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덕희, 청각장애 선수 최초로 ATP투어 단식 본선 승리
▶ 웬스턴 세일럼 오픈서… 2회전에선 아쉬운 역전패 탈락
이덕희가 ATP 투어 단식 본선 첫 승을 거둔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S&B컴퍼니]
선천성 청각장애를 딛고 도전을 이어온 청각장애 선수 이덕희(21, 세계랭킹 212위)가 사상 최초로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단식 본선에서 승리를 따낸 뒤 동료 선수들의 칭찬도 이어지고 있다.
이덕희는 지난 19일 노스캐롤라이나주 윈스턴세일럼에서 열린 ATP 투어 윈스턴세일럼 오픈(총상금 71만7,955달러) 단식 본선 1회전에서 헨리 라크소넨(120위·스위스)을 2-0(7-6<7-4>, 6-1)으로 제압했다. ATP 투어는 홈페이지 메인화면을 통해 이덕희의 역사적인 첫 승 소식을 알렸다.
이번 대회에 함께 출전한 2012년 런던 올림픽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단식 금메달리스트 앤디 머리(329위·영국)는 ATP투어 인터넷 홈페이지에 실린 인터뷰를 통해 “만일 내가 헤드폰을 쓰고 경기를 한다면 공의 스피드나 스핀을 파악하기 매우 어려워질 것”이라며 “경기에서 청각이 담당하는 역할이 매우 크기 때문에 듣지 못한다는 것은 대단히 불리한 조건”이라고 지적했다. 메이저 대회에서 세 차례나 단식 정상에 오른 그는 “이덕희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에 이런 경기력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청각장애 3급의 이덕희는 16세1개월에 국제테니스연맹(ITF) 퓨처스 대회에서 우승, 정현의 국내 최연소 우승 기록을 경신하며 주목받았다. 2016년 국내 최연소(18세2개월)로 세계 200위 벽을 깼고 2017년에는 세계 130위까지 올랐다.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단식 동메달리스트이기도 하다. 현재 랭킹은 권순우, 정현에 이어 한국 3위다. 이덕희는 이번 대회 출전에 앞서 윤용일 코치와 함께 본보를 방문, 장애를 극복하고 세계무대에 도전하는 각오를 밝히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본보 19일자 A4면 보도>
비장애선수들과 당당히 맞서는 이덕희의 모습에 세계적인 스타들도 관심을 보이며 격려해왔다. 노바크 조코비치(1위·세르비아), 라파엘 나달(2위·스페인) 등이 그동안 메이저대회에 이덕희를 훈련 파트너로 초청했다.
앞서 2013년 성인 랭킹포인트를 처음 따내자 나달은 개인 소셜미디어에 “이덕희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항상 도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고 적기도 했다. 그해 9월 방한해서는 이덕희를 만나 “듣지 못하는 것은 테니스에서 큰 단점인데 이덕희가 강한 정신력과 불굴의 의지로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격려했다. 또 “장애를 극복한 이덕희의 이야기가 주니어와 프로 선수들은 물론 사회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으며 2014년 프랑스오픈을 앞두고는 이덕희와 함께 훈련하기도 했다.
조코비치는 2015년 윔블던 당시 이덕희와 함께 훈련하며 “어제 주니어 단식 경기에서 역전승을 거두는 모습을 봤다”며 “장애를 이겨내고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모습이 대견하다”고 덕담을 건넨 바 있다.
이날 1회전에서 머리를 제압한 테니스 샌드그렌(73위·미국) 역시 “몇 년 전에 이덕희와 경기한 적이 있는데 경기가 끝난 뒤 그가 나에게 와서는 구글 번역기를 통해 ‘나의 약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더라”며 “내가 영어도 못 하고 들리지도 않는 입장이었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 같다”고 이덕희의 집념에 찬사를 보냈다. 그는 “상대 선수 샷의 소리를 통해 파악하는 정보가 매우 많기 때문에 만일 청력이 없다면 엄청난 기술과 재능이 있어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이덕희는 이날 경기 후 ATP투어 홈페이지에 실린 인터뷰에서 “일부 사람들이 저의 장애를 비웃기도 하고, 저는 좋은 선수가 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가족과 친구 등 주위 도움으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면서 “청각 장애가 있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좌절하지 말라는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고 메시지를 전했다. ATP투어는 “이날 인터뷰는 영어를 한국어로 통역하고, 그 질문을 약혼녀에게 전달하면 그 입 모양을 보고 이덕희가 질문을 파악하는 식으로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덕희는 아쉽게 16강 진출은 불발됐다. 세계랭킹 41위의 강호 후베르트 후르카치(폴란드)를 상대로 첫 세트를 따내는 등 잘 싸웠으나 아쉽게 패해 탈락했다.
20일 벌어진 2회전에서 이덕희는 대회 3번 시드의 후르카치에게 1-2(6-4, 0-6, 3-6)로 역전패했다. 전날 역사적인 승리에 이어 이날 첫 세트를 따내며 기세를 이어갔으나 이달 초 매스터스1000 대회인 로저스컵 2회전에서는 스테파노스 치치파스(8위·그리스)를 꺾은 후르카치는 이덕희가 상대하기에는 여러모로 힘겨운 상대였다. 후르카치는 1세트를 내준 뒤 2세트를 6-0으로 가져가며 대반격에 나섰고 3세트에서도 게임스코어 4-0으로 훌쩍 달아나 승기를 굳혔다. 이후에도 이덕희는 3-5까지 추격하고 이어진 상대 서브 게임에서 15-40으로 더블브레이크 포인트까지 잡으며 분전했으나 결국은 2시간3분의 접전 끝에 고배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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