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봄볕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 창문 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따사로움에 온몸을 맡기고 있는 우리 집 강아지 코코. 감길 듯 말듯 졸고 있는 눈에 봄기운이 번진다. 눈부시도록 맑은 하늘이 등을 떠미는 것 같아 서둘러 산책을 나선다.
앙상하던 가지에서 어느덧 연초록의 잎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세상 구경을 하고 있다. 나무에서 새순이 돋기까지, 풀뿌리에서 새싹이 나오기까지, 모진 추위를 버티며, 지구가 한 바퀴 돌아온 긴 시간을 견디어 얻은 세상이다. 봄이 아름다운 이유다.
밖으로 나온 코코는 연실 코를 벌름거리며 봄 냄새를 주워 담느라 바쁘다. 그뿐만이 아니다. 냄새 한번 맡고 오줌 한번 싸고, 냄새 한번 맡고 오줌 한번 싸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들만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라 하던가.
어떤 동물도 흉내 낼 수 없는 탁월한 후각으로 그들의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고 있다고 생각하니, 녀석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 앞서 산책 나왔던 강아지가 소식을 전하고 다음 친구가 메시지를 읽으며 또 다른 친구는 댓글을 남긴 게 아닐까. 코코도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친구들의 이야기에 많은 댓글을 달고 있는 듯하다. 녀석이 댓글을 다는 동안, 카메라에 봄을 옮기느라 셔터를 누르는 내 손도 바쁘다.
코코는 뒤따라 오는 법이 없다. 길을 내는 용감한 장군처럼 늘 앞장서서 걷는다. 그러다 좋아하는 식물을 발견하면 제 나름의 방식으로 즐긴다. 코를 가까이 대고 한참 동안 냄새를 맡더니 자기 영역표시를 한다. 그럴 때면 발걸음을 멈추고 기다려 준다. 내가 꽃 앞에서 머물면 녀석이 기다려 준다. 가끔 녀석 때문에 새로운 식물을 발견할 때도 있다. 나무에 가려, 혹은 풀잎 사이에서 ‘나도 있어요.’라고 목청껏 외치고 있는 여린 잎. 이 작은 생명 앞에서는 살포시 손을 갖다 대고 싶다.
코코가 어느 집 앞에서 멈춰 선다. 나도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서 있다. 로즈네 집이다. 하얀 털을 가진 코코의 여자 친구다. 작년 산책길에서 처음 만난 이후로 가끔 같이 공원에도 가곤 했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집도 알게 되었다. 겨울 동안은 춥고 비가 내려 산책하러 나가지 못했다. 그동안 나는 로즈를 잊고 있었다. 그런데 코코는 로즈를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햇볕이 따뜻한 오늘 로즈도 산책을 나오지 않을까? 코코는 은근히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공원을 향해 걷는다. 로즈가 꼬리를 흔들며 반겨줄 거란 생각에 코코의 걸음이 빨라진다. 공원에는 아직 로즈의 흔적이 없다. 코코의 마음을 읽은 나도 속으로 로즈를 기다린다. 아쉽게도 오늘은 로즈를 만날 수 없을 것 같으니 돌아가자고 해도 코코는 발을 떼지 못한다. 아니, 계속 기다릴 태세다. 다시 한번 목줄을 잡아당긴다. 그래도 코코는 단단히 버티고 있다.
무엇을 찾아낸 걸까. 문 앞까지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간다. 귀를 쫑긋 세우더니 앞 잔디밭에서 코를 킁킁거린다. 로즈가 뭔가를 남겼나 보다. 꽤 오랜 시간 냄새를 맡더니, 몸속 에너지를 다 모아 긴 러브레터를 쓰고 있다. 아껴 두었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뽑아내며, 온 힘을 다해 사랑을 고백하고 있는 것 같다. 로즈가 이 편지를 읽고 다음 산책 때는 꼭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산책에서 돌아온 코코는 기대감이 무너져서인지 더 피곤해 보인다. 생각을 잊으려는 듯 소파에 누워 낮잠을 잔다. 우리를 따라 들어온 봄볕이 따뜻한 손으로 코코의 등을 다독여주고 있다. 꿈속에서 로즈와 재회라도 한 걸까. 얼굴에 미소를 띠고 몸을 들썩이면서 잠꼬대를 한다. 잠시나마 코코로부터 마음을 빼앗아 간 로즈에게 작은 질투를 느낀다.
오늘은 봄의 꽃향기를 담아서 남편에게 사랑의 편지를 써보고 싶다. 특별한 날은 찾아오기보다 만들어 가는 것일지 모른다. 오랜만에 남편에게 코코처럼 진실한 마음을 전해보기로 한다. 얼굴 가득히 미소를 띤 그이의 모습을 상상한다. 가슴이 설렌다.
가작 입상소감 l 김정숙코코와 함께 수상의 기쁨을 나눴습니다. 주위 사람들 말처럼 코코의 글이 당선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구름과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구름은 내가 볼 수 없는 먼 세상 이야기를 들여주었습니다. 코코도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 줍니다. 나는 눈과 귀뿐만 아니라 온몸으로 그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같은 언어로 소통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언어가 다르다고 무시하거나 안 들을 수는 없습니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살아있는 생명은 다 나름의 표현 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가슴을 열고 귀 기울이면 누구나 들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읽었을 때 자신의 얘기처럼 고개가 끄덕여지는,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한 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더 많이 쓰라는 격려로 알고 열심히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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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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