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분명해진 장르 개념… 소설 사라질지도 우한용
▶ 글쓰기란 근원적 의문에 대한 경험과 생각 박인기
■ 해변문학제 초청 우한용·박인기 교수 대담제32회 해변문학제에 초청된 우한용 교수와 박인기 교수는 한국에서 ‘문학 교육론’의 정립에 큰 기여를 한 학자들이다. 서울대 동문인 두 교수는 ‘문학교육론’ ‘국어와 창의인성 교육’ ‘교사와 책 미래의 힘’ 등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린 연구서들을 여럿 펴냈다. 은퇴 후 우한용 서울대 국어교육과 명예교수는 소설가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고 박인기 경인교육대 국어교육과 명예교수는 문학의 생태를 연구하며 생활 속 문학을 전파한다. 국제펜 한국본부 미주서부지역위원회(회장 이승희)의 초청으로 4년 만에 LA를 찾았다는 우 교수와 LA문인들과는 첫 만남이라는 박 교수를 지난 2일 본보 회의실에서 만났다. 짧게만 느껴진 인터뷰가 마치 오래된 두 벗의 대화에 끼어들은 듯해 대담 형식으로 내용을 정리했다.
“디아스포라 개념은 이전처럼 ‘본향이 있고 억지로 떠나고 돌아오지 못해 한스러워 하고’ 그런 개념은 벗어나게 될 것이다” - 우한용 교수
“이민 문학이 특별한 문학범주가 아니라 일반형으로 조명이 되는 시대를 맞을 것이다.” - 박인기 교수
<우> 강연을 하려면 무슨 제목으로 해야 호응이 클까 생각하다가 ‘소설쓰기와 자기인식에 대한 단상’을 제목으로 정했다. 내 삶을 돌아보고 어떻게 사는 게 제대로 사는 건지. 남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런 건데 난 30년 넘게 소설을 썼다. 내가 나를 깨닫고 내 삶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을 터득하는 데 소설쓰기가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박> 내 공부의 정체성은 ‘문학교육’이다. 그 간에 문학을 둘러싼 생태가 지식생태, 문화생태, 기술생태, 미디어생태 등 엄청나게 바뀌었다. 정론적으로 문학이다. 문학을 견제하거나 누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여러 제한이 있다. ‘문학의 작용력이 줄어들었다. 문학의 위기다’는 이야기는 이전부터 해왔다. 창작을 하는 작가들의 입장도 있지만, 일상생활 전반에서 문학이 생활 속에 들어와야 한다. 문학 교육의 입장에서는 ‘생활 속에 문학들이 퍼져나가기’ 바란다.
<우> 근원적으로 우리들이 인문학, 사회학 분야에서 쓰는 용어들은 과학적으로 정의되는 용어가 아니다. 황순원의 ‘탈’ 같은 한 페이지 소설도 소설이고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도 소설이라고 한다. 규정이 어렵다. 자기가 다루고 있는 소설이 스펙트럼 어디에 속하는가에 따라 속성이 달라진다. 수필과 대비를 해보면 수필은 자기 고백의 글이라고 하지만 어떤 경우는 그렇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꾸며서 허구 개념을 도입하기도 한다. 근대화되면서 장르 개념을 엄격하게 적용했다가 요즘 들어 장르 개념이 넘나든다.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인터뷰한 것을 조각조각 모아 체르노빌의 원전사고에 관한 소설을 냈다. 울림이 있을 뿐, 스토리가 정확히 전달되지도 않는다. 코러스 소설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장르가 불분명한 소설이다. 2016년에는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노래 가사이기도 하고 시이기도 하고 이렇다. 음악인인데 노래가사가 시적으로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노벨상을 수여했다. 장르의 경계가 점점 느슨해지면서 문학의 범주에 포함시켜진 것이다.
<박> 문학을 둘러싼 생태들이 변화되었다. 따라서 문학을 쓰고 다루고 대하는 것도 어떤 면에서 생태 변화에 따른 진화가 있어야 한다. 그것으로 문학의 생활화를 이야기한다. 결국은 지식생태도 융합, 통합으로 가게 된다. 이를 촉진시킨 것이 미디어나 테크놀러지의 변화들인데 여러 독립종으로 있던 것들을 혼종시킨다. 그런 지식생태, 문화생태, 미디어생태, 기술생태 등이 온전한 전통적인 문학 그대로 있게 만들지 않는다. 문학도 장르의 변이, 융합, 혼종 등을 문학 내에서도 만들고 문학 바깥 장르들과도 문학이 결합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우> 박 교수가 말하는 ‘생태’는 소설이든지 문학을 가운데 두고 그것 자체의 변화와 함께 주변 여건의 변화를 같이 고려하는 개념이다. 환경과 본체의 양립적 개념이 아니라 자체도 변하고 둘러싸고 있는 환경도 끊임없이 변해간다. 공동의 변화를 이루는데 이것이 살아가는 하나의 에코 시스템이 되는 것이 생태다. 글쓰기 자체가 중요성을 가지면서 이전의 완강한 장르 의식은 물러나고 통합이 될 것이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점은 글 쓰는 사람 자체가 주제의식이 약화된다든지 문학의 독자성에 대한 의식이 약해지면 병폐가 된다. 문학은 끊임없이 변한다. 지금 소설은 이전 개념으로 소설 같지 않다. 앞으로 소설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소설이라는 용어는 남아도 이전 개념의 소설은 없어질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장르의 가변성, 문학 범주의 유연성으로 이런 쪽으로 전개되어 나가지 않을까.
<박> 글 쓰기는 소통과 관계 맺기에서 비롯된다. 전통적인 우정, 인정, 정서 차원에서의 관계 맺기도 있다. 이런 것들을 반드시 글쓰기와 연동해서 하는 것, 아주 상식적인 것이다. 문학의 실천은 별 거 아니다. 일상사에서 방명록을 대할 때 의미 있는 실천을 하려면 ‘생각해간 문구’를 두 줄 써보는 것. 내가 쓴 구절이면 더 좋고 (표현이 좋건 나쁘건) 필력이 모자라면 좋은 구절을 갖다 주는 것 만으로도 ‘글쓰기를 진정성 있는 실천으로 가게 하는 습관’이 된다.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무조건 한두 줄이라도 쓰자. 거기서부터 글쓰기가 내 것이 된다. 문학과 관련시키면 경험한 것을 경험으로만 끝내지 말고 내가 했던 경험을 조금 생각해보고 생각한 것을 두어줄 쓰라. 경험한 것이 있고 경험이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그 것을 정리하면 글이 된다. 역으로 생각이 경험을 불러 오는 경우는 굉장히 글쓰기에 좋은 것이다.
<우> 이민 문학은 이제 바뀔 것이다. 지금 노마디즘(Nomadism·떠돌이 삶)을 이야기한다. 한국 국내에 살아도 자기는 정착해서 살지 못한다는 의식이 강하면 그 사람의 삶은 노마디즘의 삶이다. 저처럼 변화를 자꾸 이야기하고 세상이 변하는데 내가 변화하지 않을 수 있냐고 이야기하면 오히려 노마디즘이 자연스럽고 그 자체가 가치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외압에 의해서 지키고 살던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고 고향은 고향대로 있고 내가 사는 현실은 딴 데가 있고 그것을 ‘이민’이라고 한다면 마음 속의 이민도 있고, 정착지에서 의식만 이민이고 삶은 그냥 정착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요즘은 자기 선택에 의해 떠나기도 한다. 적응도 아주 잘한다. 본토와 타향이라는 개념이 서로 왔다 갔다 하는 거다. 디아스포라 개념도 이전처럼 ‘본향이 있고 억지로 떠나고 돌아오지 못해 한스러워하고’ 그런 개념은 벗어나게 될 것이다.
<박> 이산과 이주가 일반형처럼 되어간다. 공간적으로 이산되는 것도 이산이지만 공간과 상관없이 이산의 문화체험을 갖고 지낸다. 이산, 이민 등 이런 문학이 특별한 문학 범주가 아니라 일반형으로 조명이 되는 시대를 맞을 것이다. 민족문학 차원에서 보면 ‘한민족 민족 문학’이라는 큰 범주나 울타리가 있다고 할 때 나와있는 이민문학의 여러 성향이 원심력, 즉 바깥으로 뻗혀나가려는 힘이 될 것이다. 국내에 이어져왔던 한국문학은 구심력이 되어 한국문학 전체는 강한 역동성을 띨 것이다.
<우> 좋은 글쓰기는 우선 어떤 사태에 대해 진지하게 다가가야 한다. 근원적인 의문을 갖고 우리들 삶의 변화 속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문제의식도 있어야 한다. 물론 처음부터 이를 강조하면 진력을 낸다. 의문을 가지고 사태를 바라보고 보아야 의미 있는 글이 된다. 글이 글만 남고 공감도 없고 소통도 안되는 글이 많다. 물론 매체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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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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