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찰 중인 19용사의 상. 작은 사진은 19용사 중 두 명의 해병대원.
#우리는 그러면 안 된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Korean War Veterans Memorial, 이하 한국전기념공원)이 있다. 링컨기념관(Lincoln Memorial) 바로 앞에 있는 이 곳은 한국전이 발발한 날인 6월 25일과 휴전일인 7월 27일 즈음에 행사가 열린다.
여기서 본 관광객들 모습은 대개 이랬다. 거기 설치된 군인상을 촬영하거나 그것을 배경으로 셀프카메라(셀피)를 찍는다. 여기를 왔노라는 ‘증명사진’을 찍는 것이다. 그리고는 가버린다. 마치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을 촬영하거나 그것을 배경으로 셀프카메라를 찍는 것과 같다. 아쉽게도 우리 한인들도 대개 그랬다.
여기서 본 한인 중에 유난히 기억에 남는 한 팀이 있다. 한 사람의 안내로 어린이를 포함해서 모두 8명이 이곳에 왔었는데, 그들이 한 것은 ‘FREEDOM IS NOT FREE’이라는 글귀를 사이에 두고 네 사람씩 서서 사진을 찍는 것뿐이었다. 예리한 면도날이 가슴을 그어대는 아픔을 느꼈다.
하… 다른 나라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는 그러면 안 되는 거다. 여기서는 아픈 과거의 희생을 되새기고 그 희생에 감사하고 그리고 미래를 굳게 결심하는 경건한 곳이다. 일반 예술작품을 대하는 것과는 마음 자세가 아주 많이 달라야 하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는 이 공원을 조금 특별하게 바라보아야 하기에 적어도 여기 있는 정도만큼은 알고 가기를 바란다.
이 공원의 전체적인 모양은 ‘원을 향한 삼각형’이다. 이 모양에 자유 수호에 따른 희생을 추모하고, 평화를 기원하고, 자유를 향한 전진의 의미를 담은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원- 희생의 추모와 평화의 기원
가장 안쪽에 분수가 있는 추모의 인공연못(Pool of Remembrance)이 있고 그 외곽에 나무를 둥그렇게 심었다. 조경이 잘 되어있는 그 나무 밑에는 벤치가 있어서 그 앞의 인공연못에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조용히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릴 수 있고 또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연못 곁에는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벽이 있다. 이 글귀의 의미를 잘 알기 위해서는 그 벽과 분수 사이에 있는 공간에 새겨진 것을 먼저 살펴봐야한다. 거기 이렇게 새겨져 있다.
사망 미군 54,246 유엔군 628,833 / 실종 미군 8,177 유엔군 470,267 / 포로 미군 7,140 유엔군 92,970 / 부상 미군 103,284 유엔군 1,064,453
이 숫자들을 차례대로 읽은 후 고개를 들어 오른쪽 벽을 바라보면 ‘FREEDOM IS NOT FREE’라는 글귀가 보이는 것이다. 즉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이런 고귀한 희생이 있었다는 얘기가 거기 새겨져 있는 것이다. ‘희생 없는 자유는 없다’는 뜻. 이 글귀가 새겨진 벽은 한국전기념공원 방문기념 사진촬영의 대표 장소이다. 여기서 사진 찍는 것, 좋다. 그러나 그 앞에 적힌 이 희생의 숫자들에도 눈길을 주자. 특히 자녀들에게 이 글귀의 의미를 그 앞에 새겨진 숫자와 함께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치루었던 그 엄청난 희생에 모두 함께 경의를 표하자.
사망 미군 숫자에 대해 공원 레인저는 5만 4천명은 전쟁기간 중 전 세계에서 사망(dead)한 미군 숫자이며 한국전에서는 3만 6천명이 사망했다고 말해주었다. 즉 한국전 전사(kill in action)는 여기 적힌 5만 4천명이 아니라 3만 6천명이라는 얘기인데, 3만 6천명 이라고 해도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리고 이 참에 우리 국군의 사망이 13만 8천명이나 된다는 것도 알고 가자.
#삼각형- 희생에 대한 기억과 자유를 향한 전진
삼각형 안에는 정찰 중인 군인 19명의 모습이 스테인리스 스틸로 표현되어 있다. 이 안에는 육군만 있는 게 아니라 해병대, 공군, 해군도 있다. 기관총을 멘 사수와 기관총 거치대를 메고 탄약통을 든 부사수, 이 두 사람은 해병대이다. 군인 중에 무전기를 메고 헬멧이 아닌 모자를 쓴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공군. 무기를 휴대하지 않고 구급상자를 휴대하고 있는 사람은 해군 의무병. 그리고 인종의 다양성도 배려했다고 한다.
무명용사 추모의 벽에 새겨진 여군들(왼쪽). 무명용사 추모의 벽에 새겨진 경찰견.
군인 전원이 바람에 휘날리는 우의(poncho)를 입고 있는데 이는 한국전 전장의 가혹한 날씨를 말한다., 아마도 한여름의 장마나 한겨울의 강추위가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기 때문인 것 같다. 몇 년 전 비가 내리는 날 이 곳에 도착한 고교 동창은 비가 내려서 더욱 깊은 인상을 받았노라고 그의 페이스북에 남겼다. 이 군인들이 전진하는 삼각형 안에 배치한 나무들과 화강암은 울퉁불퉁 바위투성이의 한국전장을 나타낸다고 한다.
이 군인들은 삼각형의 대오를 이루고 전진하는데 그 삼각형의 꼭지점에는 전쟁기간을 의미하는 ‘1950-KOREA-1953’가 적혀 있고 그 위에는 “알지도 못했던 나라,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을 수호하는 나라의 부름에 응답한 이 땅의 아들과 딸에게 경의를 표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도착했을 것인데, 우리의 자유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이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이 삼각형의 대오 옆에 검은색 화강암 벽이 세워져 있고 거기에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애칭으로 새겨져 있다. 추모의 벽인 셈이다. 크고 작은 모습으로 새겨진 이 무명용사들은 실제 사진을 바탕으로 새겼는데 고국의 부드러운 산하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배열되었다.
그리고 이 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퍽 다양한 참전 형태를 발견할 수 있다. 여군은 물론이고, 보병, 포병, 수송, 간호, 통신, 전투기, 전폭기, 수송기, 전투함, 군종(유태교도 있다), 헌병 그리고 낙하하는 공수부대도 있다. 경찰견도 한 마리 있다. 공원 레인저에 말에 의하면 워싱턴 DC 안에는 두 마리의 개가 추모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 벽에 새겨져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 검은색 화강암 벽은 다른 기능을 하나 더하고 있는데 그것은 19명의 군인상을 비추는 것이다. 즉 어느 정도 빛이 있는 날이면 19명의 군인상이 그 검은 벽에 비춰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삼각형 대오를 이루는 19명과 검은 벽에 비추어진 19명을 합하면 38명이 되어 북위 38도를 상징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삼각형 대오를 이루고 있는 인원이 분대를 이루는 인원 보다 많은 19명인 이유이다.
대오를 이루는 삼각형의 다른 한 변에는 한국전에 참전한 국가를 알파벳 순으로 새겨 놓은 돌이 있다. 호주(AUSTRALIA), 벨기에, 캐나다, 콜롬비아, 덴마크, 에티오피아, 프랑스, 그리스, 인도, 이태리,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필리핀, 대한민국, 남아공화국, 스웨덴, 태국, 터키, 영국, 미국. 모두 22개국. 우리는 ‘참전 16개국’이라는 표현에 익숙하지만 여기에는 전쟁 당사국인 우리를 포함해서 22개국 모두를 새겨 놓았다.
전투부대를 파병한 나라 외에 의료지원국 5개국이 있었다는 것도 잊지 말자. 그리고 그 나라 사람들 만나게 되면 감사의 인사를 전하자. 특히 콜롬비아 출신이나 에티오피아 출신 사람들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이곳 워싱턴 메트로 지역에서 만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들은 만나게 되면 우리의 혈맹으로서 감사인사를 꼭 전하자. 그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지금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것이니까. 특히 에티오피아는 정치 체제가 바뀌면서 한국전에 참전했다는 것 때문에 불이익을 받았다고 하니, 참전용사들에게 더욱 감사해야 한다.
#깃대에 걸어 놓은 기억
삼각형과 원이 만나는 지점에 깃대가 하나 있고 거기에는 두 개의 깃발이 걸려있다. 위에는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가 걸려있고 그 밑에 검은색 기가 하나 더 걸려있다. ‘전쟁포로(POW, Prisoner Of War)와 실종자(MIA, Missing In Action)를 잊지 않겠다(YOU ARE NOT FORGOTTEN)’는 굳은 의지를 담은 깃발이다. 아직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향한 아름다운 마음씨가 거기 걸려있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 가게 되면 땅에 있는 것만 바라보지 말고 하늘에 걸린 이 검은색 기에도 눈길을 주자. 지구 반대편 낯선 땅 어딘가에 남겨져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희생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남은 이야기
이 공원은 1986년 의회의 승인을 얻고 1993년에 착공하여 1995년 7월 27일 정전협정 42주년 되는 날 헌정되었다. 공원 조성에 관한 자료는 무명용사 얼굴이 새겨진 검은색 화강암 벽의 뒤편에 남겨져 있다. 19명의 군인상을 만든 프랭크 게이로드(Frank Gaylord)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이다. 그러니 그는 자신의 이 작품에 더욱 각별한 의미를 담지 않았을까 하고 짐작해본다. 그리고 이 벽 뒤에 작은 화단이 있는데 거기에 무궁화가 심어져 있다. 공원조성의 세심한 손길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하… 다시 한 번 얘기하거니와 혹시 이 기념공원에 가게 되면 예술작품 전시회에 가듯이 그렇게 행동하지는 말자. 적어도 우리는 그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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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성식 (VA, 스프링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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