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왈 다일 마-레 꼬-메 벨로, 스삐-라 딴토 센띠-멘-토..”
중학 2학년 음악시간에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이탈리아 원어로 배웠다. 멀리 떠난 연인에게 내가 기다리는 소렌토로 돌아오라고 호소하는 사랑의 노래라고 선생님은 설명하셨다. 그리고 푸른 바다 언덕 위, 하얀 집들이 서있는 멋진 항구, 소렌토의 사진을 펼쳐보이셨다. 우리는 꿈 꾸듯 노래를 외웠다.
피난지 부산, 대청동언덕에서 바라보면 영도가 보였다. 민둥산 중턱까지 판자집들이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 섬을 보며 연가를 불렀다. 꿈의 소렌토로 떠나가고 싶었다.
영도는 절영도(絶影島)의 준말이다. 고려시대부터 말의 명산지로 이 곳에서 자란 말은 그림자도 끊길 만큼 빠르다는 전설이 섬 이름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목가적인 풍경은 자취도 없고, 피난지의 궁핍과 절망의 잿빛 해무(海霧)가 무겁게 드리웠었다.
나는 영도 뒤로 가면 툭 트인 바다와 소렌토로 가는 뱃길이 보이리라 생각했다. 친구와 완행 버스를 타고 영도 다리를 건넜다. 돌짝밭을 고무신을 신고 걷고 걸었다. 섬의 끝, 태종대에 닿았을 때는 심한 허기를 느꼈다. 배를 움켜쥐고 목청껏 돌아오라고 외쳤다. “또르-나 아 슈리엔-또 파메 깜 빠! (Torna a Suriento, fame campa...)”. 그러나 떠나고 싶은 절규였다.
나는 결국 떠났다. 40여년을 이국 땅 미국에서 살다가 영도다리 앞에 섰다.물론 옛 섬이 아니었다. 온갖 모양의 집들과 고층아파트들이 무질서하게 뒤엉킨 도심이 되었다. 낯선 듯, 낯익은 혼돈의 그림자 속에서 잠시 주춤했지만 편안했다. 갈증도 사라졌다. 그제서야 왜 이곳이 내가 돌아와야 하는 소렌토인가를 비로소 알았다.
중학생 때, 동생이 태어난 날 저녁, 그의 탯줄 주머니를 돌에 묶어 영도다리밑에 띄우던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탯줄은 잠시 물결 따라 흔들리다가 가라앉았다. 고향은 가족의 태를 묻은 곳이었다. 젊은 날, 태를 끊은 장성한 몸은 떠났지만 탯줄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켜 결국 우리를 돌아오게 하였다. 고향이 내 마음의 소렌토였다.
살아가면서 고향같은 소렌토가 내 마음 속에 여럿 있음을 깨달았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또 한 곳이 ‘첫사랑’의 자리였다.
미국 와서 오래 사귄 아내의 친구 가족이 있었다. 비슷한 또래에 대학 동창이어서 각별히 지냈다. 그런데 남편은 머리가 우수함에도 성격적으로 미국사회에 적응하지 못헸다. 부인이 생계를 꾸리면서 남편은 자꾸 소외되어갔다. 가정불화가 잦아졌다.
그 때도 우리가 만나면 가라오케로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가끔 불렀다. “내게 준 그 귀한 언약/어이하여 잊을까// 나는 홀로 사모하여/ 잊지못할 이 곳에서 기다리고 있노라..” 관계가 힘들 때, 부부가 돌아가야 할 소렌토는 첫사랑의 자리, 첫 만남의 진원지임을 함께 수긍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편은 어느 날, 아내를 때려 이웃의 신고로 접근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세월 가면서 부인의 마음이 서서히 무너져갔다. 사리가 분명하던 여인이 말과 기억력을 상실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젠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남편에 대한 극심한 죄의식때문인지도 몰랐다. 의사는 갓 60넘은 부인에게 치매 판정을 내리고 운전면허증을 걷어갔다. 끝내 첫사랑의 소렌토로 돌아가지 못했다.
나이 들면서 우리가 돌아가야 할 또 하나의 소렌토는 ‘어른’의 자리란 생각이 든다. 어른은 노인과 다르다. 노인은 건강할 수록 남을 힘들게 한다. 그러나 어른은 병석에 누워 있어도 큰 그늘을 만든다. 노인의 손은 노욕으로 움켜진 손이고, 어른의 손은 넉넉히 펴진 손이다.
지난 늦봄에 아내와 난생처음 소렌토를 찾았다. 옛날 음악 선생님이 보여주셨던 사진처럼, 푸른 바다 절벽 위에 하얀 집들과 풍광이 멋진 꿈의 항구가 펼쳐졌다. 광장에선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노래가 감미롭게 흘렀다.
중2 때부터 그리던 곳을 초로의 나이가 되어 비로소 온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나는 민둥산 영도를 떠올렸다. 태종대 바위 끝에서 목청껏 갈망했던 소렌토로 왔는데 옛 영도가 그리웠다.
영도와 소렌토를 떠도는 가난한 영혼, 노인과 어른 사이를 방황하는 육신, 내가 마지막 돌아가야 할 소렌토는 어디일까? 영원한 안식의 햇빛 쏟아지는 저편 하늘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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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봉 수필가 / Enviro Engineering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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