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교인으로서 정치문제에는 간여하고 싶지 않다. 특히 오늘날처럼 국가 전체적인 문제가 당파적 지역적 이념적인 문제처럼 되어 있는 때에 말이다. 어떠한 의견을 내놓더라도 그것은 어느 한 편을 드는 것 같이 보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정치인들이 외교문제를 다루는 현상을 볼 때에 130년 전 구한말 때의 허망하고 가련한 역사가 반복되는 것 같아서 불안한 마음으로 붓을 들었다.
130년 뒤로 되돌아가 보자. 그 때 우리의 상국 또는 보호국이라 자처하던 청국은 쇠퇴일로에 들어 있었고 일본은 개화 40년 만에 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려는 야심만만한 신흥제국이 되어 있었다. 미국은 급격한 농공업의 성장과 막강한 재력에도 불구하고 국제무대에서 아직 덩치 큰 아이 취급을 받고 있던 때였다. 제정 러시아는 유럽에서 극동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에도 불구하고 부동항이 없으므로 부동항을 찾아 남하하려는 때였다. 그들은 모스크바와 중국의 묵덴과 한국의 목포를 연결하는 3M 정책을 쓰고 있었으며 일본을 포함한 온 세계열강들이 러시아 제국의 남하정책을 막으려고 협력하던 때였다. 이러한 때에 고종황제가 하필이면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하는 소위 아관파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1895년 4월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여 한국에 대한 패권을 확보한 일본은 그해 10월 8일 명성황후를 살해하였다. 이에 고종황제는 자기도 시해를 당할까 두려워하여 다음 달 즉 11월 28일에 일본측 몰래 궁궐을 빠져나가려 하다가 실패하였다. 이를 춘생문 사건이라 한다. 미국인 언더우드 등 몇 선교사들과 공사관 서기관 알렌 그리고 러시아 공사 베베르 등이 직간접적으로 간여했던 이 사건은 남만리와 이규홍 등 중대장 인솔 하에 800명의 군인을 동원하여 궁궐에 들어가 고종을 모셔 나오려 하였으나 친위대장 이진호의 배신으로 고종황제를 궁궐에서 빼내오는 데에 실패한 사건이다. 석달 뒤 즉 1896년 2월11일에 러시아공사관 베베르의 도움으로 고종은 궁궐을 빠져나와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하는 데 성공하여 1897년 2월 20일까지 머물렀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역사에서 어떤 교훈을 얻으려면 가정을 대입해보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만약 그 때에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하지 않고 미국 공관으로 피신하여 친미세력이 집결하게 되었더라면 1905년 가쓰라 태프트 밀약 같은 일이 생길 수 있었을까. 춘생문 사건에 미국인 언더우드, 에비슨, 허버트, 다이 등 선교사들과 미국 공사 H. N. 알렌 등이 직접 간접적으로 관여하였던 것으로 보아서 이러한 가정은 타당한 것이라 생각된다.
다시 오늘날로 돌아와 보자. 오늘날 우리의 친구는 누구인가.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은 우리의 동맹국이다. 그러나 우리 두 나라 사이에 이전 같은 확고한 신뢰로 단결이 되어 있는가. 가까운 동맹국 사이에도 중요문제에 대하여 의견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의견 차이를 다룸에 있어서 신뢰관계를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와 미국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작전권문제를 비롯하여 북핵문제의 일괄 대 단계적 해결 문제, 통상문제 등을 다룸에 있어서 국제적으로 엇박자를 놓거나 국내 여론을 반미적으로 유도하거나 하는 증세가 보이는 것은 참으로 현명치 못한 일이다.
자주국방 평화통일 우리끼리! 얼마나 듣기 좋은 말들인가.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듣기 좋은 소리만 할 때가 아닌 것 같다. 과거를 돌이켜 볼 때 강경한 대처도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자유진영 국가 중에 자주국방을 하는 나라가 있는가. 군사적 경제적 패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조차도 세계 여러 나라와 다중적 협력관계를 맺어놓고 있다. 우리 중 평화통일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까? 진심이든 선전목적이든 이따금씩 군사적 위협을 가하며 크고 작은 도발을 하는 상대에 대하여 뚜렷한 선을 그어놓고 대하여야 하지 않을까.
현 정부 지지자들 가운데는 마치 미국이 평화통일에 지장을 주고 있는 것 같이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논쟁을 하다 보면 결국은 미국은 나쁜 놈이요, 미국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 미국은 두말할 것 없이 자국의 이익을 추구한다. 그러나 미국이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는가. 미국의 이익과 한국의 이익이 상충적인가. 아니다. 두 나라의 국익은 놀라울 만큼 일치한다. 안보와 통상문제에 있어서는 오히려 한국 측에 유리하게 되어 있다.
일본은 자존심이 없어서 미군 주둔을 허락하고 있으며 핵 항공모함의 모항을 제공하고 있는가. 우방 간에 자존심 싸움하지 말자. 지혜롭게 살자. 대국이면서도 속알머리 없이 거들먹거리는 일본을 대항할만한 힘이 우리에게 있는가? 국제문제가 꼭 정의롭게만 해결된다고 생각하는가. 힘이 없으면 더욱 외교로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자존심 대결이나 적대적인 큰 소리는 삼가야 한다. 다시 묻는다. 과연 우리에게 친구가 있는가? 우리 정부를 대하는 미국의 태도가 전과 같아 보이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연락처 (240)350-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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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모 건축가,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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