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앞엔 유난히 바람이 심하다. 기온이 올라가는 날에도 집에만 있으면 전혀 더운 줄 모를 만큼 바람이 분다. 창가에 앉으면 휘이잉- 조금은 슬픈 느낌으로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지척의 앞산과 집 현관 사이에 부는 바람에 나는 문득 언덕에서 바람을 맞는 ‘워더링 하이츠’를 떠올린다. 영국의 고전소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원제이다.
집 앞의 바람은 골짜기에서 휘몰아치는 것인데도 나는 엉뚱하게 언덕을 생각한다. 황량한 언덕에서 바람을 맞는 집, 워더링 하이츠에서 펼쳐졌던 젊은이들의 애증을 되새겨본다. 포털사이트 지식백과에 그 작품을 소개한 김연수 소설가는 ‘폭풍의 언덕‘은 십 대 시절에 반드시 읽어야 하는 열병 소설이라고 말한다. 돌아보니 나도 여고 시절 그 소설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처음 접했던 건 초등학교 때였다. 당시 어린이 잡지에 연재되던 만화로 읽었던 것이 머릿속에 깊이 박혀, 지금도 만화 캐릭터가 본래 주인공들인 듯 떠오른다. 나중에 원작을 읽고 영화로 만들어진 걸 봤어도 만화처럼 강렬하지 않았음은, 어린 나이에 그 내용을 처음 접했던 때문인 것 같다.
창밖의 바람 소리에 소설 속 그들을 떠올려 본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 에드가와 힌들리, 그리고 이사벨, 그들의 애증을 되짚어 본다. 히스클리프의 집요함은 사랑이었을까, 집착이었을까. 결국은 모두가 불행하게 세상을 떠나고 마는 그들 사이엔 사랑이란 명제가 거미줄처럼 엉켜 있다. 자기 통제가 되지 않던 십 대 시절의 사랑이 결국 비극으로 남아 아직도 바람소리로 내 귀에 들려오는 것만 같다.
돌아보면 나의 십 대에도 그런 집요함이 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그 뒤의 삶들은 십 대에서 파생된 결과일 뿐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때 밤새워 시를 썼던 탓에 지금 외국 땅에 앉아서도 글을 놓지 못하고, 그때 이루지 못했던 것들 때문에 그 뒤의 일들이 원치 않게 이어져왔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그때 받은 사랑으로 지금까지 삶을 이어오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바람이 몰아치는 창가에 앉아 히스클리프와 캐더린의 사랑을 생각하다가 문득 바람에 묻어온 고향집의 기억을 되새겨본다. 남향집 마당 너머 멀리엔 산세가 가파른 산이 보였다. 외할머니는 어린 나를 업고 툇마루를 오가며 산을 바라보고 그날 날씨를 점치셨다. 산에 구름이 걸렸으니 곧 비가 내리겠다거나, 산이 훤히 보이니 날씨가 좋을 거라고 혼자서 중얼거리셨다. 고향집에서 보이던 산과 지금 내 집 앞의 산이 확연히 다른데도 나는 같은 곳에 있는 듯한 상상을 한다.
창가에 부는 바람은 내 기억 속 고향집을 소설의 ‘워더링 하이츠’처럼 언덕으로 밀어 올린다. 세월 속에 워더링 하이츠의 사람들이 사라졌듯 내 고향집에도 세대가 바뀌고 이제는 추억만 남았다는 걸 생각한다. 골짜기에 부는 바람 소리에 떠오르는 건 사실 추억과 회한이다. 어쩌면 ‘폭풍의 언덕’이란 소설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 내용을 만화로 처음 접했던 어린 시절의 나를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캐더린과 히스클리프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결국은 바람 소리 속에 나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박재삼 시인의 ‘천년의 바람’이란 시는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로 시작된다. 갓 출간된 그 시집을 처음 샀던 것이 대학 1학년 때였으니 참 오래전에 읽은 시이다. 천년 전에 불던 바람이 지금 내 앞에 불어온 것이라면 바람은 얼마나 많은 기억들을 안고 있겠는가. 내 집 앞의 바람은 워더링 하이츠가 있다고 가정되는 영국 요크셔의 언덕을 지나고,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어 내 고향집 앞마당에 불다가 지금 내가 앉은 이국의 골짜기에서 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바람 소리는 온갖 기억을 일깨우고 뒤돌아보게 하는 것일까. 사랑 받았던 기억과 때로 삶의 폭풍이 몰아쳐왔을 때도 그 기억의 힘으로 버틸 수 있었음을 바람은 가만히 속삭여 준다.
문을 열고 나가 바람 가운데 서 본다. 바람은 막무가내로 옷자락을 날리고 머리카락을 헝클어놓지만 나를 넘어뜨리진 못한다. 생각하니 내 삶에도 결코 넘어지지 않을 만큼의 바람만 불어왔다는 게 감사하기도 하다. 지금 내 기운이 묻어 고향집 안마당으로 다시 불어갈지도 모르는 바람 속을 걸어본다. 그때 그 아이가 이토록 멀리에서 이렇게 살고 있다고 전해주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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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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