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atever you ask for in prayer,
believe that you have received it,
and it will be yours.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이미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
지난 며칠, 왼쪽 눈이 부어 오르며 자고 나면
거의 눈이 떠지지 않는 난감한 상황. 어린 시절,
몹시 춥던 겨울 대낮, 동네에서 자치기 하다가
나무토막과 정통으로 조우한 트라우마[trauma]를
지닌 왼쪽 눈. 하긴 지금까지 버텨준 것 만도
감사한 일!
심한 통증으로 견디기 어려우면 곧장 병원을
찾겠는데, 왠만한 건 그저 버티는 편. 이번에도
내심 지연치유를 믿고 지내던 중, 나름 믿어보는
심리요법 하나: “치유를 보라!” Behold healing.
현재의 고난이 정상(正常)으로 회복된 상태를
진하고 생생하게 그리고 간절히 그리는 것.
그렇게 반나절 마음속 영화를 돌립니다. 오로지
일심(一心)으로 몰입하며 ‘그리기 화두’를 마치고,
기왕 눈감은 김에 오디오성경을 듣습니다. 박진감
넘치는 마가복음. 영화 시나리오처럼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마가[Mark]의 얘기를 듣다가, 분명히
오늘 듣기로 이미 예정되었던 11장에 이릅니다.
=============================
Whatever you ask for in prayer,
believe that you have received it,
and it will be yours.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이미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
거두절미하고 용건만 간단히 전하는 마가복음.
그런데, 11장에 이르러 별로 신통찮은 얘기 하나를
건넵니다. 배가 고파 시장기를 느낀 사람의 아들
예수님.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때아닌 열매를 기대했던
예수님, 열매 없는 나무에게 괜시리 저주를?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허걱! 멀쩡한 나무, 제 시절 잘 보내고 있는 멀쩡한
나무에게 불임(不妊) 선언? 그리고 나서 성전에
들어가 요란한 소동을 벌이시고 다음 날 아침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하니 예수님 하신
말씀이 바로 오늘의 지문(地文).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11:22-24]
=============================
Whatever you ask for in prayer,
believe that you have received it,
and it will be yours.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이미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
부실한 눈이 치유되길 바라며 일심으로 몰입하던
요즘 세상 심리요법. 항간에 회자되는 ‘끌어당김의
법칙’ 같은 요즘 심리학의 근원이 이미 오래 전
예수님의 간단한 가르침에서 왔다니! 바라는 게
“이미” 이루어졌다고 믿고 “이미” 받은 줄로
굳게 믿는다면 그렇게 되리라! 언젠가 조용기
목사님의 방송 인터뷰 문답이 생각납니다. 믿음이
뭐냐고 묻자 지긋이 그저 되묻습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어떻게 됩니까?” 그야 물론 계란이
깨어지지요. 그러자 대뜸 하시는 말씀: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바위가 깨어지는 걸 믿는 것, 그게
믿음입니다.”
‘belief’가 자기 생각으로 미루어 믿는 거라면,
‘faith’는 믿을만한 증거가 전혀 없는데도 어쨌든
믿는 것. 낸들 어쩔 수 없이 그저 믿어지는 것,
그게 바로 ‘faith’의 속내. 암, 그렇고말고! 역시,
아는 사람은 다 안다니까요. 덕분에, 며칠 새
눈도 다 나았고요.
Amen.
<
최정화 커뮤니케이션 박사/영어서원 백운재 대표 >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