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 소리와 함께 하얀 골프공이 푸른 하늘로 튀어 오르고 여기저기에서 “굿샷” 이란 감탄사도 함께 들려왔다. 깃털 같은 구름을 뒤로하고 조그마한 공의 포물선을 따라 많은 구경꾼들의 고개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TV를 보고 있던 나의 눈도 함께 날아간다. 잘 익은 열매 떨어지듯 푸르디 푸른 푹신한 페어웨이 위에 공은 사뿐히 내려앉았다. 2016년 리우올림픽 여자골프 나흘째 마지막 라운드의 18번째 홀. 박인비의 티샷이다.
쉬운 올림픽 메달이 있을까만 수영이나 단거리 육상처럼 100분의 1초로 다투는 짧은 경기가 있는 반면 골프는 한 타 한 타에 신경전을 펼치며 하루에 18홀을 나흘간 쳐야한다. 그녀는 승리 후에 “현재 몸에 에너지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표현대로 혼신을 다 해 긴 시간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으로 얻은 승리라 더욱 값지다.
푸른 초원(Grass)에서 맑은 공기(Oxygen)를 마시고 밝은 햇빛(Light)을 받으며 가벼운 발걸음(Foot)으로 하는 운동. 첫 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인 Golf는 마치 신선놀음 같다. 그러나 막상 골프를 쳐 보면 이 운동같이 자신을 좌절시키는 운동도 없다. 흔들림 없는 정신력과 몸의 감각이 18홀이 끝날 때까지 살아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어디 쉬운가. 골프도 힘을 빼야 하는데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으면 작은 공이 마치 바위같이 느껴진다.
골프는 다른 운동과 달리 따로 심판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스코어를 규칙에 따라 양심적으로 계산한다. 그래서 젠틀맨의 스포츠라고도 한다. 그러나 가끔 자신의 양심을 팔아먹고 싶은 충동도 고개를 쳐든다. 개인의 승부욕이 강한 사람과 골프를 같이 쳐 보면 그 사람 됨됨이가 훤히 드러난다. 함께 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볼을 슬쩍 치기 좋은 곳에 옮겨 놓는 속임수의 철면피도 있고, 나무숲 깊숙이 들어간 볼을 찾는 척하다 주머니에서 새 볼을 슬쩍 떨어뜨리고선 찾았다고 외치는 사기꾼도 있다. 또 일부러 상대방의 심경을 어지럽히고 집중을 못하도록 약을 올리는 저질의 방해꾼도 있고, 또 상 타는 경기에 나갈 때는 자신의 핸디캡을 높게 속이는 거짓말쟁이도 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양손을 번쩍 들어 올린 최선을 다한 박인비의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그러나 아직도 잊지 못하는 신나는 골프경기가 있었다. 2009년 8월 16일 미국프로골프(PGA)투어 91회 PGA 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였다. 그 당시 펄펄 날던 세계 1위 우즈와 이름도 없던 양용은의 대결이었다. 마침 경기가 일요일 오후라 16명이 ‘우리’가 되어 한 집에 모였다. 양용은은 제주시 오라골프장 연습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프로 선수들의 골프 동작을 눈으로 배웠다고 했다. 비닐하우스용 파이프를 골프채 삼아 몰래 연습을 하곤 했다니 그를 향한 우리의 동정심이 배가 되어 경기를 기다렸다.
그 당시 우즈는 록스타에 가까운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TV를 통해 들려오는 대부분의 관중의 “와우!”는 타이거 우즈를 향한 감탄사였다. 그러나 우리는 우즈가 여러 번 실수를 하자 모두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우즈의 실수는 곧 우리 편의 복이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3홀은 가슴이 조마조마 하고 손에서 땀이 나도록 우리는 긴장했다. 양용은도 긴장했고 우즈는 더욱 긴장했다.
마지막 18번홀. 양용은의 티샷이 좋았다. 세컨드 샷은 매끄럽게 홀컵 바로 근처에 볼이 떨어졌다. 놀라운 샷이었다. 관중석에 있던 팬들은 환호 하면서도 충격을 받은 듯했다. 우즈의 세컨드 샷은 그린에 올라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즈의 실수가 너무 좋아서 일제히 부둥켜안고 환호성을 질렀다. 양용은 8언더파, 우즈는 5언더파. 양용은의 승리였다. PGA 챔피언십은 전통적으로 미국과 유럽 선수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 양용은은 그 날로 유일한 아시안 우승자가 되었다. 이 경기는 예상을 뒤엎은 정말 감동적인 사건이었다.
우리 이민생활의 스트레스가 다 날아갈 정도로 정신없이 소리를 질러본 서너 시간이었다. 우리 모두는 그 대회에 양용은 자신이었다. 가끔 있는 이런 묘한 감동을 맛보며 ‘우리’가 무엇인지, ‘동포’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요즈음 한 달 동안 진통을 겪고 있는 법무부장관 임명을 놓고 ‘우리’가 ‘우리’에게 돌을 던지며 싸우는 모국의 뉴스는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정녕 피는 물보다 진한 걸까?
<문영애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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