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주장이 상반되는 재판에서 판사의 역할은 공정하게 재판을 운영하는 것과 정확하게 법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판사의 사적인 감정이나 생각은 판결에 이르는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 한 번 내려진 판결은 다른 판사들에게나 이 후의 비슷한 재판에서도 선례로 남아 중요한 지침이 되기도 한다. 물론, 잘못 내려진 판결은 상급 법원에서 뒤집히기도 한다.
지난 달 버지니아 주 대법원이 하급심 판결을 뒤집으면서 담당 판사를 심하게 견책한 케이스가 있었다. 버지니아 주 패트릭 카운티의 순회법원에서 상소된 케이스였다. 패트릭 카운티는 버지니아 주와 노스캐롤라이나 주가 접경한 카운티들 중 중간 쯤에 위치하고 있다. 인구는 2만 명이 안 되는 작은 곳이다. 그런데 그 곳의 한 공립학교 교장이 교육감을 상대로 명예 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그 교장은 몇 년 전에 교육감이 실시한 업무수행 평가가 좋지 않아 먼저 교장직을 내려 놓게 되었다가 후에 교육위원회의 결정에 의해 평교사로 강등까지 되었다. 나중에 교장의 업무수행 평가 내용이 언론에 누출 되어 일반에게 알려지게 되었는데, 해당 교장은 평가 내용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에서 원고인 교장의 증거 제시가 모두 끝난 후 교육감은 판사에게 소송을 기각해달라고 했다. 업무수행 평가 내용은 교육감의 개인 의견에 불과하기 때문에 명예 훼손 대상이 아니라는 게 기각 신청의 핵심 이유였다. 그러나 판사는 기각 신청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 교육감은 재판을 계속 해야 했고 자신의 증거 제시를 모두 마치고 난 후 다시 같은 이유로 소송 기각 신청을 제기했다. 판사는 이 신청 역시 받아 들이지 않았다.
결국 재판은 배심원의 평결로 이어졌고, 배심원들은 원고 측의 손을 들어주어 교육감이 50만불을 배상하라고 평결했다. 패트릭 카운티에서 50만불의 배심원 평결 액수는 보기 힘든 큰 액수라고 한다. 이에 교육감은 배심원 평결을 무효화하고 소송을 기각시켜 달라고 다시 한번 판사에게 신청했다. 그러나 담당 판사는 또 다시 이 신청을 거부했다.
교육감은 재판 결과에 대해 상급 법원에 상고했고 결국 대법원이 순회법원의 재판 기록을 모두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그 재판 기록에는 물론 재판 담당 판사의 판결문이 포함되었다. 그런데 그 판결문을 읽어 보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여러 군데 보인다. 담당 판사는 재판 진행 중 원고의 소송이 법적으로 소송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원고의 주장은 법적으로 명예 훼손이 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사는 피고의 소송 기각 신청을 세번이나 받아 들이지 않았다. 판결문에는 아래의 내용들이 포함 되어 있었다.
원고가 명예 훼손이 된다고 지적한 업무수행 평가 내용은 평가자인 교육감의 의견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의 의견은 명예 훼손 소송 이유가 될 수 없기에 소송이 기각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이 재판은 커뮤니티에 중요한 케이스이다. 모두가 재판의 귀추에 주목하고 있다. 그렇기에 재판을 끝까지 진행시켜 배심원이 어떻게 평결하는 것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재판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기록으로 남길 수 있고 상급 법원이 전체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재판의 결과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리고 상급 법원이 재판 결과를 뒤집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내가 피고의 주장을 받아들였다면 교육청은 아마 앞으로도 일 처리를 비슷하게 할 텐데 커뮤니티가 이번 사건에 대해 보인 반응을 고려한다면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배심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판사는 판결문에 재판 과정에서 본연의 임무에 충실 하지 않고 재판이 지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했다는 고백을 기술 했다. 하지만 커뮤니티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판사의 몫이 아니다. 그 부분은 선출직 공직자나 선거에서 유권자가 해야 하는 일이다. 이 판사가 대법원으로부터 잘못된 욕심으로 판사의 역할과 책임 수행에 질책을 받은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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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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