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요즘, 나는 거주한지 1년이 된 이 지역에서 정말 여름을 실감한다. 화씨 95도, 고국에서 이만한 기온이면 습도가 높아 견디기 힘든 날씨지만, 일교차가 심한 이 지역은 저녁이면 오히려 추위가 느껴질 정도이니 더워도 덥지 않다고 해야 할까.
우리 집에서 겨우 1마일 거리엔 아주 예쁘고 자그마한 올드 타운이 있다. 진입로엔 방문자를 환영하듯 아치가 설치돼있고, 그 위 녹슨 간판엔 1859년부터 그 거리가 형성됐다는 표시가 있다. 꼭 160년의 역사를 가진 거리는, 2차선 도로 양옆으로 아담하고 고풍스런 목조 건물들이 늘어서 카페와 레스토랑, 앤틱샵과 양품점들이 오밀조밀 붙어있다. 레스토랑의 패리오 주변엔 드라이아이스에서 피어오르는 차가운 김이 안개처럼 서려있고, 그 사이로 맥주를 마시며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인다. 관광객인 듯한 사람들이 무리지어 거리를 걸으며 사진을 찍고, 향수샵이나 빈티지샵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그 거리의 중간쯤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언덕에 선 시빅 센터의 아름다운 건물이 올려다 보인다. 30주년을 기념한다는 커다란 팻말을 보며 그 짧은 역사에 잠깐 놀라기도 한다. 미국자체의 역사가 짧기도 하지만, 이 도시의 행정이 정비된 건 정말 얼마 되지 않는다는 걸 다시 알게 된다. 시빅 센터 건물은 스패니시 풍이다. 건물 앞에 조성된 작은 광장의 잔디밭 양옆으론 나무 그늘 아래 벤치들이 놓여있다. 올드 타운의 분주한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엔 커다란 원형 분수가 물을 뿜고, 광장은 거기서부터 시작돼 시빅 센터 건물까지 이어진다. 잠시 벤치에 앉아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아본다.
그렇게 더위를 피하다가 이 땅도 처음엔 인디언들이 주인이었을 거란 생각에 주도로와 시빅 센터로 향한 길 코너에 있는 인디언 리저널 센터를 가보았다. 하지만 그곳은 다만 가게와 레스토랑이 있는 목조건물일 뿐이었다.
내친 김에 올드 타운 끝에 있는 뮤지엄을 가보기로 했다. 번화가의 길이라야 겨우 1마일 남짓이니 뮤지엄까지 걷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거의 올드 타운을 벗어난 곳에 시니어 센터와 뮤지엄이 보였다. 역시 목조로 지어진 아담한 건물 앞엔 넓은 잔디밭에 더러 사람들이 보였지만 뮤지엄에 들어가니 나 혼자뿐이었다.
입구엔 인디언들이 음식을 만들 때 사용했던 돌들이 전시돼있었다. 더러는 오래전 우리 집에도 있었던 작은 돌절구 같기도 해서 정겨운 마음이 들었다. 무늬를 넣어 볏짚으로 짠 인디언 바구니들도 왜 그런지 고향 생각을 나게 했다. 하지만 조금씩 안으로 들어갈수록 백인 개척자들의 역사만이 이어졌다. 처음 여기 들어와 땅을 일군 사람들의 이름을 따 거리 이름이 지어졌다는 설명과, 그들이 초기에 사용했던 농기구가 전시돼있었다. 이 메마른 땅에서 물을 확보하기 위해 백인들이 싸웠다는 역사는 있었지만, 인디언들이 여기서 어떻게 살다 떠났는지는 자료가 없었다.
이층엔 이 도시 최초의 잡화상과 대장간 모형이 있었고, 당시 여성들이 입었던 옷들도 전시돼있었다. 그 지점에서 커브를 틀자 현대식 유화와 아크릴화가 걸린 벽들이 나타났다. 인디언 유적을 찾으려다 조금 실망한 기분이 돼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BC 4천년 경에 이 땅에 도착한 인디언들이 1875년에 완전히 쫓겨났다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6천년을 이곳에 살던 그들은 오직 생존을 위한 음식과 종교예식을 원했을 뿐이었는데….
자체적으로 살던 그들이 처음엔 스페인 미셔너리의 영향권에 있다가 멕시코의 지배를 받았고, 1848년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자 이곳은 미국 땅이 되었다. 그리고 1875년에는 아예 이 땅에서 쫓겨났다니 동네의 이 뮤지엄은 인디언은 없다는 걸 단호히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뮤지엄을 나오는 내 등 뒤로 조금 쓸쓸한 바람이 불어왔다. 인디언들은 이곳에서 6천년을 살다 떠났고, 백인들은 이 거리를 160년 전에 만들었고, 나는 이 거리에서 겨우 1년을 살았다. 그리고 지금은 또 떠날 준비를 한다. 어쩌면 나는 이곳에서 살아온 짧은 1년의 내 삶 속으로 그들의 긴 역사를 흡입하고 싶은 욕심에 더위 속 올드 타운을 걸어본 것일까. 지금은 햄버거와 맥주와 음악이 난무하는 거리, 돌아서 나오는 내 눈 앞엔 뮤지엄에서 본 인디언 바구니가 어른거렸다. 6천년 이어졌던 그들의 혼을 내 짧은 여정에 새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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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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