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so sorry for delaying your trip, please save Hong Kong !”
11주째 이어지고 있나. 홍콩시위가. 그 현장에서 시위자들에 의해 전해지고 있는 전단 내용이다. 전단의 최상단은 영어문장이 차지하고 있다. 다음은 같은 내용의 프랑스어 문장, 그 다음은 독일어…, 일본어, 그리고 한국어 문장도 보인다. “죄송합니다 … 홍콩을 구해주세요!”
짧은 문장이다. 그렇지만 사태의 긴급성이 그대로 녹아있다. 여름 내내 계속된 시위. 이제는 절체절명의 상황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할까.(이 글을 쓸 때는 무력진압사태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그 정황에서 도움을 절실히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유난히 무더웠던 2019년의 여름은 그러면 홍콩시민들에게만 ‘잔인한 여름’이었을까.
중국의 핵심지도자 시진핑에게도 ‘잠 못 이루는 길고 긴 여름’이었을 것이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다. 한마디로 진퇴양난의 입장에 몰린 처지니까.
2년 전, 그러니까 2017년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통해 시진핑이 21세기의 황제로 등극할 때만 해도 상황이 이렇게까지 몰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어쩌다 이 지경에….
가장 먼저 이상이 감지된 곳은 경제 전선이다. 성장 동력이 멈춘 경제, 거기에 설상가상 격으로 덮친 것은 트럼프의 관세폭탄이다. 마오쩌둥주의도 아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더 더구나 아니다.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번영보장, 이것이 공산당통치 적법성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물질적 풍요를 대가로 한 자유의 포기. 이런 암묵적 계약조건으로 중국인민은 공산당통치를 받아들인 것이다.
경제가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 엉터리 통계로 경제실상을 호도해 오던 베이징이 문제를 시인할 정도가 된 것이다. 뭔가 대안이 필요하다. “그 대안은 중화의 자존심을 한껏 고취시키는 것이다. 선전선동기구를 통해 대대적으로.” 지오폴리티컬 퓨처의 조지 프리드먼의 진단이다.
틈만 나면 군사력을 과시한다. 시진핑 황제 등극 이후 베이징이 취해온 자세다. 서태평양지역에서의 군사패권 정도가 아니다. 미국을 추월해 전 세계적 수퍼파워로 등극할 것이다. 그런 야망을 공공연히 드러냈다. 동시에 추진해온 게 이름도 거창한 일대일로(一帶一路)정책이다.
중국의 국제적 위상은 날로 높아가고 중화의 자존심은 턱없이 부풀려진 것. Enough is enough. 미국이 먼저 제동을 걸고 나섰다. 무역전쟁에, 남중국해 자유의 항행을 통한 군사적 도전에 나선 것. 그리고 그 뒤를 따라 국제사회도 중국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대안은 어디까지나 대안일 뿐이다. 중국공산당, 더나가 시진핑 1인 독재통치의 근간은 어디까지나 경제성장, 물질적 풍요의 보장이다. 무역전쟁 여파로 그 경제전선에서 심각한 이상 징후가 드러나면서 국내에서도 거대한 백래시(backlash)가 일고 있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의 분위기가 점차 불온해지고 있다고 할까.
부패척결을 빌미로 반대세력을 제거함으로써 시진핑은 그렇지 않아도 엄청나게 많은 적을 만들어왔다. 그런 정황에 미국에 정면 도전한 대가로 중국은 정치, 외교, 군사, 경제적으로 심각한 곤경에 몰리게 됐다. 시진핑 세력에게는 반격의 호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 정황에서 발생한 것이 홍콩시위다. 11주째 이어지고 있는 홍콩시위를 통해 우선 드러나고 있는 것은 시진핑 체제의 취약점이다, 중국은 국내정보시스템의 사찰을 통해 국내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홍콩 시위의 경우 당국은 전혀 예측을 못했다. 그러니까 공산당 통치를 떠받드는 공안시스템에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
홍콩 시위를 방치할 경우 자유화 요구 시위는 본토 전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 베이징으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사태다. 공산당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 때문에 무력진압에 나선다. 그래서 홍콩 거리에 시체가 하나 둘 쌓이는 모습이 SNS 등을 타고 전 세계로 전해진다.
시위사태는 진압되어도 후폭풍은 더 거세진다. 국제사회의 거센 규탄과 함께 중국에 대한 투자가 격감하면서 중국경제는 이중삼중의 타격을 입게 된다는 것, 이와 함께 예견되는 사태는 사회불안의 가속화다. 그 모든 사태의 책임은 1인 독재체제 하에서 시진핑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다. 시진핑은 말 그대로 진퇴양난의 상황에 몰려 있다는 것이 대다수 관측통들의 진단이다. 이 정황에서 중국 공산당 원로들과 엘리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1964년, 쿠바위기사태 이후 크렘린에서 일어난 일을 상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지의 지적이다. 권력 앞에서 굴종의 미소만 흘린다. 그렇게만 보이던 소련공산당 정치국멤버들이 보스인 흐루시초프를 몰아낸 것이다. 당시 외상이던 안드레이 그로미코는 ‘도박사같이 너무 위험한 인물’이므로 정치국이 축출했다고 훗날 밝혔다.
군사적 세계패권 같은 야망은 없었다. 단지 쿠바에서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대치하려고만 들었던 거다. 그런데도 흐루시초프는 위험인물로 찍혀 권좌에서 밀려난 것이다. 입추도 지나 이제 선선한 가을을 알리는 처서가 눈앞이다. 14억 중국의 핵심지도자 시진핑에게는 그렇지만 무덥고, 또 잠 못 이루는 여름밤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홍콩시민들은 왜 한국인들에게 홍콩을 구해달라고 호소하고 나섰을까. 자유와 개방의 상징인 한류의 나라, 세계 2의 선교국가, 그리고 촛불정신의 나라가 대한민국으로 보여서인가. 그 전문을 대하는 순간 그런데 왠지 부끄러움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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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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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8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한 가지 착각하는 것이 중국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바라는 것은 자유도, 경제도 아니고 안정이다. 수천년 동안 천하대란을 겪으며 살아왔는지라 강력한 장악력이 민심의 떠받침을 받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다. 그리고 근세에 와서 외세에 모욕당했던 기억이 생생하여 애국심과 단결, 민족주의가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고 대체로 서구는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무시하여 월남전에서처럼 낭패를 당할 수 있다. 홍콩 시위에 중국본토 사람들이 동조하여 들고일어날 가능성은 적다.
옥씨는 비록 미국에 살지만 한국 입장에서가 아니라 미국 우파, 보수층 시각을 대변하는 것 같다. 한국은 여태 시대착오적이고 민족만역적인 수구들의 발목잡기와 투정 때문에 좀 지척거리고 있지만 많은 면에서 이전보다 안정 되어 있고 발전하고 있다. 홍콩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하고 도움을 청할 만하며 우리 모두가 그런 점에서 좀 뿌듯하다. 옥위원 같은 분들만 빼고...
옥위원글에 무조건 쌍심지를 켜는게 아닙니다. 그의 사설을 읽어보면 무슨 토픽이던지 항상 글 마지막에는 문재인까는걸로 종료하는 어거지를 부리니 그러는거아뇨?
옥위원 글만 나오면 쌍심지 들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는데... 여하튼 상소리 어거지 인신공격은 삼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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