이 사시다 가셨으니까, 옛날 같으면, 호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회장님은 가족에 대한 사랑은 말할 것도 없고, 한인사회에 대한 깊은 관심과 생의 의지 또한 강하셨기 때문에 그분의 서거가 유가족과 친지들, 그리고 그분을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슬픔을 더해 줍니다.
이도영 회장님은 평생 성실과 노력을 좌우명으로 삼고 절제된 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분의 일생은 우리로 하여금 생의 가치를 새삼 느끼게 해 줍니다.
누구를 만날 때는 정장을 하시고 항상 겸손하고 인자한 모습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분의 밝은 모습이 떠오릅니다.
고인께서 1960년에 워싱턴에 오신 후에는 조지타운 대학에서 수학도 하셨고, 가발사업을 개척하여, 크게 성공하신 분입니다. 이 회장님은 이렇게 해서 모은 재산과 당신이 택한 의지를 바탕으로, 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73년에 시작하여 모두 세 차례나 최장의 워싱턴한인회장으로 봉사하셨습니다. 워싱턴 한인회관도 이도영 회장님이 처음으로 마련하셨습니다. 전국적으로 미주한인회 총연합회를 결성하고 초대회장을 역임하셨습니다. 그러는 동안 돈도 많이 쓰셨습니다.
제가 아는 이도영 회장님은 모국의 정치를 넘보지도 않았고, 모국정부의 눈치도 보지 않고, 친정부다 반정부다 하는 교포사회의 이념적 대결구도속에서도, 오로지 한인사회 전체의 이익을 증진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하면서 묵묵히 한인사회 봉사활동에만 노력을 집중하셨습니다.
73년 한인회장 첫번째 1년 임기 때, 제가 그분을 도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그분이 내건 구호가 ‘단결과 봉사’였습니다. 그때부터 이도영 회장님은 교포사회 안에서 한인회의 위상을 높이고 연방정부와 지방정부를 상대로 한인회의 존재감을 알리고 한인들의 권익옹호와 증진을 위해서 노력하신 바 있습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한인회가 봉사활동을 통해서 교포들의 이민정착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오면, 이 회장님은 메릴랜드건 어디건, 밤이건 낮이건 꼭 찾아가서 그 분의 고충을 듣고 도울 수 있는 방도를 협의 하곤 했습니다.
이런 고인의 정성어린 노력과 봉사는 두번째와 세번째로 한인회장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도영 회장님은 3차례의 임기중 모국을 기웃거리기는 커녕, 아예 한국을 한번도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정부는 마침내 이도영 회장님의 공로를 인정하여 88년에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했습니다.
제가 아는 일화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고인께서는 한국전쟁 때부터 정일권 전 국회의장과 깊은 인연을 갖고 계십니다. 이도영 회장은 정일권 장군이 한국군 합참의장을 지낸후 터키대사를 거쳐, 주미대사로 왔을 때 그의 개인 비서로 일한적이 있습니다. 정대사가 외무장관으로 발령을 받고 한국에 같이 가서 자기를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아직 독자적인 생활정착을 하지 못했던 청년 이도영은 정대사의 요청을 이렇게 거절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제가 각하 (전쟁중에는 별 하나짜리도 각하라고 불렀습니다.) 의 배려로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제 운명은 제 자신이 개척하려고 합니다.”
그후 정일권씨가 국무총리를 거쳐 국회의장이 되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이 회장님이 경영하던 서너 군데의 상점중에서, 랑팡프라자 안에 있는 가발상점을 직접 가보고, 한인회장으로 활동하시는 것을 보면서 무척 흡족해 하는 모습을 제가 옆에서 본적이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정 의장의 호텔방에서, 이도영 회장이 정의장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너무 오래하고 있는데 각하도 한번 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정의장 답변은 이랬습니다. “큰일 날 소리 어디가서 하지 마라. 그 분이 욕심이 많아서 내놓지 않는다.”
한번은 정 의장이 상처한 후에 이혼한 여성이나 노처녀 중에서 재혼상대를 구해보라는 부탁을 이 회장께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 정 의장은 이 회장을 신뢰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도영 한인회장님이 정 의장과의 개인적인 인연을 한 번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이용한 적이 없습니다.
이도영 회장께 말씀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회장님과의 고별을 안타깝게 슬퍼하고 있습니다. 한편 우리는 회장님이 한평생 강한 신앙심을 갖고 계셨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 곁으로 가셨다는 믿음으로 위안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는 매주 몇 번 씩 의료시설에 가실 필요도 없고 병원에 입원 하실 일도 없습니다.
하늘에서 이 세상에서 있었던, 번거롭고 어려웠던 순간들을 모두 잊으시고 편안히 쉬소서. 그리고 환한 얼굴로 유가족과 남아있는 사람들을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이들이 삼가 회장님의 명복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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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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