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 지는 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에 그 특유의, 스산하고 쓸쓸한 늦가을의 정취를 말할 때 우리는 곧잘 ‘을씨년스럽다’는 표현을 한다. 원래 을씨년은 1905년, 뱀띠 해의 을사년을 의미한다. 처음에는 을사년스럽다에서 그 소리값이 전이되어 을씨년스럽다가 되었다.
그해에 일본과의 을사늑약으로 사실상 나라를 잃어버렸으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을 것이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라는 장지연의 비분강개가 황성신문에 실렸던 때가 이때이다.
즈음에 대한매일신보는 냉소적인 필치로 볼썽사나운 나라의 꼴을 빗대어 종로통 장바닥에 빌어먹고 사는 두 장애자의 일화를 소개하였다.
눈먼 자와 앉은뱅이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같은 장바닥에서 점을 치고 남의 운명을 귀뜸해주는 일로 먹고사는 눈먼 자와 또 평생 앉은뱅이로 들어앉아 무릎에 망건을 올려놓고 깁거나 짜서 생계를 잇는 두 불구자가 있었다.
그들이 겪은 좌절로는 망국의 슬픔까지는 몰라도 그들에게 다가온 불이익만큼은 적어도 알고 있었던 듯하다.
이유인즉 신문물을 앞세운 일제의 미신타파로 점쟁이는 그의 유일한 호구수단이 묘연해졌고, 앉은뱅이 역시 일제의 단발령으로 더 이상 망건을 쓸 이유가 없어진 백성들이 망건을 사거나 수선할 리 없었다. 그래서 그 둘은 일종의 제휴이며 오늘날 연대와 마찬가지인 ‘더불어 살기’의 공동체를 마련하게 된다.
그게 바로 상상하기에도 애절한, 눈먼 자가 앉은뱅이를 업고 하는 구걸이었다. 그것도 시너지 효과가 있었는지 둘의 결핍은 최대치로 부각되고, 사람의 연민까지 자아내니 그 둘이 먹고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고 신문은 전한다. 당시의 언론은 나라 잃은 슬픔에서만 머무르지 말고 어떡해서든지 악착같이 살아남아 이 통한의 전락을 기록하고, 그 서글픈 ‘잔존의 방식’을, 망국의 지식인이 되어 마지막으로 백성에게 권하는 눈물의 은유였을 것이다.
그보다 2000년 전쯤의 일이다. 무엇이 이리저리 흩어지고 갈피를 못 잡을 때 흔히 지리멸렬하다는 말을 쓰는데, 그 지리멸렬(支離滅裂)은 장자의 지리소(支離疏)라는 인물에서 유래되었다.
지리소는 글자 그대로 사지가 흩어졌다는 뜻으로 등이 굽은 곱사였다. 장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의 턱은 배꼽에 와 닿았고 어깨는 목보다 높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허벅지는 차라리 지리소의 옆구리에 붙었다는 편이 옳았다.
하지만 지리소는 앉아서 하는 바느질과 빨래하는 데는 오히려 여느 사람보다도 나았으며, 곡식을 허공에 날려 키를 까부는데도 능했다. 따라서 그를 데려와 일을 시키는 자가 사방에 끊이지 않아 그가 먹고사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는 춘추와 전국의 난세이었으므로 나라에서 온갖 부역과 징발로 백성들을 들들 볶아댈 때도 장애가 있는 지리소 만큼은 아랑곳없이 저자거리를 팔을 휘적이며 다녔다.
드물게는 나라에서 굶주리는 백성들을 위한 구제가 있을 때 지리소의 장애를 보면 세 종류의 곡식과 장작 열 꾸러미를 얻기에 어렵지 않았다고 장자 내편에 전하고 있다
아마도 장자는 이 일화를 통해 무용지용의 효용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누가 뭐라 해도 궁핍이요 결여이며, 그만큼의 공허이면서 무용함 속에서도 쓸모 없음, 거기에도 어떤 무용의 효용이 있음을 장자는 꿰뚫어 보고 있다.
송충이가 자기 몸에 털을 돋운 이유는 천적인 새가 그를 먹으려 할 때 행여 입안이 껄끄러워 넘기지 못하게 하려는 처절한 진화의 산물이다.
그런데 우리네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칫 좌절과 깨끗한 최후를 생각하리만큼 어려운 시기에도 마치 생계가 끊어진 눈먼 자와 앉은뱅이가 그러했듯 이가 없으면 잇몸이고 세상의 이치와 그 필연성을 바꿀 수 없다면 끊임없는 자기 정진과 그에 맞먹는 적응은 언제나 내 쪽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인 듯하다.
그것이 최선이라서가 아니라 그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 유현한 섭리를 바꿀 수는 없어도 숙명이라는 삶의 필연성을 적어도 우리가 원망 없이 받아들일 수는 있을 것으로 나는 믿고 있다.
모르긴 모르되 자기 앞의 삶은 언제나 자기 설득의 과정을 거치며, 그것은 반드시 나만의 만족도로 측정되는 매우 치열하고도 외로운 길 떠남이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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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혜 부동산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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