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남북 7.4 공동성명은 당시 남북 지도자 박정희와 김일성이 공식 서명하여 발표되었다. 7.4 공동성명의 내용은 가히 완전무결한, 분단이래 우리 민족 통일 최고의 규범으로 꼽고 싶다. 비록 박정희, 김일성 두 사람이 독재자들이었을지언정 7.4 공동성명의 내용만큼은 그야말로 뼈저리게 분단의 아픔을 겪어오고 있는 우리에게 최고의 모범교서라고 주장하고 싶다. 불경이나 성경을 도둑들이 들고 다닌다고 해서 성경, 불경의 복음을 더럽다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며칠 후 그 역사적인 7.4 공동성명 발표 47주년을 맞이하면서 동시에 종잡을 수 없는 한반도 정세에 갬과 흐림을 짚어보며 다 같이 7.4 공동성명의 개요를 되새겨 보자.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이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한 이 성명은 통일의 원칙으로 첫째,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둘째,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하여야 한다. 셋째, 사상과 이념 및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고 밝힘으로써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의 3대 원칙을 공식 천명하였다.
공동성명은 이 밖에도 상호 중상비방과 무력도발의 금지, 다방면에 걸친 교류 실시 등에 합의 하고 이러한 합의 사항의 추진과 남북 사이의 문제 해결, 그리고 통일문제의 해결을 목적으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김영주 조직지도부장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남북조절위원회를 구성, 운영하기로 하였다.
이 7.4 공동성명이 발표되자 미국, 소련, 중국, 영국 등 주요 국가들이 일제히 환영지지를 표명했다. 국내 야당 지도자들인 김대중, 김영삼, 이철승, 양일동 등도 환영성명을 냈다. 7.4 공동성명 내용이 외세 간섭 없이 평화적으로 통일과업을 추진하자는데 하등의 시비 걸 조항이 없어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지금의 우리는 한 발짝도 분단의 벽을 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는가.
그 원인을 규명해 보면 첫째, 북한에서 무한 권력의 영구집권 세습체제가 진행돼 오고 남한에서도 오랜 독재정치의 수난을 당해 온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두 개의 방향이 다른 독재정치는 남북 양쪽 국민들의 의식까지 갈라놓았다. 북은 인민들에게 수령 절대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주체사상으로 의식 획일화에 집중해 오고 있다. 남은 국민들에게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반공, 북진 통일론을 일관해오다 최근 들어 자유민주주의가 힘을 발휘하면서 적지 않은 의식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는 중이다.
북은 지금까지의 결과가 인권탄압과 절대 빈곤의 하한선을 헤매고 있으면서도 남한 적화 야욕을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다. 남은 비약적인 경제발전으로 북한보다 모든 면에서 40배나 더 잘 살게 되었다. 그런데도 북한에 대한 피해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북한 증오, 공포, 불가촉 대상으로 하는 것이 의식 속에 깊이 박혀 있다.
남한에서는 북한을 조금만 이해하려든다거나 호의를 베풀거나 대화만 나눠도 벌써 고개를 가로 젓는 이른바 노스 포비아(북한 공포증, North Phobia)가 습관화 됐을 정도다. 40배나 더 힘이 강한 입장에서의 여유와 슬기, 덕과 관용이 매우 빈약한 게 사실이다.
남북은 이른바 빙탄불상용(얼음과 석탄은 서로 용납되지 않음), 7.4 공동성명과는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
근세에 들어 한반도는 강대국들의 제물이었다. 카이로 회담, 포츠담 선언, 얄타 회담 등 세계 대전 승전국들이 약소국들을 어떻게 유린해 왔고 요리해 왔나. 그런데도 북한은 핵무기를 들고 평화를 외치는 모순을 망발하며 외세개입을 자초하고 있지 않은가. 툭하면 체제보장을 요구하는데 이건 외세 개입을 요구하는 소리가 아니고 뭔가. 체제보장은 자기가 인민들의 확고한 지지로 유지해 가면 됐지 외세에 체제보장을 호소하다니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납득이 안 간다.
남은 한반도 문제에 주인이면서도 미북 협상 내용은 물론 절차, 시기, 심지어 장소를 정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단 한마디도 발언권을 확보하지 못한 처지가 아닌가.
우리 한반도 문제는 서로 불신을 털고 북의 핵 포기로 활짝 해결될 여지가 있을 것 같다. 곧 있을 오사카 G20 모임에서 미중 정상이 한반도 핵문제를 놓고 흥정거리로 삼을 추세다. 도대체 우리는 강대국들 속에 어떤 존재인가. 안쓰럽기 그지없다.
낡은 시대정신, 보수, 진보 극한 대립을 벗어나 중도 노선으로 가야 한다. 이것이 참된 7.4 공동성명의 진정성이 아니겠는가. 남북은 지금까지 평화롭게 이념과 제도를 초월하여 통일의 길을 걸어왔는가 반성해 볼 일이다.
(571)326-6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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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용 자유광장 회장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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