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발표된 여러 경제 수치 중 가장 전문가들을 놀라게 한 것은 채권가의 폭등일 것이다. 장기금리의 기준이 되는 10년 만기 연방국채의 수익률은 지난 주 한 때 2% 이하로 떨어졌다. 3년래 최저 수준이다.
올 초만 해도 연방 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를 한 두 차례 더 올리는 것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져 왔다. 미 경제가 빠른 속도의 성장을 계속하고 있고 인플레도 우려되는 만큼 2008년 금융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비정상적으로 낮게 내린 금리를 정상 수준으로 되돌릴 것이라는 게 다수 견해였다.
그러나 작년 11월부터 지속된 장기금리의 급속한 하락은 이런 생각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작년 하반기 3.25%까지 치솟았던 10년 만기 연방국채의 수익률은 폭락을 거듭해 21일 현재 2.08%를 기록했다.
국채 수익률이 이처럼 하락한 것은 투자가들이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연방국채를 무더기로 사들였기 때문이다. 수요가 늘면 국채 가격은 상승하고 그에 반비례해 수익률은 떨어진다.
투자가들이 이처럼 국채를 사들이고 있다는 것은 이들이 인플레가 돌아올 가능성은 낮게 보고 오히려 경기둔화와 불황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좀처럼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미 중국 간의 무역 분쟁도 투자가들의 불안심리를 부추기고 있다. 연방국채와 함께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금값도 지난 주 온스 당 1,400 달러를 돌파하며 6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투자가들이 사들이는 것은 연방 국채만이 아니다. 10년 만기 영국 국채는 0.808%로 3년래 최저를, 10년 만기 독일 국채는 사상 최저치인 마이너스 0.32%를 기록했다. 금리가 마이너스라는 것은 돈을 맡긴 사람이 이자를 받기는커녕 맡아주는 수수료를 지불하는 꼴로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약간 손해를 보는 한이 있어도 안전하게 보관만 해달라고 투자가들이 호소하는 모양새다.
국채금리가 마이너스인 나라는 독일만이 아니다. 일본과 네덜란드, 덴마크와 스위스 등 재정이 튼튼하고 정치적으로 안정된 나라들의 국채는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전문가들 가운데 장기금리의 폭락을 예견한 사람은 거의 없다. 올 초 월스트릿 저널이 69명의 경제학자에게 올 금리동향을 물었을 때 6월까지 장기금리가 2.5% 이하로 떨어질 것을 예측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들 전문가는 이달 초까지도 연말 장기금리가 2.34% 선에서 마무리 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이한 것은 채권시장이 이렇게 향후 경기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는데 주식시장은 다르다는 점이다. 지난 주 S&P 500 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는 FRB가 경기둔화를 막기 위해 올해 안에 두 차례 정도 단기금리를 인하할 것이란 투자가들의 기대감 때문이란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금리가 내려가면 기업들의 이자 상환부담이 줄어들어 수익이 올라가는 것은 사실이다. 또 장기금리가 내려가면 모기지 금리도 하락해 주택구입자들의 부담도 줄어든다. 실제로 작년 11월 5%가 넘던 30년 모기지 금리는 이제 4% 이하로 떨어졌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이것이 침체기에 접어든 부동산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호황이 계속된다는 전제 하에서 가능한 얘기다. 불황이 찾아와 기업들의 매출이 줄고 실업자가 늘어나 주택 구입능력을 가진 사람이 줄어들면 기업의 이익은 오히려 감소하고 주택시장도 침체기를 피하기 힘들게 된다.
어쨌든 간에 불황을 우려해 안전자산으로 돈이 몰리면서 채권가가 오르고 장기금리가 내려가는 현상과, 호황이 계속될 것으로 기대해 주가가 최고치를 경신하는 상반된 현상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는 없다. 머지않은 장래에 장기금리가 내려가면서 주가가 하락세로 돌아서거나, 아니면 금리가 상승세로 바뀌면서 주가가 동반 상승하거나 둘 중 하나로 결말지어질 것으로 봐야 한다.
이 달 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회담에서 미 중이 극적인 타협을 이뤄낸다면 금리와 주식은 급등할 것이고, 결렬을 선언한다면 둘 다 폭락하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 타협이 이뤄지기도 쉽지 않지만 판을 깰 경우 두 나라 모두 입을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당분간 무역전쟁의 우려와 불확실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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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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