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훈
여름 내내 즐겨 먹던 오이지가 몇 개 남지 않았다. 남편은 이게 다냐고 몇 번을 물어보았다. 그는 여름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오이지 타령을 할 정도로 오이지를 좋아했다.
하도 좋아하여 해마다 담가 먹다 보니 차츰 나까지도 오이지를 선호하게 되었다. 오이를 소금물에서 숙성시키는 것 외엔 아무것도 첨가하는 것이 없는데도, 짭조름하니 아삭하게 씹히는 게 뒷맛까지 개운하여 여름 밑반찬으로 자주 상에 올랐다. 여름이 지나가려면 한 달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 남편에게 한 봉지 더 담글까 물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괜찮다‘고 했다.
남편은 괜찮다는 말을 아무 데나 갖다 붙이는 경향이 있다. 본인의 의사를 분명하게 밝혀야 할 물음에도 이것도 저것도 아닌 괜찮다고 했다. 자기 의사를 분명하게 밝히면 왠지 경박스럽고 이기적으로 보일까 봐 ’괜찮다‘로 애매하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서도 그런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겸손한 사람과 착한 사람을 한통속으로 여겨 자기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길 꺼리는 것인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귀찮아서 인지 알 수가 없었다.
괜찮다는 말을 많이 쓰는 사람은 얼핏 긍정적인 사람으로 보이지만,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닐까 의심이 든 적도 있다. 선뜻 좋다고 긍정하지 못하고 어느 한구석 불만족스럽지만 받아들이겠다는 선심이 깔려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 직설적으로 감정을 표출하여 오해도 받고 환대받지 못한 적도 있지만, 자기 생각을 적절하게 밝히는 게 두리뭉실하게 넘기는 것보다 확실한 소통이 된다고 믿고 있다. 다의적인 뜻으로 괜찮다는 말을 오래도록 사용해 온 우리는, 때로는 좋다는 뜻으로, 때로는 싫다는 말로 불편 없이 알아듣고 쓰고 있지만, 정서가 다른 문화권의 사람에겐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캐나다인 사위를 둔 지인의 이야기이다. 사위와 장인이 야간 야구 경기를 보러 갔다. 게임이 시작되기 전, 사위가 햄버거를 사 오겠다며 장인에게 먹겠냐고 물었다. 저녁을 먹기엔 이르고 안 먹자니 관람 도중에 배가 고플 것 같았다. 장인은 잠시 생각하다가 “It’s OK.”라고 대답했다. 사위는 햄버거를 딱 한 개 사 와서 혼자만 먹었다. 사위는 ‘It’s OK.‘를 ’No‘로 이해했다. 장인은 ’It‘s OK.’라고 했지만, 잠시 뜸을 드린 것으로 ‘먹어도 좋고, 안 먹어도 된다’는 뜻을 전한 것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Yes’하는 것을 채신머리없는 짓이라 여기며 아랫사람이 한 번 더 물어봐 주길 은근히 기대하는 것도 우리의 정서이다. 한 번쯤 사양한 것으로 체면을 세우고, 두 번째 물어오면 권유를 받아들이는 제스처를 취하며 먹으려 했는데, 혼자만 먹고 있는 사위가 아주 얄미웠단다. 저녁을 거르고 야구를 보고 와서 딸한테 사위가 두 번도 안 물어보고 혼자만 먹더라고 일러바쳤다. 그 후 딸이 제 남편에게 아빠가 ‘It’s OK‘라고 해도 한 번 더 물어보는 게 한국문화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이제 사위는 장인이 ’it‘s OK’라고 하면 “Canadian it‘s OK or Korean it’s OK?”라고 확인하며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난감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지막 남은 오이지를 밥상에 올리며 이게 진짜 마지막이라고 하자, 남편은 미련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동정심이 생겨 한 봉지 더 담그자고 또 다시 물었다. 사실 자꾸 물어볼 것도 없이 내 맘대로 할 수 있었지만, 긍정도 부정도 아닌 ‘괜찮다’고만 하면 얻어먹을 것도 못 얻어먹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심보가 아주 없지 않았다. 분명하게 자기 의사를 표현하길 기대하며 여러 번 물었지만, 끝까지 괜찮다고 하던 그가, 다음 날 몸소 오이지 오이 한 봉지를 사 들고 왔다.
이렇게 담글 걸 왜 괜찮다고 했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먹기는 본인이 먹는데 수고는 내가 하니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랬단다. 결국 남편의 ‘괜찮다’라는 말은 No도 아니고 Yes도 아닌 ‘배려’였다는 것을 겨우 알게 되었다. 자신의 의견을 이거 아니면 저거로 똑 떨어지게 나눌 수 없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일이 아닌 이상 본인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자고 진담을 담은 농담을 건네며 웃고 말았다.
가작 입상소감 l 유연훈캐나다 시민이지만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환경에서 모국어로 글을 쓰며 정체성을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모국어의 어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수필이 곁에 있어 더 많은 단어와 문장으로 우리 말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민문학의 강점을 찾아 차별화 시키는 일이 우리의 사명이 아닐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노후의 삶을 꿈꾸며 시작한 글쓰기가 삶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읽고 쓰며 도전하고 성장하고자 하는 삶에 날개를 달아준 미주 한국일보에 감사 드리오며,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정진을 약속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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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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