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약 촛불을 밝히지 않는다면/ 당신이 만약 촛불을 밝히지 않는다면/ 우리가 만약 촛불을 밝히지 않는다면/ 이 어둠을 어떻게 밝힐 수 있는가?
20세기 터키가 낳은 위대한 낭만주의 시인 나짐 히크메크의 시다.
요즘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에 살면서 미국을 비난하려면 본국으로 돌아가라!” 는 이민자들에 대한 비하 발언으로 들끓고 있다. 나도 무질서한 미국의 이민정책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의견은 가지고 있으나 나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주장하기엔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는 말을 들을까봐 왠지 조심스럽다.
미국사회는 100%가 이민자들로 구성된 나라다. 어느 나라에서 언제, 이민을 왔느냐 하는 것이 서로 다를 뿐이다. 나는 45년 전 젊은 나이에 맨손으로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그동안 경제적, 사회적으로 그런대로 기반을 잡은 이민 기득권층에 속한다. 그 점을 늘 고맙게 생각하며 남은 생애를 미국사회를 위해서 뭔가를 봉사하고 싶다는 결심을 하고 조기 은퇴를 했었다.
나는 나에게 그런 기회를 준 미국사회와 미 대륙의 자연을 누구보다 더 사랑한다. 그러면서도 “너는 굴러온 돌이야” 하는 주위 백인들의 따가운 시선을 아직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들에게 비친 나의 모습은 영원한 동양인 이민자였다. 나는 가끔 그들로부터 “어디서 왔느냐?” 는 질문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너의 조상은 어디서 온 이민자냐?” 고 되묻곤 한다.
나의 질문을 받은 그들은 “그런 질문은 평생 처음 받아본다” 며 당황해 하면서 못마땅한 목소리로 자신들의 혈통역사를 털어놓는다. 일대, 이대, 혹은 삼대만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미국인들은 이민자들이거나 이민자들의 후예들이다. 예외는 있을 수 없다.
“체감온도가 화씨 110도가 넘으니 노역자들은 조심하라” 는 TV 뉴스 경고를 무시하고 저번 주말에도 공사현장을 찾았다. 눈을 씻고 봐도 백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중미에서 온 이민자들이 셔츠를 벗은 알몸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건축공정을 맞추기 위해서 열심히 손발들을 움직이고 있었다.
미안하고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들에게 물었다. “미국사회가 당신들이 살던 나라보다 더 좋으세요?”. 내가 이민자들을 만날 때마다 습관적으로 물어보는 질문이다. 그들은 겸연쩍은 얼굴로 머뭇거리다가 “글쎄요. 경제적으로는 잘 먹고 잘 살지만 조국생활에 비해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미국인들은 일과 돈밖에 모르는 것 같아서 고달픕니다.”라고 말한다. 늘 들어온 대답이었다.
일요일 아침, 퀘이커 모임을 마치고 스타벅스 커피샵에서 한인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온 한 지인을 만나 나의 체험과 느낌을 아무런 여과도 없이 그대로 털어놓았다. 그는 예수가 보여준 사랑의 길을 걷겠다며 매일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를 하고 있는 자타가 공인하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또 젊은 나이에 일찍 이민을 와서 경제적으로도 상류층 생활을 누리고 있는 아메리칸 드림의 성공적 수혜자다. 그의 논리는 이러했다.
“세상이 그런 거 아닙니까? 그래도 이 세상에 미국만한 나라가 어디 있겠습니까. 가난한 외국인들에게 이민을 허용하고, 아메리칸 인디언 후손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살 곳을 마련해 주고, 흑인 노예 후손들에게 경제적 사회적 특혜로 보상해 주는 나라가. 그나마 백인 기독교인들이어서 그렇겠지요.”
그의 주장이 그가 평생 교회에서 배워온 교리에서 비롯된 아주 당연한 논리일지는 모르겠다.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맥락의. 그러나 왠지 무섭고 섬뜩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미국은 종교와 사상, 그리고 언론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는 자유의 나라다. 누구나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러나 개인의 행복은 어떠한 법이나 제도로도 보장될 수 없다. 그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는 보장될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빵으로만 행복할 수 없다” 고 2천 년 전 이스라엘 사막에서 외쳤던 예수의 말은 미국대륙 어느 곳에서 잠자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장엄한 교회 건물 탑의 장식구로만 남아있는 것인가? 또, 예수가 말했던, 길에서 강도를 만나 피를 흘리고 있던 한 여행객을 구해주었던 선한 사마리아인이 자신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인가. 폭염 속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이민 노동자들을 생각하며 나짐 히크메크의 촛불이 다시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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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평일 클립턴,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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