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시 수도전력국은 이스턴 시에라의 적설량에 관심이 크다. LA의 식수원이기 때문이다. 눈이 막 녹기 시작하는 지난 4월에 마지막으로 측정된 이스턴 시에라의 올해 스노우 팩 두께는 평년의 171%를 기록했다. 보통 LA시 전역에서 소비되는 물의 50%가 여기서 공급되지만, 올해는 LA에서 수도꼭지를 틀면 쏟아지는 물의 70%는 이스턴 시에라 산이라고 보면 된다.
지난겨울 이스턴 시에라에 내렸던 폭설이 풍성하게 한 것은 수자원뿐만이 아니다. 지난 주말 이틀 일정으로 잠시 들어가 본 이스턴 시에라의 들꽃은 그 어느 해보다 풍성했고, 모기떼는 더 극성이었다. 장기 산행을 하고 나오는 갈색 피부의 젊은이들은 큰 배낭에 얼음도끼를 꽂고 있었다. 로프를 짊어진 이도 있었다. 눈산 등반과 급류를 건널 때 썼던 장비로 보였다.
산을 좋아하는 한인들은 지금 너도 나도 이스턴 시에라로 향하고 있다. 세계적인 등산로인 존 뮤어 트레일(JMT)이 있기 때문이다. 요세미티 밸리와 미 본토 최고봉인 마운트 위트니를 잇는 211마일의 JMT는 겨울에는 눈 때문에 접근이 어렵다. 여름이 돼야 들어갈 수 있는데, 올 여름 JMT 트래킹에는 지난겨울 폭설이 변수가 되고 있었다.
영화 ‘와일드’는 삶의 나락에 떨어진 한 여성이 멕시코와 캐나다 국경을 잇는 2,653마일의 퍼시픽 코스트 트레일(PCT)을 걸으면서 회복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연 배우 리즈 위더스푼은 이 영화로 2015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 스토리의 실제 주인공인 셔릴 스트레이드는 PCT 를 종주하면서 실은 PCT의 보석 같은 구간인 JMT는 건너 뛰었다. 그 해 여름 JMT는 눈 때문에 접근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서보경 씨가 이끄는 송화 산악회원 9명은 지난 2일부터 4박5일 일정으로 JMT를 다녀왔다. JMT의 최북단 섹션인 맘모스에서 요세미티 밸리 구간이었다.
올해 팔순이 되는 그는 매년 마지막을 LA에서 가장 높은 마운트 발디 정상에서 보낸 후 새해맞이를 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분. 젊은 후배들이 따르기 힘든 강인한 체력을 가진 베테랑 산악인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JMT 닷새 일정 중 사흘은 하루에 5~6마일밖에 운행할 수 없었다고 한다. 험한 눈길 때문이었다. 앤셀 아담스의 흑백사진으로 아름다운 풍광이 잘 알려진 호수인 고도 1만 피트 가까운 천섬(Thousand Island)은 아직 얼음에 덮여 있었다. 등산로가 사라진 곳은 많았다. GPS는 필수였고, 쇠발굽 달린 간이 크램폰 정도의 장비로는 부족한 아찔한 구간도 건너야 했다.
지난 2005년 JMT 전 구간을 16박17일 일정으로 종주한 후 최근 몇 년을 빼면 거의 매년 구간별로 JMT 백패킹을 하고 있는 서보경 씨는 이번에는 투왈로미 메도우에서 요세미티 밸리로 내려가는 마지막 20여 마일 구간은 포기했다고 한다. 원래 세웠던 산행계획을 포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하는데 순전히 눈 때문이었다.
JMT는 어느 정도 훈련을 거친 하이커들이 찾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JMT가 점차 널리 알려지고, JMT 트래킹이 많은 하이커들의 버킷 리스트에 오르면서 꼭 그렇지 만도 않은 것이 현실이다. 특히 체력은 어느 정도 뒷받침 되지만 산행 경험은 많지 않은 이들이 그룹을 지어 찾는 경우도 적지 않다.
JMT 트레킹 중에 한 대원이 발목 부상을 당했던 한 한인 산악회의 경우 레인저 스테이션에 신고하는 데만 한 나절이 걸렸다고 한다. JMT는 조난 구조가 쉽지 않은 깊은 산중의 등산로이다. 특히 북쪽보다 고도가 더 높고 산세도 험한 남쪽 구간은 눈뿐 아니라, 수량이 불어난 급류를 건너는 것도 문제다. 더 단단한 준비와 경험 많은 리더의 철저한 통제가 필요한 부분이다. 얼마 전 LA 근교에서 잇달아 일어난 한인들의 조난 사태는 뒷이야기를 들어보면 어처구니없는 무질서 산행의 결과인 것으로 여겨져 더욱 그렇다.
지난 주말 이스턴 시에라 산행 때 만난 레인저에게 1만2,500 피트 패스를 넘는데 눈 도끼가 필요할까 하고 물었더니 가져 갈 것을 권했다. 시간이 갈수록 눈은 더 녹겠지만 트레킹 전에 반드시 산행구간의 최신 정보를 업데이트 할 것도 당부했다. 걷지 않는 사람은 갈 수 없는 곳, 절경의 JMT 트래킹을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시즌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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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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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크고 작은 도전이 많겠지만,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신의 체력을 쏟아붓는 트래킹이나 마운틴 클라이밍은 특히 살아있음을 선명하게 확인하는 도전같아서 멋집니다. 먼 듯 하지만 어쩌면 가까운 시에라 뿐 아니라 우리 주변의 자연이 모두 건강하게 오래 유지되어, 많은 사람들의 도전을 받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