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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eeling of shame and dislike is
the beginning of righteousness.
부끄러워하고 싫어하는 느낌은
의(義)의 발단(發端)이다.
[수오지심 의지단야(羞惡之心 義之端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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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羞恥)스러운 나머지 혐오(嫌惡)하는 수준에
이른 마음. 다들 흔히 하는 말, “Shame on you!”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그렇게 호통치는 사람들
가운데, 실제론 “Shame on me!”라고 해야 할
사람들이 더 많더라?
하늘 무서운 줄 모르듯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인간들 모습에 떠오르는 얘기 하나. ‘꼬마 성자
루루’가 여기저기 다니며 겪는 17가지 이야기 중
하나: “새장 속 위대한 사랑” 스토리. What a
great metaphor!
“루루, 네가 죽인 새는 어디에 있느냐?”
스승의 질문에 그는 머무적거리며 새장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새는… 이 새장 속에 있습니다.” 루루의 대답에
제자들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 소리가
잦아들고 다시 조용해지자, 스승이 루루에게
질문을 던졌다.
“좋다. 그러면 어떻게 새가 새장 속에 들어가
있는지 해명을 하도록 하라.” 루루는 당황한
나머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더듬더듬
답변했다. “스승님… 스승님이 저희에게 주신
말씀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새를…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 누구의 시선도 미치지 않는 너
혼자만의 장소에서 새를 죽이라고 했다.
그런데 너는 그런 장소를 찾아내지 못했나
보구나.” “못 찾아냈습니다, 스승님. 제가 가는
곳마다, 어디를 가든지 그 곳에는 신(神)이
계셨습니다. 신께서 보고 계시므로 이 새를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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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eeling of shame and dislike is the
beginning of righteousness.
수오지심 의지단야(羞惡之心 義之端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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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너/나 할 것 없이 ”눈 가리고 아웅“
하듯 모두들 시침 뚝 떼며 사는 인생. 알고 짓는
잘못도 그러려니와, 사실 알지 못하고 저지르는
잘못들까지 모두 거들면 실로 낯 뜨거운 삶을
사는 게 우리네 인생살이?
”아웅!“ 하는 소리는, 잠시 얼굴 가렸던 손을
떼면서 어린 아이를 어르는 표현. ”까꿍!“ 하는
소리에 사라졌던 얼굴이 다시 나타남에 안도하며
웃는 아기. 손으로 가리면 없어진 듯 보이지만,
손만 떼면 바로 다시 등장하는 얼굴. 그렇게
‘까꿍 놀이’는 즐거운 장난이지만, 실제로
‘화인(火印) 맞은 양심’의 소유자가 ‘검은 손’으로
하늘을 가리며 ‘까꿍 놀이’ 하는 뻔뻔함은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운 게 사실.
엄목포작(掩目捕雀)이라! 눈 가리고 참새를
잡으려 들다니. 엄이투령(掩耳偸鈴)인가? 귀를
막고 방울을 훔쳐? 엄비투향(掩鼻偸香)? 코를
막고 향을 훔치려 들다니! 눈 가리고 귀 막고
코 막으면, 남들 눈도 가려지고 남들 귀도 멀고
남들 코도 막아지나? 어림없는 수작(酬酌)!
꼬마 성자 루루 얘기도 모르시는가. 어딜 가든
늘 보고 듣고 냄새맡고 아시는 분이 계시다는
걸 왜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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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eeling of shame and dislike is the
beginning of righteousness.
수치(羞恥)스러워하는 마음은 의(義)의
발단(發端)이다.
[수오지심 의지단야(羞惡之心 義之端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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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기 맹자(孟子, Mencius)께선, ”인의예지“
사단(四端, 네 싹, Four Sprouts)이 구비되어 있는
인간의 ‘선성’(善性)을 갈파했던가. ‘남의 어려운
처지를 그냥 보아넘길 수 없는 마음’이 인(仁)이요;
‘불의를 부끄럽게 알고 혐오하는 마음’이 의(義)요;
‘양보하는 사양의 마음’이 예(禮)이며;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시비(是非)의 마음’이 곧 지(智)니라.
측은지심 인지단야(惻隱之心 仁之端也); 수오지심
의지단야(羞惡之心 義之端也); 사양지심 예지단야
(辭讓之心 禮之端也); 시비지심 지지단야(是非之心
智之端也). 그렇게 입으로 외우고 마음으로 새기던
옛 선비들. 21세기 오늘날에도 여전히 진리의 말씀인
맹자의 사단(四端)!
하나같이 모두 소중한 말씀인데, 요즘 돌아가는
세태를 보며 특히 ”수오지심 의지단야(羞惡之心
義之端也)“라는 여덟 글자를 더더욱 새기게 됩니다.
”Mea Culpa, 메아 쿨파, Mea Culpa!“ 그렇게
외우면서 말입니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이로소이다.“
<
최정화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 영어서원 백운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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