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에서 자라며 영어를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처음 접하게 되었다. 요즘엔 한국에서도 유치원 아이들도 영어를 배우고 심지어 태교할 때부터 영어책을 읽어준다고도 하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70년대엔 영어는 일상생활엔 관련이 없는 시대였다.
당시엔 중학교서부터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내 또래여도 영어를 미리 과외를 통해 배우고 중학교에 입학한 아이들도 있었던 거로 기억되지만 나는 중학교 영어 교과서를 통해 처음 알파벳을 보았다. 아무런 준비 없이 영어 과목 첫 수업을 들을 때 선생님이 교과서 문장을 한번 읽고 아이들에게 읽기를 시켰는데 내 차례가 올까 봐 진땀을 흘리며 각 문장 밑에 발음 나는 대로 한국말로 적어놓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게 배우기 시작한 영어로 대학에 들어가 영문학을 부전공하고 졸업 후 회계사시험에 합격해 회계법인에서 국제부에서 일하며 영어를 업무에 쓰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전히 내게 영어는 문서상에서만 익숙할 뿐 일상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아니었다.
99년에 미국에 이주하여 처음 정착하며 전화를 받을 때마다 상대방의 말을 못 알아들을까 가슴을 졸이고, 처음 미국에서 직장을 다니며 다들 농담을 주고받으며 떠들썩하게 웃을 때 나는 펀치 라인을 이해하지 못해 어색한 웃음을 짓곤 했다. 그렇게 영어를 일상어로 쓰는 미국에서 생활한 지 20년이 되었어도 나는 날마다 새로운 단어를 배운다.
나는 요즘 컴퓨터 언어 중 하나인 파이썬 (Python)을 배우기 시작했다. 컴퓨터공학이나 코딩을 배우거나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도 외국어 배우듯 배울 수 있고 인공지능과 머신러닝, 업무 자율화 등 다양하게 쓰일 수 있는 강력한 컴퓨터 언어이다.
외국어를 배울 때 새로운 단어를 외우고 문장의 구조를 이해하고 끊임없이 연습해야하듯 컴퓨터 언어를 배우는 것도 비슷하다. 영어를 배웠기에 한국인으로 나고 자란 내 삶의 지평이 넓혀졌듯이, 파이썬을 배워 앞으로 일상에서 접하게 될 인공지능과 가상현실이라 불리는 또 다른 차원의 세상과 소통하게 되기를 꿈꾸며 나는 이 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파이썬을 배울수록 매료되어 도대체 이 언어는 누가 창조했을까 싶어 찾아보았더니, 1991년에 네덜란드출신 프로그래머인 귀도 반 로섬(Guido van Rossum)이 발표해 현재는 비영리의 파이썬 소프트웨어 재단이 관리한다.
흥미롭게도 이 언어는 마치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시했을 때의 창제원리와 비슷한 핵심철학을 천명한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명료함과 단순함,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접근 가능함 등등. 그 철학 중 “단순함이 복잡함보다 낫고, 복잡함이 난해한 것보다 낫다 (Simple is better than complex; Complex is better than complicated)”는 한참을 머물러 생각게 했다.
한국어로는 둘 다 ‘복잡한’으로 번역되는 단어인지라 나는 그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해 서성였다. 비즈니스 스쿨에서는 Complex한 상황과 complicated한 상황의 차이를 알고 다른 매니지방식을 취하는 것을 가르친다.
인생처럼 주어진 답이 없는 복잡함이 전자인 반면, 난해한 수학 문제처럼 축적된 지식을 체계적으로 적용해 풀 수 있는 복잡함은 후자인 것이다. 이 둘의 차이를 아인슈타인과 그의 비서 월터 마이어의 차이로 설명하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은 천재였지만 수학 천재는 아니었고 수학적 난제들은 그 주변인들, 특히 그의 비서 마이어가 많이 풀었는데 아인슈타인은 complexity thinker였던 반면 마이어는 complicated thinker로 불린다.
그러던 중 부엌 창가에 놓인 내가 좋아하는 시가 눈에 들어왔다. 라인홀트 니버가 쓴 평온을 비는 기도(Serenity Prayer). “주여, 우리에게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complexity는 창조적이면서 자신의 한계를 인식할 줄 아는 겸허함을 요구한다. 그래서 ‘인류를 위한 파이썬 (Python for Humanities)’가 시작되었나 보다.
<
송윤정 맥클린, VA>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