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가주한국학원에 관한 동포사회의 관심이 크다. 그러나 이 사태를 둘러싸고 그 보여지는 모습은 실망스럽다. 있어야할 모습은 없고 없어야할 모습만 있다. 사랑은 없고 미움만 가득하다. 칭찬하고 아껴주는 아량은 없고 비방과 삿대질이 판을 친다. 부상자를 일으키고 싸매주는 선함은 없고 되레 상처에 상처를 가하는 비정을 본다. 이것이 우리 동포사회의 민낯일까 하니 부끄럽고 황량하다.
꼭 있어야할 것 중 없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남가주한국학원의 건물을 둘러싼 논쟁은 횡횡한데 그 건물을 채울 알맹이 즉 한인 후손의 뿌리교육에 관한 논의는 들리지 않는다. 뿌리교육을 말하자면 그 중심에 남가주한국학원이 있다. 미주에서 한인 뿌리교육의 가장 오래된 역사와 알찬 학사체제를 갖춘 대표적 한국학교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말과 문화를 가르쳐서 우리 자녀들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추게 하고, 가족 간의 한국말 대화를 가능하게 하며, 동포사회와 모국에 유용한 인재로 키우고, 미국의 다문화사회에 기여하게 한다는 것이 남가주한국학원의 ‘교육선언문’에 명시된 내용이다. 그리고 이 선언문은 “남가주한국학교는 자녀들의 한국말과 한국 문화를 익히는 배움의 전당이자 우리 후예들 사이의 즐거운 사귐의 동산이 됨으로써 훗날 그들의 기억 속에 소중히 간직될 마음의 고향이 되고자 한다”는 비전을 제시한다.
이 교육사업을 남가주한국학원은 1972년부터 시행해왔고, 지금은 남가주 일대에서 11개의 지역학교를 열어서 120여명의 선생들이 약 1,700명을 가르치고 있다. 이 학교들의 규모 있는 운영 실상은 그 교육현장에 직접 가보면 알게 된다. 필자가 지난 6월 초 남가주 풀러튼 한국학교 졸업식을 참관한 경험이 그랬다. 6학년 과정을 마친 17명과 9학년을 마친 12명의 졸업생들이 자랑스러웠다. 최석호 의원이 주의회의 상장을 졸업생들에게 수여하는 장면도 흐뭇했고, 세 명의 졸업생 대표들의 인사말을 들을 때에는 한국말 실력이 미국 태생임을 의심할 만큼 발음과 말투가 훌륭했다. 큰 식장을 가득 채운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기뻐하고 축하는 모습에서, 그 열기에서 이 한국학교의 밝은 미래와 뿌리교육의 큰 성과를 실감할 수 있었다.
5월에 있었던 한국학원의 동요합창경연대회는 더욱 그랬다. 11개 지역학교가 모두 참가해 400명의 합창단원과 700여명의 학부모, 청중을 합쳐 1,100명 이상이 모인 대형 행사였다. 충현교회의 큰 예배당을 꽉 메운 무리가 한국동요를 부르고 박수하고 환호하는 노래 잔치였다.
우리 동요를 노래하는 학생들이 먼 훗날 이 합창대회를 어떻게 기억할까? 어렸을 때 무지개를 보고 마음 설렜던 일이 늙어서도 내 가슴을 뛰게 한다고 한 영국시인은 노래했다. 후일 어른으로서 오늘의 이 아름다운 동요행사가 기쁜 추억거리로 되살아나 저들의 가슴을 가득히 채우리라. 그리고 이 한국학교를 ‘마음의 고향’으로 그리워할 것이라는 생각에 잠시 마음이 숙연해졌다. 바로 이런 것이 우리 후세를 위한 백년대계의 뿌리교육이다.
남가주한국학원은 우리가 모두 아껴야 할 자랑스러운 교육기관이다. 윌셔초등학교는 토요일만으로는 미흡한 뿌리교육을 정규과목으로 매일 가르치기 위해 한국학원이 시도한 큰 발돋움이었다. 그 시도가 실패한 것이다. 시작될 때는 격려가 별로 없다가 그것이 무위로 끝나자 비난이 무성하다. 도약하려다 떨어져 상처 입은 한국학원에게 굿 사마리탄이 돼줄 수 없을까?
지금은 한국학원이 2019-20년도 신입생을 모집하고 1년간의 학사계획을 세울 때다. 이사회를 정점으로 학원 전체가 올인하여 새 학년을 준비해야 할 텐데 학생모집 광고 낼 돈이나 있는지 걱정이고, 월300달러 미만의 박봉을 받고 매 주말을 한국어교육에 바치는 교사들의 보수도 염려해야할 처지일 것이다. 이 중요한 시기에 동포사회가 한국학원의 교육을 생각하고 우리 후손들의 소중한 뿌리교육에 힘을 보태주자. 더 높은 발돋움을 이루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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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민 남가주한국학원 전 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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