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lywood에 복귀한 Reagan은 감독의 지시를 고분고분히 잘 받아드리고 동료 배우들과 직원들에게 친절하며 결근하는 날이 없이 제시간에 출근하며 모든 schedule이 지장이 없이 진행 되도록 하는 모범배우였었다고 한다. Humphrey Bogart 같은 일류 배우들과 공연도 하고 부인이 될 여배우 Jane Wyman도 만나서 결혼도 하였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도 그에게 A 급 영화의 안정된 배역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었다.
그는 B 급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하면서 차츰 두각을 나타내어 B급 영화의 Top Class 배우가 되었다. 얼마후에는 TV에 출연하기 시작하여 출연이 점점 활발해 오던중 “Bonzo” 라는 이름의 침판지를 데리고 제작된 연속 TV show가 인기를 얻어서 장기간 동안 방송 되었었다.
그러나 폐렴으로 중병을 앓았고 Wyman과 어려운 이혼을 하며 Hollywood의 풍토에 지치기도한 Reagan은 General Electric 회사가 제작하고 CBS가 방송한 General Electric Theatre에 전속 Host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사례비를 받으며 9여년간 출연하면서 General Electric 공장들을 다니며 자신이 직접 쓴 Motivational Speech를 직원들에게 했었다고 한다. 비록 G.E. 회사의 P.R. man 역할이기는 하였지만 그는 전국적으로 알려진 배우가 되었었다.
그는 원래 FDR을 네번 다 대통령으로 투표해 주었을 만큼 열성적인 민주당원 이었었고 공화당과 보수계열들이 “반기업적이며 친 사회주의적” 이라고 반대해온 FDR의 국가 주도하의 New Deal 정책도 지지했던 사람이 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가 본 현역정치인 Reagan은 일관적으로 철저한 반공주의자 이었고 보수주의자 이었으며 자신의 신념을 고집스럽게 관철 시키려고 했던 인물이었는데 젊었을때의 성향은 다소 진보적 이었던듯 하다.
제2차 세계전쟁이 끝난후 미국은 쏘련의 “세계공산화 음모”에 예민한 신경을 써서 한동안 McCarthyism이 난동을 부리고 있었는데 Reagan은 하원의 Committee on
un-American Activities (위원장은 Nixon) 에 출석하여 영화계의 반공분자 색출을 역설 했었고 부인 Jane Wyman과 함께 친공 의심자들을 FBI에 밀고하기도 하였었다고 한다. Wyman과는 딸 Maureen과 딸 Christine 을 두었었는데 둘째딸이 출생후 곧 사망하자 Michael을 아들로 입양 하였었다.
그는 영화배우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차츰 열성을 내기 시작하였는데 공화당원이며 보수적이었던 Wyman 과 이념적으로 거리가 나기 시작하다가 결국은 1948년에 이혼을 하였다. 이혼후에도 두사람은 친분을 유지했었고 Reagan이 별세하자 Wyman은 “위대한 대통령이며 점잖하고 친절한 사람이 별세했다”라고 애도 했었다고 한다.
배우노조에 말썽이 일어나 위원장과 임원들, 이사들이 사퇴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Reagan 은 수습에 관여하게 되었다가 위원장으로 선출 되었으며 그후 임기 1년인 위원장을 일곱번이나 연임하게 되었었다고 한다.
1950년에 Nancy Davis라는 여배우가 위원장인 Reagan에게 찾아와서 자기와 동명이인인 Nancy Davis 가 친공주의자로 의심을 받고 있어서 자신이 억울하게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다는 것을 그에게 호소 하였었다.
Reagan은 진상을 알아보고 Nancy 의 문제를 곧 해결해 주었으며 그후 같은 영화에도 한번 같이 출연했던 두사람은 1952년에 결혼하여 Hollywood의 모범적인 원앙새가 된다. 딸 Patti Davis와 아들 Ronald Reagan, Jr. 를 두었다.
두사람은 말년까지 금슬이 좋았으며 공개적으로 애정표시 하기를 주저하지 않아서 화제가 되기도 하였었다.
Reagan 은 노조문제에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정치에도 눈을 뜨기 시작하였고 차츰 깊숙히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영화계에 잠재해 있는 여러가지의 고질적인 문제들 때문에 영화계에 실망도 했었던 Reagan 은 1960년에 이르러서는 이념적인 전향을 하기 시작한다.
민주당이 너무 “좌경”해 간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Reagan 은 “The party left me” 라고 말하면서 ”The real enemy isn’t big business, it is big government!” 라는 보수계의 구호에 합창하기 시작했다.
1960년에 공화당에 입당한 Reagan 은 1964년에 Barry Goldwater 상원의원이 Johnson 대통령에 도전하여 공화당 대통령후보로 출마하자 Goldwater 후보를 위해서 “유명한” 배우가 전국을 그의 “홍보부장” 격으로 유세하고 다녀서 전국 보수계 인사들의 주목을 끌었다. 그때 당시 California는 현 Jerry Brown 지사의 부친인 민주당의 Pat Brown 지사가 자동차의 엄격한 배기기준 채택, 공기오염 통제, 수질개선 등등의 진보적인 법률들을 다른 주보다 앞서서 입법해가고 있었다.
Reagan 은 1966년에 공화당 주지사 공천을 받아서 작은정부, 규제완화, 사회복지축소 등등의 공화당 정책을 역설하며 미국 제1의 주지사에 당선 되었다가 정치 초년생임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럽고 유능한 정치인 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주지사에 재선 되었었다. 그는 보수적인 주지사 답지않게 미국 최초로 임신중절, No fault divorce law 등에 서명했었다.
주지사 취임후 다소 미숙했던 6개월안에 서명했던 것인데 그는 취임 초기에 일어났던 일로써 가장 후회되는 실수였다고 얘기했었다고 한다. 그는 보수적인 주지사 다웁게 사형제도를 부활시켜 오랫동안 대기중이던 사형수를 사형집행 하였다. 그무렵 반전시위등으로 각지의 대학들이 동요하고 있었는데 명문 대학교인 University of California-Berkeley 가 선두에 서고 강렬하게 폭동적인 시위를 하였었다. 주립대학교인 이 대학교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고 총장등을 강하게 비난해 오던 Reagan 지사는 주방위군을 동원하여 대학생들의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 하다가 대학생 여러명이 사망하고 많은 학생들과 군인들이 부상을 당하는 사태가 일어났었다. Reagan의 “완고함”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우리 옛말에 “구관이 명관이다” 라는 얘기가 있다. 막상 Reagan이 주지사, 대통령을 하고 있었을 때에 필자는 그의 “고집스러운 보수성”이 못마땅해서 그의 기자회견을 보거나 연설을 듣다가 “저런 무식한 …” 라고 불평했던적이 가끔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보면 사실 “무식”했던것은 필자 자신이었음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었었고 필자의 편견이 작동 했었던것도 자인 할수 밖에 없었었다.
특히 Reagan 이후의 대통령들에 비하면 “구관이 명관이었다” 라는 푸념이 나올적도 자주 있고 공화당 대통령으로서는 Abraham Lincoln, Theodore Roosevelt 이후에 공로가 있는 인물이 라는 공화당의 주장이 완전한 허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적도 가끔 있다.
“서부영화”를 제작하자면 Sheriff 역에는 쌍권총을 찬 John Wayne 을 쓰는수 밖에 없는것 처럼 만일 Reagan에게 가장 적격인 영화의 역할이 무었이 겠느냐고 급히 질문을 받는다면 “대통령” 이라고 대답하는 미국사람들도 많이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필자가 “관상학?” 신봉자는 아니지만 Reagan 의 체구, 용모, 쉬운 말로 의사를 잘 전달하는 말솜씨, 항상 밝고 미소를 띠운 얼굴, 품위있는 거동, 악의가 없어 보이는 말투, 자주 인용하는 가벼운 농담 등은그가 가장 이상적인 미국 대통령상을 보여주는것 같았었다.
그가 당면했던 미국의 국내문제들과 국제적인 정세들은 상당히 급박하고 심각한 것들이 었었다. 그는 아주 큰 실책이 없이 당면한 난제들을 처리해 나갔다.
<
조태환/ LI 거주>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